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 전 로링은 대위로 진급해 미국에서 1952년에 6·25전쟁 전투기 조종사로 투입되었음.
로링의 부대는 주로 북한과 중국군의 지상 표적들을 공습하였고 로링은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며 눈에 띄는 용맹함과 용감함으로 두각을 나타냄.
1952년 11월 22일 로링 소령은 관제사로부터 지상군을 포격하는 적 포병 진지에 폭격을 가하라는 지시를 받음.
로링 소령은 항공기가 타격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공습을 가했고 4,000피트 상공에서 비행기가 타격을 받자 적 진지 한가운데로 직접 비행기를 급강하여 목숨을 바쳐 적의 포병 진지를 완전히 파괴함.
로링 소령의 숭고한 정신, 최고의 용기는 적에게 최대의 피해를 가함과 더불어 자기희생으로 최고의 용기를 보여줌.
로링의 유해는 추락 후 수습되지 못하였고 메인주 라임스톤에 새로 건설된 공군기지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메인주 포틀랜드에 있는 로링 기념 공원이 그에게 헌정됨.
을지 무공훈장
故 윌리엄 어니스트 웨버
William E. Weber
국가(추천기관)
미국(한미동맹재단)
소속/직위
미국 187 공수 연대 전투단 대령
주요공적
950년 9월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되어 서울전투에서 처음 부상을 입음.
1950년 12월 대위로 진급해 미 187 공수연대 전투단 제3대대 중대장으로 전속되었고 1951년 2월 원주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미국으로 후송됨.
다리와 팔 일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 복귀하여현역으로 남아 NATO와 미국 육군 본부에서 복무.
2006년에는 6·25전쟁 전사자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 운동을 시작했고, 건설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는 데 힘썼으며 웨버 대령은 ‘추모의 벽’ 공사 완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 결과 2022년 7월 추모의 벽이 봉헌되었고, 그는 재단 회장을 역임함.
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은성훈장(Silver Star)과 퍼플 하트(Purple Heart)를 수훈
충무 무공훈장
故 끄리앙 끄라이 아따난
Kriengkrai Attanand
국가(추천기관)
태국(주태국대사관)
소속/직위
태국 21 연합 연대 1보병대대 원수
주요공적
1950년 11월 22일 평양으로 이동. 개성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미군과 튀르키예 여단 방어작전에 합류하여 개성을 방어하다 1950년 12월 13일 철수하여 오산 제4군단 지원군으로 합류.
제1기병사단 제5 기병연대와 함께 상주-문경 간 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였고 1951년 3월 26일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육군 중령이 지휘하는 21 연합연대 1보병 대대는 1기병 사단 8기병 연대에 합류하여 춘천 진격 전에서 승리.
중국군이 서울 북쪽을 향해 대공세를 펼치자, 21 연합 연대 제1대대는 유엔군과 함께 서울 방어를 위해 진격, 서울을 안전하게 방어하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의정부시까지 고지를 점령.
파병기간 동안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육군 중령은 용맹하고 비범하게 태국군을 지휘했고, “작은 호랑이 대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용감하게 전투함.
1951년 5월 한국에서의 임무가 끝난 후 미국으로부터 동성훈장을 수여함.
충무 무공훈장
알베르토 헤수스 페르난데스 알마다
Alberto Jesús Fernández Almada
국가(추천기관)
멕시코(주멕시코대사관)
소속/직위
미보병 4사단(21대대 B중대) 하사
주요공적
서울 등지에서 수많은 전투에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7개의 훈장과 기장을 수여 받았음. -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점령에 대한 공으로 Occ 훈장(Occ Medal (Japan) CIB, 1950. 7. 17.)을 수여받음.
- 1950년 8월 전투 중 유산탄 파편에 머리에 부상을 입어 상이훈장(Purple Heart, 1950.9.03.)을 수여받음.
- 하사로 진급 후 전방에서 훌륭한 전투 수행으로 선행훈장(Good Conduct Medal, 1950.9.03.) 을 수여함.
- 서울 2차 전투에 참여하여 대통령 부대표창(President Unit Citation, 1951.2.25.)을 수여함.
- 서울 2차 전투에 참가하여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 Medal, 1951.7.)을 수여함.
- 미국으로 귀국 후 6·25전쟁 전역에 참가한 경력으로 한국전쟁 종군기장(Korean Service Medal, 1951.7.10.)을 수여함.
- 미국 켄터키로 귀환 전에 6·25전쟁에 참여한 경력을 치하하는 목적으로 5동성 종군기장(Five Bronze Campaign Stars Medal, 1951.7.10.)을 수여함.
2021년 1월 26일 주멕시코 대한민국 대사관으로부터 6·25전쟁에 미군 소속으로 참전한 멕시코 참전용사로 확인하였음.
화랑 무공훈장
루이 카자뇌브
Louis CAZANEUVE
국가(추천기관)
프랑스(주 프랑스대사관)
소속/직위
프랑스 제6 증원군(1중대) 중사
주요공적
프랑스 제1중대에 배치되어 육군으로 참전함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 정찰 및 매복 활동뿐 아니라 적군의 보조 방어선에 침입해 화포와 박격포의 포탄 세례 속에서도 진지를 굳건히 지키는 데 이바지함.
특히 치열했던 불모고지(Old Baldy) 전투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당해 이 전투에서만 두 번의 부상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은 용맹함으로 8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 결국은 불모고지(Old Baldy)를 최종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움.
6.25 전투에서 가장 큰 방어전으로 기록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육탄전을 벌여 적군 600명 사살, 군기 2개, 경기관총 및 자동소총 60정, 중기관총 1정, 바주카포 5정, 박격포 7문 그리고 막대한 양의 소총을 획득하는 승리를 거두는 데 큰 공을 세움.
많은 부상병을 후송하는 등 뛰어난 희생정신으로 동료애를 발휘하여 다수의 전우를 구해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