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제3연대 3대대를 이끌고 한국전에 참전하여 1950년 11월 1일 적이 발사한 포탄이 착렬하면서 부상을 입고 사망함
1950년 10월 17일, 그린 중령이 속한 호주대대는 황주 쪽으로 북진, 사리원-평양진로를 차단하면서 다음날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진지를 점령, 방어태세에 들어감
사리원 북쪽에서 적의 퇴로차단 임무를 수행 중 갑자기 북상하는 적을 발견, 1발의 총탄도 소모하지 않고 북한군 1,982명을 포획
1950년 10월 20일, 정오 무렵 연연방 27여단과 호주 3대대는 평양에 입성, 숙천-박천-정주를 목표로 진격을 계속함
- 그린중령은 우측방의 고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네 번째 중대를 도로 좌측방에 투입하여 남하중인 미 공수부대와의 연결에 성공, 북한군 150명을 사살하고 239명을 포획함
1950년 10월 30일, 호주군 제3대대는 여단의 후위로 측방경계 임무를 수행하면서 북한군 패잔병 10명을 사로잡고 유엔공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정주에 무혈 입성, 38도선을 돌파한 지 20여일만에 최종목표를 탈취함
- 이 날 밤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이 그린 중령의 주변에서 착렬하면서 그린 중령이 부상을 입고 전사함
그린 중령은 한국전에서 사망 후 1951년 미국정부로부터 은성훈장(Silver Star Medal)을 추서 받고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