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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Romeo Daley 구술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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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00:00:09.136 --> 00:00:11.416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로미오 데일리입니다 00:00:11.749 --> 00:00:19.263 1932년 5월 21일생 입니다 카프레올(Capreol) 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00:00:19.283 --> 00:00:23.830 온타리오주 서드베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죠 00:00:23.850 --> 00:00:32.163 18살에 캐나다 육군으로 입대했습니다 한국에서 복무 시 계급은 상병이었어요 00:00:32.183 --> 00:00:40.463 모든 기초훈련은 앨버타주 캘거리 근교에서 받았죠 00:00:40.483 --> 00:00:45.630 로키산맥 기슭인데 한국의 산악지대와 비슷한 곳이었습니다 00:00:46.017 --> 00:00:51.763 1950년 8월부터 1951년 6월까지 훈련소 생활을 했습니다 00:00:52.283 --> 00:01:03.263 1951년 6월부터 1952년 10월까지 한국에 있었고 2차례 파병되었죠 00:01:03.783 --> 00:01:08.530 한국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00:01:08.550 --> 00:01:13.830 355고지, 277고지, 165고지 및 159고지 전투에 투입되었죠 00:01:13.850 --> 00:01:23.597 가평에도 갔었는데 전투 중은 아니었어요 전투 후 증원 병력으로 투입되었죠 00:01:25.883 --> 00:01:29.763 부모님의 성함은 러셀 데일리 메리 데일리입니다 00:01:31.150 --> 00:01:36.530 1937년부터 1948년까지 00:01:36.550 --> 00:01:39.030 온타리오주 사우스 포르퀴핀 (South Porcupine)에 있는 00:01:39.050 --> 00:01:42.430 골든 에브뉴(Golden Avenue) 공립학교에 다녔어요 00:01:44.183 --> 00:01:48.063 제 아내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데일리입니다 00:01:48.917 --> 00:02:01.097 전화번호는 9059947388이고 제 이메일 주소는 bdrome@sofcom.ca입니다 00:02:02.917 --> 00:02:04.497 감사합니다, 로미오 선생님 00:02:04.517 --> 00:02:06.897 선생님의 어린 시절 얘기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00:02:09.983 --> 00:02:17.797 저는 온타리오주 사우스 포르퀴핀 바로 외곽에 있는 작은 농장에서 자랐어요 00:02:18.717 --> 00:02:28.497 1937년에 시내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죠 00:02:30.417 --> 00:02:34.497 참전하기 전에 가족에 대한 추억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00:02:34.517 --> 00:02:36.597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 관한 것들이요 00:02:38.383 --> 00:02:46.197 아버지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캐나다 육군에서 복무하셨습니다 00:02:46.217 --> 00:02:48.297 제2차 세계대전 당시였죠 00:02:48.317 --> 00:02:53.163 그래서 5~6년 동안 저는 아버지를 거의 볼 수 없었어요 00:02:53.183 --> 00:02:57.563 어머니와 형, 동생과 함께 작은 농장을 운영했어요 00:02:57.583 --> 00:03:01.097 우리가 직접 키운 것으로 먹을 것은 충분했기 때문에 00:03:01.117 --> 00:03:04.963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죠 00:03:08.250 --> 00:03:14.758 형은 저보다 한 살 반 정도 나이가 많았고 동생은 한 살 반 정도 어렸어요 00:03:16.783 --> 00:03:20.297 형, 동생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세요 00:03:21.383 --> 00:03:33.630 네, 형은 1950년에 캐나다 공군에 입대해서 12년간 복무했죠 00:03:33.650 --> 00:03:43.764 동생도 1960년 무렵 캐나다 공군에 입대해서 마찬가지로 12년을 복무했어요 00:03:43.789 --> 00:03:49.163 형은 1976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00:03:49.183 --> 00:03:56.630 동생은 매니토바주 위니펙에 살고 있는데 3~4년에 한 번씩 보는 것 같네요 00:03:59.983 --> 00:04:05.397 가족사에 전쟁이 한 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네요 00:04:05.417 --> 00:04:09.563 맞아요, 대를 이은 군인 가족이죠 00:04:09.583 --> 00:04:15.297 하지만 저의 세 아들은 군대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아요 00:04:19.383 --> 00:04:23.730 군인 가족 출신이라는 점이 입대의 한 이유였나요? 00:04:24.250 --> 00:04:31.230 글쎄요 1950년 캐나다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었어요 00:04:31.250 --> 00:04:34.263 그게 근본적인 이유였죠 00:04:34.283 --> 00:04:43.663 유럽에서 이민자들을 데려왔는데 광부, 벌목공 같이 모두 훈련된 사람들이었죠 00:04:46.357 --> 00:04:49.663 시골 캐나다 소년이 할 일은 많지 않았어요 00:04:49.683 --> 00:04:53.330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군에 입대하고 싶었어요 00:04:53.350 --> 00:04:59.030 전쟁이 터졌을 때가 18살이었는데 바로 입대했죠 00:05:02.950 --> 00:05:07.463 6·25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캐나다 군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셨나요? 00:05:07.483 --> 00:05:13.630 아버지가 들려준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통해 캐나다 군에 대해서는 꽤 알고 있었어요 00:05:13.650 --> 00:05:19.863 보고 배운 것들이 있었죠 입대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였어요 00:05:19.883 --> 00:05:26.242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흥분을 경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00:05:29.342 --> 00:05:35.897 당시 6·25전쟁 소식을 들으셨는데 파병되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셨나요? 00:05:35.917 --> 00:05:37.863 전혀 없었어요 00:05:37.883 --> 00:05:49.930 한국에 대해서 아는 건 북한이 공산국가라는 것밖에 몰랐어요 00:05:49.950 --> 00:05:56.263 저는 공산주의는 나쁘다고 배웠어요 00:05:56.683 --> 00:06:02.163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는 편에 서고 싶다는 마음도 입대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죠 00:06:02.183 --> 00:06:05.197 어떤 일이든 하고 싶었어요 00:06:09.217 --> 00:06:16.697 전투와 관련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시면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00:06:16.717 --> 00:06:17.930 그러죠 00:06:17.950 --> 00:06:30.297 제 첫 전투 장소는 159고지였습니다 저희 전투 상대는 모두 중공군이었죠 00:06:30.317 --> 00:06:35.463 북한과의 전투였지만 상대가 북한군이 아니었어요 00:06:36.383 --> 00:06:42.497 그 전투의 임무는 고지에서 중공군을 모두 몰아내는 것이었어요 00:06:42.517 --> 00:06:48.930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하는 길에 중공군 두 명과 맞닥뜨렸는데 00:06:48.950 --> 00:06:51.197 감쪽같이 위장하고 있더군요 00:06:51.450 --> 00:06:56.997 갑자기 튀어나와서 따발총을 쏘아댔어요 00:06:57.583 --> 00:07:04.030 분대원이 네 명 있었는데 두 명은 죽고 한 명은 부상을 당했죠 00:07:04.050 --> 00:07:07.397 저는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이유는 저도 모르겠네요 00:07:07.983 --> 00:07:10.763 부상당한 동료를 도와 빠져 나왔고 00:07:10.783 --> 00:07:14.597 나중에 다시 돌아가서 두 전우의 시신을 거두었어요 00:07:14.617 --> 00:07:16.630 부상당한 전우의 상처는 어땠나요? 00:07:16.650 --> 00:07:21.863 엉덩이 부분에 총을 맞았는데 여생을 절름발이로 보내야 했죠 00:07:21.883 --> 00:07:24.030 전사한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00:07:26.050 --> 00:07:33.897 그게 제 첫 전투였어요 처음으로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했죠 00:07:35.017 --> 00:07:39.197 그때나 지금이나 끔찍한 기억입니다 00:07:39.750 --> 00:07:41.697 그러면 전쟁의 공포를 느끼셨겠네요? 00:07:41.717 --> 00:07:47.497 전혀 그렇지는 않았어요 사실 그 상황을 겪고 나서 더 결연해졌죠 00:07:50.783 --> 00:07:55.930 처음 참전하기 위해 파견되었을 때 한국에는 어떻게 가셨나요? 00:07:55.950 --> 00:07:57.930 배를 타셨나요? 미국으로 가셨나요? 00:07:57.950 --> 00:08:07.530 아, 앨버타 주 웨인라이트에서 고등 훈련을 받고 캘거리로 돌아간 뒤에 00:08:07.550 --> 00:08:10.897 거기서 워싱턴 주 시애틀로 가는 기차를 탔어요 00:08:10.917 --> 00:08:18.697 시애틀에서 미군 병력 수송선을 타고 일본 요코하마로 왔죠 00:08:19.350 --> 00:08:28.463 거기서 버스를 타고 일본 사세보로 가서 다른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어요 00:08:30.150 --> 00:08:39.730 부산에서 3일 정도 머물면서 한국 기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죠 00:08:39.750 --> 00:08:49.463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갔어요 거기서 도보로 덕정까지 이동했어요 00:08:49.483 --> 00:08:51.930 임진강이 바로 앞에 있었죠 00:08:52.683 --> 00:08:59.863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적군과 조우했어요 00:09:01.683 --> 00:09:06.797 처음 부산에 도착했을 때 광경이 기억나세요? 00:09:07.883 --> 00:09:19.297 물론이죠, 우리를 어떤 장소로 데려갔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00:09:19.317 --> 00:09:25.763 오래된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캐나다 군인 300명이 대기했어요 00:09:25.783 --> 00:09:34.797 얼마나 초라하고 열악한 상황이었던지 00:09:35.550 --> 00:09:43.730 한국인을 볼 수는 있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건 허가되지 않았죠 00:09:43.750 --> 00:09:45.863 그 당시 한국인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어요 00:09:45.883 --> 00:09:55.963 음식, 옷, 집, 의료품도 없었고 위생 상태는 심각했어요 00:09:55.983 --> 00:09:57.730 말 그대로 끔찍했죠 00:10:00.050 --> 00:10:11.297 부산을 떠나기 전에 산악 훈련을 한다고 데려갔는데 거기서 마을을 볼 수 있었죠 00:10:12.250 --> 00:10:17.530 대부분이 작은 집들이었어요 00:10:17.550 --> 00:10:23.397 초가 지붕에 흙 바닥이었고 난방은 바깥에서 방 아래로 이어지는 00:10:23.417 --> 00:10:26.663 도랑 같은 곳에 불을 지피더라고요 00:10:27.383 --> 00:10:33.630 물도 없었고 위생은 엉망이었죠 유쾌한 광경이 아니었어요 00:10:33.650 --> 00:10:36.497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사람이 사나 싶었죠 00:10:37.450 --> 00:10:43.363 우리 캐나다인들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00:10:45.283 --> 00:10:49.330 부산에 있으면서 한국 시민들과 교류가 있었나요? 00:10:49.783 --> 00:10:51.963 아뇨, 그건 금지사항이었어요 00:10:51.983 --> 00:11:02.863 고정된 진지선을 구축한 후에야 한국인과 교류가 가능했어요 00:11:02.883 --> 00:11:07.330 거의 일 년은 걸렸죠 00:11:07.350 --> 00:11:16.630 일 년이 지나고 한국인을 알게 되었는데 한국 군인인 것 같았어요 00:11:16.650 --> 00:11:19.197 이 남자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 줬죠 00:11:19.217 --> 00:11:22.863 면담자분께서 저만큼 당시의 한국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00:11:22.883 --> 00:11:24.097 산밖에 없었어요 00:11:24.317 --> 00:11:28.530 산 정상에 올라가면 유일하게 갈 곳은 다른 산 정상밖에 없는 정도였죠 00:11:28.550 --> 00:11:32.663 한국 여성 몇 분이 저희 옷을 세탁해 주었어요 00:11:33.383 --> 00:11:39.730 세탁 아주머니라 불렀는데 저희 빨랫감을 수거해서 00:11:40.550 --> 00:11:43.363 하루나 이틀 지나서 다시 가지고 오셨죠 00:11:43.383 --> 00:11:51.763 신기하게도 상의에 별다른 표시가 없었는데 누구 것인지 정확히 아셨어요 00:11:51.783 --> 00:11:55.163 이건 당신 옷, 저건 당신 옷, 이런 식으로요 00:11:55.183 --> 00:12:00.530 하지만 아이들과는 교류가 전혀 없었어요 00:12:01.750 --> 00:12:07.330 진지 밖에서 아이들이 음식이나 옷가지를 구걸했지만 00:12:07.350 --> 00:12:10.463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금지였어요 00:12:10.750 --> 00:12:15.530 그 때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나눠 주기는 했죠 00:12:16.350 --> 00:12:18.897 어떤 음식을 보급받으셨나요? 00:12:21.183 --> 00:12:32.997 처음 6개월은 캐나다와 영국의 보급품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음식에 불만은 없었어요 00:12:33.017 --> 00:12:36.430 그 후에는 미국 보급품을 받았죠 00:12:36.450 --> 00:12:39.430 혹시 C-레이션이라는 전투 식량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 00:12:39.817 --> 00:12:46.063 다른 종류의 캔 네 개가 들어 있는 상자인데 00:12:46.083 --> 00:12:56.763 햄, 리마 콩, 콩, 소시지 스파게티 같은 음식이 들어있었죠 00:12:57.217 --> 00:13:04.597 초콜릿 바, 껌, 치약이 들어 있는 캔도 있었어요 00:13:05.383 --> 00:13:12.997 치약이나 껌은 구경도 못해 봤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00:13:13.017 --> 00:13:20.363 아이들은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껌을 씹고 삼키더군요 00:13:21.517 --> 00:13:23.630 우리는 그걸 보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죠 00:13:26.950 --> 00:13:36.897 주어진 다른 임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최대한 한국인을 도와주려 했어요 00:13:38.350 --> 00:13:41.663 참전한 두 번째 전투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00:13:41.683 --> 00:13:43.297 159고지 전투는 다 말씀하셨죠? 00:13:43.317 --> 00:13:45.663 맞아요, 159고지는 말씀드렸죠 00:13:45.683 --> 00:13:49.130 두 번째 전투는 165고지였어요 00:13:50.083 --> 00:13:54.230 이 숫자는 모두 미터로 측정한 산의 높이였죠 00:13:54.250 --> 00:13:57.397 산에 이름이 없고 대신 숫자로 불렀어요 00:13:58.483 --> 00:14:03.630 165고지의 임무도 159고지와 거의 비슷했어요 00:14:04.350 --> 00:14:08.430 중공군을 그 고지에서 모두 몰아내는 것이었죠 00:14:09.150 --> 00:14:15.797 중공군은 밤에 싸우려 했고 우리는 낮을 선호했죠 00:14:16.550 --> 00:14:21.397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중공군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00:14:21.850 --> 00:14:26.263 중공군은 낮에 누가 다가오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00:14:26.817 --> 00:14:28.197 심지어 위치를 이탈하기도 했죠 00:14:28.217 --> 00:14:36.530 159 고지 때처럼 가끔 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중공군이 없었어요 00:14:37.617 --> 00:14:39.830 무기는 그대로 두고 말이죠 00:14:40.183 --> 00:14:44.763 그래서 필요한 무기를 챙겨서 진지로 돌아오곤 했죠 00:14:44.783 --> 00:14:50.830 다음 날 중공군이 충원되면 우리측의 사상자 없이 전투가 끝나버렸죠 00:14:51.983 --> 00:14:56.197 그때 봤던 무기와 장비에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00:14:57.217 --> 00:15:00.597 우리 무기와 중공군 장비의 차이 말이죠? 00:15:00.617 --> 00:15:04.263 있었어요 중공군은 무장상태는 매우 좋았어요 00:15:04.283 --> 00:15:07.197 폭탄 같은 박격포를 보유하고 있었죠 00:15:07.217 --> 00:15:17.463 소형 기관단총도 있었는데 한 번에 72발을 쏠 수 있죠 00:15:17.483 --> 00:15:23.363 반면 우리는 27발이 장전되는 경기관총(Bren gun)을 갖고 있었죠 00:15:23.750 --> 00:15:29.530 27발을 쏘고 나면 매번 총열이나 탄창을 갈아야 했어요 00:15:31.817 --> 00:15:37.197 전투복은 저희가 더 좋았어요 중공군 전투복은 별로였어요 00:15:37.217 --> 00:15:45.297 사계절용 모직 전투복에 운동화를 신었죠 00:15:45.317 --> 00:15:47.997 전투화는 없고 운동화를 착용했는데 00:15:48.508 --> 00:15:51.197 중공군이 거기서 살아남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00:15:56.850 --> 00:15:59.830 그럼 다음 전투로 가볼까요? 00:16:00.164 --> 00:16:03.397 그 다음 전투는 227고지 전투였어요 00:16:04.913 --> 00:16:10.897 제가 기록한 순서와 다를 수 있는데 기억대로 말씀드릴게요 00:16:10.917 --> 00:16:15.363 227고지는 정말 극심하게 어려운 전투였어요 00:16:16.250 --> 00:16:20.063 엄청난 공격을 받았죠 00:16:20.269 --> 00:16:24.130 소나기 같은 사격이 밤새 이어졌어요 00:16:24.917 --> 00:16:33.663 우리가 사용한 경기관총은 발사 속도가 매우 빨라서 00:16:33.683 --> 00:16:40.230 총열 세 개를 태워 먹기도 했죠 00:16:40.250 --> 00:16:43.330 엄청나게 뜨거워지면 총열이 아래로 휘어져요 00:16:43.650 --> 00:16:50.563 총열은 교환 가능하므로 빼어 다른 총열을 끼울 수 있어요 00:16:50.583 --> 00:16:54.663 그날 밤에는 밤새 총열 세 개를 써야 했죠 00:16:54.683 --> 00:17:05.297 그렇게 빠른 속도로 쏘아대면 총열이 가열돼 휘어지게 되거든요 00:17:05.750 --> 00:17:09.297 다시 생각해 봐도 그날 밤은 정말 아찔했어요 00:17:09.583 --> 00:17:16.563 내 앞에 누가 있는지 뭐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00:17:16.583 --> 00:17:19.630 그림자만 보고 계속 사격하는 수밖에 없었죠 00:17:26.717 --> 00:17:32.963 그 전투에 몇 명이나 참전했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00:17:32.983 --> 00:17:44.730 캐나다 군인은 대략 400명 정도였고 상대해야 하는 중공군은 3,000명이 넘었어요 00:17:47.283 --> 00:17:56.163 그 전투에서 우리 측은 10명이 전사하고 20명이 부상을 당했어요 00:17:57.017 --> 00:18:00.730 다음 날 죽은 중공군을 세어보니 1,800명이 넘더군요 00:18:01.983 --> 00:18:05.997 와, 어떻게 그 적은 수로 이길 수 있었을까요? 00:18:06.017 --> 00:18:11.263 중공군이 공격하면서 우리를 지나쳐 버렸어요 00:18:11.283 --> 00:18:14.863 그래서 중공군 상당수가 우리 바로 위나 옆에서 죽었어요 00:18:15.317 --> 00:18:22.363 중공군은 얼마나 많은 중공군이 죽고 얼마나 많은 시신을 회수했는지 00:18:22.383 --> 00:18:25.997 우리가 모르게 하려고 시신을 두고 가려 하지 않았죠 00:18:26.017 --> 00:18:28.863 하지만 우리 진지 근처에 있는 시신은 그들이 회수하지 못했어요 00:18:29.983 --> 00:18:35.830 그래서 우리는 그 시신 처리를 하면서 적의 전사자 수를 파악하게 된 거죠 00:18:37.983 --> 00:18:39.097 끔찍했어요 00:18:40.650 --> 00:18:44.630 전투 광경은 어떠셨어요? 00:18:46.117 --> 00:18:49.130 우리는 참호 속에 있었어요 00:18:49.917 --> 00:18:58.263 전투에서는 가슴 아래까지는 감춰야 해요 머리만 내미는 거죠 00:19:01.750 --> 00:19:10.297 그리고 소총, 기관총, 박격포든 보유하고 있는 모든 무기를 발사하여 00:19:10.317 --> 00:19:15.663 가능한 한 많은 적을 사살하는 임무를 수행하죠 00:19:18.617 --> 00:19:23.997 전투마다 우리도 꽤 많은 사상자가 있었어요 00:19:24.517 --> 00:19:26.597 그래도 제법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해요 00:19:26.617 --> 00:19:29.363 전투 현장에 의료진은 충분했나요? 00:19:30.150 --> 00:19:35.097 물론이죠, 당연히 있었죠 00:19:38.150 --> 00:19:40.197 의무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미국은 의무병(corpsmen)이라 불렀고 00:19:40.217 --> 00:19:44.030 저희는 그냥 의료진(medical people)이라 불렀어요 00:19:44.050 --> 00:19:52.563 전선에 30명의 군인이 있으면 10명은 의료진으로 00:19:52.583 --> 00:20:00.330 누군가 다치면 어디에 있든 가서 치료해주었죠 00:20:00.350 --> 00:20:03.197 누군가 사망하면 유해를 수습해 오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어요 00:20:08.883 --> 00:20:12.663 전투는 얼마나 지속되었나요? 00:20:13.217 --> 00:20:17.897 보통 1~2주, 길면 2~3주 걸렸어요 00:20:17.917 --> 00:20:25.930 교전이 없는 날도 있었죠 그런 때는 순찰을 하러 밖으로 나갔어요 00:20:27.617 --> 00:20:31.563 6·25전쟁 기간 동안 매일 싸운 것은 아니었어요 00:20:32.517 --> 00:20:44.063 중공군이 뭔가 하려고 하면 그때 맞서 싸우거나 그들을 산에서 몰아내는 임무를 수행했죠 00:20:44.083 --> 00:20:51.263 어떤 때는 1~2주, 심지어 3주 동안 총을 전혀 발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00:20:51.283 --> 00:20:55.963 그러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다 총알을 다 써버려서 총알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죠 00:20:57.683 --> 00:21:02.597 전투가 없을 때 일상은 어떠셨어요? 그냥 순찰을 하였나요? 00:21:02.617 --> 00:21:10.830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식사를 했어요 00:21:12.117 --> 00:21:18.797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했어요 저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죠 00:21:18.817 --> 00:21:22.597 사실 전투식량이 있어서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요 00:21:25.150 --> 00:21:34.430 그리고는 무기를 손질하고 필요한 보급품을 정비했어요 00:21:34.450 --> 00:21:40.730 더 많은 수류탄이 필요했죠 특히 총알은 정말 많이 필요했어요 00:21:40.750 --> 00:21:41.963 전부 구할 수는 있었죠 00:21:41.983 --> 00:21:44.463 의료조치도 필요했어요 00:21:44.483 --> 00:21:49.063 작은 부상을 입을 때마다 매번 치료를 받을 수는 없어요 00:21:49.317 --> 00:21:50.997 스스로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00:21:51.017 --> 00:21:57.463 보통 낮에는 그렇게 보급품을 다시 보충하고 최대한 휴식을 취했어요 00:21:57.483 --> 00:21:59.863 다음날 밤에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00:22:05.650 --> 00:22:08.163 언제 다음 전투에 투입되셨나요? 00:22:08.424 --> 00:22:11.630 그 다음은 355고지였어요 00:22:13.037 --> 00:22:25.863 실제로 참전한 마지막 전투였는데 1952년 6월이었죠 00:22:28.850 --> 00:22:34.563 그날 밤에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00:22:37.817 --> 00:22:40.963 한 중공군이 제 앞에 수류탄을 던졌어요 00:22:41.550 --> 00:22:47.363 오른쪽 귀가 거의 떨어져 나가고 왼쪽 눈 아래 심각한 자상을 입었어요 00:22:48.750 --> 00:22:54.430 교전 중 전우 한 명이 저를 끄집어내어 뒤쪽으로 데려갔어요 00:22:55.817 --> 00:23:02.997 미국 헬기가 저와 다른 캐나다 군인을 싣고 의정부에 있는 00:23:03.017 --> 00:23:06.297 제4077 MASH(이동외과병원)로 이동했어요 00:23:06.317 --> 00:23:11.197 거기서 귀를 다시 봉합하고 성형 수술을 받았죠 00:23:11.217 --> 00:23:15.763 눈은 괜찮았지만, 눈을 가로지른 상처는 성형 수술이 필요했죠 00:23:16.350 --> 00:23:22.030 가까이서 자세히 보시면 그 수술 자국이 보일 겁니다 00:23:23.650 --> 00:23:27.597 그렇게 제 마지막 전투가 끝났죠 00:23:27.617 --> 00:23:33.163 퇴원한 뒤에도 전장으로 보내지는 않았어요 00:23:33.183 --> 00:23:38.630 주위 사람들이 제 청력이나 시력이 예전 같지 않을까 봐 걱정하더군요 00:23:39.517 --> 00:23:41.663 MASH에서 영국 병원으로 다시 후송되었어요 00:23:42.383 --> 00:23:50.830 야전병원에서는 임시조치만 가능해서 영국 병원으로 보내져 대략 3주를 입원해 있었죠 00:23:50.850 --> 00:23:59.430 퇴원하고 병력 증원 본부에 배치되었는데 저의 전장 복귀를 서두르지 않더군요 00:23:59.450 --> 00:24:00.963 대신 다른 업무를 줬죠 00:24:00.983 --> 00:24:08.797 두 개의 훈련 과정을 맡았는데 대부분은 행정과 교육을 지원하는 업무였죠 00:24:09.250 --> 00:24:15.163 한국에서 전투 경험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어요 00:24:15.717 --> 00:24:19.863 10월이 되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죠 00:24:23.250 --> 00:24:27.830 부상당했을 때 보호 조치를 해 줄 것으로 생각하셨나요? 00:24:28.128 --> 00:24:30.230 그럼요 00:24:30.250 --> 00:24:36.997 유일한 불만이라면 캐나다 육군이 제 부상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았고 00:24:37.017 --> 00:24:42.263 미국과 영국 병원에도 제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죠 00:24:42.850 --> 00:24:50.297 그래서 연금을 신청할 때 미군에 편지를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00:24:50.317 --> 00:24:55.830 미군과 영국군에 모두 편지를 보냈죠 그랬더니 미군에서 친절하게 답장을 보냈어요 00:24:55.850 --> 00:25:00.963 1952년 6월 의정부 제4077 MASH에서 00:25:00.983 --> 00:25:05.430 로미오 데일리 상병이 치료받은 기록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어요 00:25:06.050 --> 00:25:11.630 몇 주 뒤에 영국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줬어요 00:25:11.650 --> 00:25:15.663 서울에 있는 영국 병원에만 기록이 남아 있는데 00:25:16.217 --> 00:25:20.963 패트리샤 공주 캐나다 경보병 연대 (PPCLI, 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소속 00:25:20.983 --> 00:25:23.597 캐나다인이 머리 부상을 치료받았다는 기록이 있었어요 00:25:23.617 --> 00:25:30.130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머리 부상을 입고 약 20일 뒤에 퇴원해서 00:25:30.150 --> 00:25:33.030 캐나다 보충소로 복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00:25:33.950 --> 00:25:41.297 이 모든 사실을 캐나다 군에 전달했더니 일단 믿어주겠다고 하더군요 00:25:41.917 --> 00:25:47.763 기록이 없어서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과 논쟁할 수도 없었고 00:25:47.783 --> 00:25:50.030 결국 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죠 00:25:50.683 --> 00:25:54.797 50년이나 지나고 내려진 결정이지만 지금은 굉장히 행복합니다 00:25:54.817 --> 00:25:56.163 받고 있는 연금에 만족합니다 00:25:56.183 --> 00:26:00.330 물론 젊었을 때 연금을 받아 가족에게 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죠 00:26:00.683 --> 00:26:02.330 혹시 미지급 연금은 받으셨나요? 00:26:02.350 --> 00:26:05.397 아니요 딱 일 년 치만 환급해서 주더군요 00:26:11.883 --> 00:26:18.330 - 가평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 가평 전투에는 참전하지 않았어요 00:26:18.350 --> 00:26:25.763 그 다음 날 지원 병력으로 도착해서 가평의 피해 상황을 보았는데 00:26:25.783 --> 00:26:29.330 참호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죠 00:26:29.350 --> 00:26:41.397 중공군이 진지에 많이 모여 있어서 캐나다 군은 그 진지 바로 위로 포격했어요 00:26:42.150 --> 00:26:49.430 캐나다 군은 그 포격으로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으면서 00:26:49.450 --> 00:26:52.963 엄청난 중공군 병력을 죽였어요 00:26:57.550 --> 00:27:00.397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죠 00:27:01.683 --> 00:27:09.330 오후에 일어났더니 간밤에 무자비했던 전투가 잠잠해졌더군요 00:27:10.283 --> 00:27:14.363 이틀 뒤 중공군은 철수했어요 00:27:15.850 --> 00:27:22.830 캐나다 군이 빠져 나오고 호주 군 연대가 진지를 인수했죠 00:27:23.517 --> 00:27:25.830 3주 정도 충분한 휴식이 주어졌습니다 00:27:29.250 --> 00:27:34.263 가평에 도착해서 시체를 많이 보셨겠네요? 00:27:34.283 --> 00:27:42.263 그랬죠 처음 본 것은 부산을 떠나기도 전이었어요 00:27:42.283 --> 00:27:51.697 앞산에 있는 게릴라를 소탕 중이었는데 거기서 북한군 시체를 많이 봤어요 00:27:53.483 --> 00:27:57.063 북한군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그곳에는 북한군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00:27:57.083 --> 00:28:01.297 한국군은 한 명도 없었고 중공군이 몇 있었어요 00:28:03.950 --> 00:28:10.863 엄청난 수의 시체를 봤죠 그때나 지금이나 끔찍한 기억이네요 00:28:12.550 --> 00:28:13.563 초기 사진이네요 00:28:13.583 --> 00:28:17.730 처음 입대하던 1952년 8월이에요 00:28:17.750 --> 00:28:22.697 그때 왈리 레이퓨즈라는 친구와 앨버타주 캘거리에 있었죠 00:28:23.317 --> 00:28:25.530 그 친구는 한국에서 죽었어요 00:28:25.550 --> 00:28:37.763 저는 고등 훈련 때문에 앨버타주 웨인라이트로 갔다가 다시 캘거리로 왔어요 00:28:38.217 --> 00:28:42.230 캘거리에서 워싱턴 주 시애틀로 가서 한국으로 이동했죠 00:28:42.250 --> 00:28:52.597 이건 한국에 도착한 직후인 1951년 6월에 찍은 사진이네요 00:28:52.617 --> 00:29:01.130 이 사진은 1952년 6월, 병원에서 나와 집에 갈 준비를 마치고 찍었네요 00:29:02.517 --> 00:29:09.030 한국에서 복귀한 뒤에 공중 낙하산 훈련을 받았어요 00:29:09.050 --> 00:29:13.530 이 비행기는 제가 뛰어내린 C-47 다코타네요 00:29:13.983 --> 00:29:23.563 여기는 온타리오주 브램턴의 메도우밸(Meadowvale) 공동 묘지인데 00:29:23.583 --> 00:29:29.663 한국에서 전사했거나 한국에서 입은 부상으로 사망한 00:29:29.683 --> 00:29:34.497 캐나다인 516명의 이름이 적힌 추모의 벽이 있죠 00:29:34.517 --> 00:29:44.730 헌화를 위해 퍼레이드 중이에요 저는 여기에 있네요 00:29:45.650 --> 00:29:55.763 이건 제 사진인데, 오늘 보니까 이 사진과 저 사진은 달라 보이네요 00:29:55.783 --> 00:30:01.863 저거는 제 훈장이고, 이건 모자 배지고, 이쪽은 공수부대 배지네요 00:30:02.517 --> 00:30:06.330 이 사진은 1951년과 1952년 한국에 있을 때에요 00:30:08.717 --> 00:30:12.530 기사 작위에 대해 하실 말씀 있으세요? 00:30:12.550 --> 00:30:19.930 네,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인트 조지 기사 작위입니다 00:30:19.950 --> 00:30:27.297 2016년 4월 2일 오타와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죠 00:30:28.550 --> 00:30:35.097 그래서 지금은 슈 발리에 오브 조지 크로스(Chevalier of George Cross)라는 00:30:35.117 --> 00:30:37.397 작위명을 갖고 있습니다 00:30:39.017 --> 00:30:40.163 감사하죠 00:30:42.850 --> 00:30:44.997 캐나다에는 언제 돌아오셨나요? 00:30:45.017 --> 00:30:48.463 1952년 10월에 왔어요 00:30:49.917 --> 00:30:53.397 캐나다 군대와 함께 오셨나요, 아니면…? 00:30:53.417 --> 00:30:54.297 맞아요 00:30:54.317 --> 00:30:59.397 꽤 많은 캐나다 군인들이 워싱턴주 시애틀로 돌아올 수 있었죠 00:30:59.417 --> 00:31:05.263 거기서 버스를 태워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빅토리아로 보내주었어요 00:31:05.283 --> 00:31:13.963 당시에 토론토에 살았는데 식권과 함께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가는 기차표를 받았죠 00:31:13.983 --> 00:31:19.463 토론토로 가는 사람은 제 기억에 여섯 명이었어요 00:31:21.283 --> 00:31:29.363 안타깝게도 토론토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렸을 때 저를 맞이해준 사람은 어머니뿐이었어요 00:31:30.517 --> 00:31:38.097 팡파르, 악단 연주, 환영단 같은 것은 없었죠 아무것도 00:31:38.117 --> 00:31:40.263 사실 지금까지도 연방 정부로부터 00:31:40.283 --> 00:31:44.363 제 복무에 대하여 어떤 감사 인사도 받지 못했어요 00:31:50.017 --> 00:31:54.797 캐나다로 복귀해서 다시 일을 시작하셨나요? 00:31:54.817 --> 00:31:59.097 아니요 총 6년을 군에 있었어요 00:31:59.117 --> 00:32:08.097 돌아와서 서니브룩 병원(Sunnybrook Hospital)에서 약간의 치료를 받고 00:32:08.117 --> 00:32:17.263 교관, 행정 간부와 함께 온타리오주 오크빌에 있는 본부 중앙사령부에서 근무했어요 00:32:17.283 --> 00:32:21.997 거기서 낙하 훈련을 받았죠 00:32:22.017 --> 00:32:25.430 매니토바주 리버스(Rivers)에 공중 낙하 전문가로 가기도 했어요 00:32:25.450 --> 00:32:29.697 1957년까지 군에서 복무했죠 00:32:32.550 --> 00:32:38.730 과거 전쟁 경험이 본인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00:32:39.283 --> 00:32:44.397 좋은 영향을 받지는 못했어요 적응하기 꽤 힘들었죠 00:32:44.417 --> 00:32:54.063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빠져 나와야 했기 때문이죠 00:32:54.083 --> 00:33:02.397 지금은 소리나 사람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죠 00:33:04.283 --> 00:33:08.097 하지만 초기에는 적응하기 상당히 힘들었어요 00:33:08.717 --> 00:33:12.397 그리고 당연히 정신적으로 부담이 있었죠 00:33:14.150 --> 00:33:20.563 사모님, 전쟁 경험이 남편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해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00:33:20.583 --> 00:33:22.830 그 부분에서 직접 경험하신 점이 있을까요? 00:33:22.850 --> 00:33:23.797 그럼요 00:33:24.083 --> 00:33:31.097 1957년 남편이 포르 에리(Fort Erie)에 있을 때부터 알아 왔으니까 00:33:31.117 --> 00:33:32.897 아주 오랜 시간 그를 봐왔죠 00:33:32.917 --> 00:33:36.230 우리 둘 다 포르 에리 재향군인회 회원이었어요 00:33:36.250 --> 00:33:42.697 남편의 아이들도 잘 알았어요 물론 다 저보다 어렸죠 00:33:42.717 --> 00:33:53.530 지난 13년 동안 남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 00:33:53.550 --> 00:33:56.797 결혼은 11년 전에 했죠 00:33:57.283 --> 00:34:08.063 남편이 군과 PPCLI에 소속되어 있던 것도 알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있었던 상황도 알죠 00:34:08.083 --> 00:34:15.163 MASH 4077이라는 TV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에 대해 거의 몰랐었지만요 00:34:15.183 --> 00:34:24.130 그 후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비록 코미디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00:34:24.150 --> 00:34:28.897 그 드라마를 통해 전쟁의 실상과 기타 관련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00:34:28.917 --> 00:34:36.330 절대 이상한 방식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어요 군인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존경을 표했죠 00:34:36.350 --> 00:34:42.963 그렇게 많은 국가가 전쟁에 참여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00:34:43.450 --> 00:34:48.463 그리고 자라서 MASH 시리즈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단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죠 00:34:48.483 --> 00:34:56.763 남편은 악몽에 시달리다 밤중에 깨곤 했는데 00:34:56.783 --> 00:35:01.830 결혼 후에 전쟁 경험에 대해 말해줘서 알게 되었어요 00:35:01.850 --> 00:35:07.497 그전에는 이유가 뭔지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00:35:07.517 --> 00:35:16.963 용기를 내어 경험을 털어놓고 대화를 시작해준 남편에게 감사하죠 00:35:16.983 --> 00:35:20.963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기억이 희미한 상태로 00:35:20.983 --> 00:35:24.997 그 때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거예요 00:35:25.017 --> 00:35:31.930 하지만 남편을 통해 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00:35:32.817 --> 00:35:36.597 - 한국에 다녀오셨죠? - 물론이죠 00:35:36.617 --> 00:35:40.130 - 소감이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세요 - 글쎄요 00:35:40.150 --> 00:35:50.263 제 입장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남편이 있었던 장소를 직접 볼 수가 있었죠 00:35:50.450 --> 00:35:56.297 그리고 남편이 말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를 방문했어요 00:35:56.683 --> 00:36:00.797 그게 저희가 한국에 재방문해서 했던 전부에요 00:36:00.817 --> 00:36:07.330 남편과 함께 당시를 경험하고 그 일부가 될 수 있어서 감사했죠 00:36:07.350 --> 00:36:12.030 한국인, 그리고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본다는 건 00:36:12.050 --> 00:36:16.930 글쎄요, 과거의 어떤 모습에서 발전한 건지 알 수 없지만 00:36:16.950 --> 00:36:22.197 오늘날의 한국은 분명히 볼 수 있었죠 놀라웠어요 00:36:22.217 --> 00:36:31.930 서울에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한국인은 정이 넘치고 친절했어요 00:36:31.950 --> 00:36:35.763 정말 아름다운 나라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어요 00:36:35.783 --> 00:36:46.063 처음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영어를 알아들으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00:36:46.083 --> 00:36:52.063 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놀랐죠 00:36:53.450 --> 00:36:58.797 로미오 선생님, 한국에 다시 갔을 때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00:36:58.817 --> 00:37:05.563 물론이죠 1980년에 가서 12일 동안 있었어요 00:37:05.583 --> 00:37:11.897 대부분 박물관, 국립 묘지 전투 현장을 방문했어요 00:37:11.917 --> 00:37:21.897 그런데 전투 현장이라고 방문한 곳이 제가 예전에 있었던 곳과 다른 장소였어요 00:37:21.917 --> 00:37:29.230 2012년에 다시 갔을 때는 올바른 전투 현장으로 데려가 주더군요 00:37:29.250 --> 00:37:34.530 가평 전투 현장을 갔을 때는 마치 6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죠 00:37:34.550 --> 00:37:38.997 참호에 들어가면 그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았어요 00:37:39.017 --> 00:37:41.297 당시와 똑같이 보존하고 있더군요 00:37:41.317 --> 00:37:48.930 맞은편에 중공군도 그대로 있는 것 같았어요 진짜 전투 현장에 온 기분이었죠 00:37:51.450 --> 00:38:00.930 한국은 그동안 기술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했어요 00:38:03.517 --> 00:38:09.863 저에게 한국인은 가장 예의 바르고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00:38:11.783 --> 00:38:16.063 그리고 서울에 있을 때 한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죠 00:38:16.083 --> 00:38:23.297 한국 여성들은 밤 중 어느 때든 걱정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어요 00:38:23.917 --> 00:38:34.397 다소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면 사형을 당하기 때문이죠 00:38:34.917 --> 00:38:38.163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나가서 이상한 행동을 할 수가 없죠 00:38:38.683 --> 00:38:40.997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어요 00:38:41.017 --> 00:38:47.397 그리고 아내가 말했듯이 어디를 가도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어요 00:38:48.350 --> 00:38:51.763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 네 00:38:51.783 --> 00:38:58.463 청년들에게 최대한 많이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00:38:59.450 --> 00:39:03.230 교육이 없으면 지식을 연마할 수 없어요 00:39:03.650 --> 00:39:08.830 지식이 있어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고 자신의 역사를 알 수 있어요 00:39:08.850 --> 00:39:13.663 자신의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부메랑처럼 돌아와 악순환을 반복하게 됩니다 00:39:16.383 --> 00:39:18.230 끝으로 부모님께 잘하세요 00:39:18.850 --> 00:39:19.797 감사합니다

구술자정보

목록
구술자 / 생년월일
Romeo Daley / 미상
국가 / 소속 및 직위
캐나다 / 캐나다 육군
주요활동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한국전쟁 유업재단
구술장소
구술요약
로미오 데일리는 18살에 캐나다 육군에 입대하였다. 아버지와 형제 모두 입대한 군인 가족이다. 육군으로 한국에 파병되어 다양한 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다. 전투 중 심각한 부상을 입고 캐나다로 복귀했지만 캐나다군이 관련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아 연금 수령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을 다시 방문해 예전 직접 참전했던 전투 지역을 다녀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