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1
00:00:05,567 --> 00:00:07,400
안녕하세요, 장군님
2
00:00:08,133 --> 00:00:09,176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3
00:00:09,200 --> 00:00:13,909
성함과 출생지 그리고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세요
4
00:00:14,867 --> 00:00:17,930
저는 라울 마르티네스
에스피노사라고 합니다
5
00:00:18,600 --> 00:00:24,633
1928년 2월 26일 산탄데르(Santander)의
벨레스(V?lez)에서 태어났습니다
6
00:00:25,867 --> 00:00:30,791
가족, 부모님, 형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7
00:00:31,533 --> 00:00:35,880
부모님 성함은 카포레안 마르티네스,
베아트리스 에스피노사입니다
8
00:00:36,467 --> 00:00:41,824
제 고향에서 얼마동안 사셨어요
9
00:00:42,200 --> 00:00:49,100
그 후에 칼리로 이주하셨고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돌아가셨어요
10
00:00:49,400 --> 00:00:56,300
그리고 제 형제들 중 큰 형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고위직이었죠
11
00:00:56,300 --> 00:00:59,009
큰 형은 제네바에서
11년 동안 있었습니다
12
00:00:59,267 --> 00:01:02,174
이후에는 에콰도르에서
군인으로 있었고요
13
00:01:02,333 --> 00:01:04,833
콜롬비아에서는 직업교육센터인 세낫
(CENAT, Centro de Educaci?n Formal Ense?anza
14
00:01:04,833 --> 00:01:07,133
y Aplicaci?n al Trabajo)에 해당하는
세캅(CECAP, Centro de Capacitaci?n Profesional)을 설립했죠
15
00:01:07,133 --> 00:01:10,310
그 후엔 국제노동기구(ILO) 미션 책임자로
몬테비데오에 가셨고요
16
00:01:10,567 --> 00:01:19,600
마지막엔 코스타리카에 정착하셨고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17
00:01:21,967 --> 00:01:23,967
둘째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어요
18
00:01:29,467 --> 00:01:42,400
여기 콜롬비아에서 일하다 마지막엔 미국으로 이주했고
유감스럽게도 몇 년 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
00:01:42,933 --> 00:01:47,733
그 다음 형제 이름은
카풀리안 마르티네스예요
20
00:01:47,733 --> 00:01:51,948
치과 의사인데 다른
치과 의사와 결혼했어요
21
00:01:52,233 --> 00:02:02,233
국립대학교 치의학 교수인데
지금은 보고타에 살고 있습니다
22
00:02:02,700 --> 00:02:06,890
여자 형제 중에 소라이다 데 두케는
칼리에 살고 있고
23
00:02:06,914 --> 00:02:11,467
카를로스 두케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어요
24
00:02:11,800 --> 00:02:17,300
셋째 여동생은 후디트 데 메히아예요
25
00:02:17,300 --> 00:02:28,249
산타 로사 데 비테르보 시의 검사인
페드로 메히아와 결혼했어요
26
00:02:28,533 --> 00:02:32,517
자유혁명운동회의소(C?mara por MRL
Movimiento Revolucionario Liberal)에 대표로 있었죠
27
00:02:32,700 --> 00:02:34,569
그 애도 세상을 떠났어요
28
00:02:34,700 --> 00:02:44,256
그리고 막내 콘수엘로 데 레날은 군인인
알바로 레날 사파타 대위와 결혼했는데
29
00:02:44,533 --> 00:02:49,100
대위는 군에서 제대해서 지금은
건설 엔지니어를 하고 있어요
30
00:02:50,767 --> 00:02:52,626
저는 아이가 셋이에요
31
00:02:52,833 --> 00:02:56,303
첫째를 율로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후안 파블로 마르티네스이고
32
00:02:56,533 --> 00:03:00,633
프랑스 밀라노에서
책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33
00:03:00,900 --> 00:03:05,167
둘째 아들 마우리시오는
소셜 커뮤니케이터입니다
34
00:03:05,300 --> 00:03:11,416
여기서 직업전문대학을 나왔어요
현재는 일하고 있습니다
35
00:03:11,533 --> 00:03:21,395
셋째 그러니까 막내는 이름이 로드리고이고
호주 브리즈번 대학교에서 공부했어요
36
00:03:21,600 --> 00:03:30,406
지금은 세계은행에서 일하고
훌륭한 북미 여성과 결혼했어요
37
00:03:30,567 --> 00:03:32,567
이상이 제 가족들입니다
38
00:03:36,200 --> 00:03:46,833
장군님, 장군님의 군복무 경력과 6·25전쟁 참전
군사학교에서의 교육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39
00:03:47,167 --> 00:03:57,285
사실 저는 산탄데르에 있는 소코로(Socorro) 대학
부설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군에 입대했어요
40
00:03:57,433 --> 00:04:04,489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했습니다
41
00:04:04,800 --> 00:04:13,833
그래서 산탄데르에 있는 소코로(Socorro)의
칼다스(Caldas) 제1 공병부대에서 학생 신분으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42
00:04:14,767 --> 00:04:25,873
그 기간 동안 그리고 여러 상황으로 인해
특히 운동과 체육, 학업 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43
00:04:26,067 --> 00:04:35,918
친척 중 한 분이 저에게 권했다고 해야 하나
사관학교에 들어갈 것을 추천했어요
44
00:04:36,167 --> 00:04:39,685
1944년에 그렇게 했지요
45
00:04:39,803 --> 00:04:43,302
군사학교에 입학했어요
46
00:04:43,567 --> 00:04:49,583
1944년과 1945년에 장교 수업을 들었고요
47
00:04:49,767 --> 00:04:59,176
1946년에는 군사학교 구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러니까 중대장이었죠
48
00:04:59,433 --> 00:05:08,568
훌륭한 경험을 위한 양성소의 일환으로
고등학교 1~3학년으로 구성된 학생부대를 만들었습니다
49
00:05:08,733 --> 00:05:14,567
저는 이곳의 지휘관이었는데 이 학생들은
군사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죠
50
00:05:14,567 --> 00:05:22,733
제가 이끌던 간부가 14명 정도였고
250명의 학생이 그곳에 속해 있었어요
51
00:05:22,833 --> 00:05:30,033
그 후, 1947년에
군사과정을 마쳤어요
52
00:05:30,033 --> 00:05:36,433
그리고 1948년에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53
00:05:36,867 --> 00:05:44,067
군사학교에서 특수한 상황에
대해 대비 중이었는데요
54
00:05:44,367 --> 00:05:48,187
아주 혹독한 시험이었죠
55
00:05:48,467 --> 00:05:55,374
4월 9일 오후 1시경 우리는 로드리게스 데 가이탄
박사님께서 살해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56
00:05:55,667 --> 00:06:00,344
저희 소위들의 근무지를
이동시켰다는 이유였죠
57
00:06:00,600 --> 00:06:05,420
제 경우에는 라스 크루세스(Las Cruces) 지구
2번가 8번 도로에 위치한
58
00:06:05,533 --> 00:06:10,367
경찰의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
지국으로 갔습니다
59
00:06:10,367 --> 00:06:13,533
거기서 5개월간 복무했습니다
60
00:06:13,533 --> 00:06:23,533
그리고 같은 해 그러니까 1948년 7월 5일 중위로
진급하여 포병학교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61
00:06:23,533 --> 00:06:31,000
포병학교에서의 경험이 저의 군사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네요
62
00:06:31,000 --> 00:06:36,700
전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63
00:06:36,700 --> 00:06:40,705
제 담당 지휘관님께서 포병 쪽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64
00:06:41,033 --> 00:06:47,451
그런데 동기가 부추겨서 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65
00:06:47,533 --> 00:06:51,229
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병무기의 성과를 보았을 때
66
00:06:51,367 --> 00:06:58,331
공병무기가 콜롬비아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67
00:06:58,467 --> 00:07:02,905
공병무기는 그 당시 장애물 구축,
다리 건설 등의 역할을 했습니다
68
00:07:03,067 --> 00:07:13,589
그래서 당시 진급했을 때 저는
공병무기 쪽으로 지원했어요
69
00:07:13,767 --> 00:07:19,967
군은 저를 당시에 메데진에 있는
공병학교로 보냈어요
70
00:07:20,333 --> 00:07:27,083
이후 메데진에서 바라카 알메하로 근무지를 이동해
베르가라 이 벨라스코(Bergara y Velazco) 공병부대로 갔습니다
71
00:07:27,300 --> 00:07:34,600
거기 있을 때가 아마
1950년 11월이었을 거예요
72
00:07:37,967 --> 00:07:45,559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73
00:07:45,767 --> 00:07:52,334
우리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바로 세계지도 앞에 모였습니다
74
00:07:52,600 --> 00:07:57,637
아마 젊어서 그랬겠지요
75
00:07:57,833 --> 00:08:01,290
제가 어렸을 때 벨기에령
콩고 파병 자원 모집을 하고 있는 걸 보고
76
00:08:01,433 --> 00:08:07,246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생각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77
00:08:07,442 --> 00:08:12,006
부모님께 파병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고
78
00:08:12,233 --> 00:08:20,755
그 당시에 이것이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었습니다
79
00:08:20,939 --> 00:08:32,973
동료들은 물론 공병이었던 에르난도 모로이 파라와
도밍고 메디나 리바네이라 박사님께도 말했었어요
80
00:08:33,433 --> 00:08:37,133
저희는 파병을 자원할 것이라고요
81
00:08:37,567 --> 00:08:44,733
그래서 군 지휘관님께 서신을 보내
한국 파병 자원의사를 전했습니다
82
00:08:45,033 --> 00:08:49,567
1950년 말 우리는 보고타에 모였어요
83
00:08:49,967 --> 00:08:54,015
1900년, 아니 잘못 말했네요
죄송해요
84
00:08:55,167 --> 00:09:05,200
1951년 그러니까 1월쯤에
여기 보병학교에 모였습니다
85
00:09:05,782 --> 00:09:13,640
그 후에 훈련을 받고
콜롬비아 부대에 합류했죠
86
00:09:14,406 --> 00:09:18,206
장군님, 한국에서의 장군님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87
00:09:18,733 --> 00:09:22,033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 어디로 도착하셨나요?
88
00:09:24,900 --> 00:09:34,333
1951년 6월 15일 오후 5시경,
부산 근방에 도착했습니다
89
00:09:35,900 --> 00:09:49,300
그리고 다음 날 그러니까 1951년 6월 16일
오전 9~10시경에 부산항 부두에 내렸어요
90
00:09:49,767 --> 00:10:00,044
그곳에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과
제8군이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91
00:10:00,333 --> 00:10:11,200
거기서 국제연합 군사훈련센터까지 이동했고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렀어요
92
00:10:12,533 --> 00:10:15,242
한국에 얼마나 계셨나요?
93
00:10:15,467 --> 00:10:17,567
저는 18개월 있었습니다
94
00:10:18,267 --> 00:10:21,948
배치받아 갔던 지역들을
기억하시나요?
95
00:10:22,200 --> 00:10:25,567
처음에는 부산에 있었어요
96
00:10:26,200 --> 00:10:32,733
다음은 화천지역에 있었습니다
97
00:10:34,000 --> 00:10:39,433
우리 부대가 예비 부대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었죠
98
00:10:41,100 --> 00:10:53,933
일단 우리 부대는 미 제9군단 제24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습니다
99
00:10:54,600 --> 00:11:05,531
6주간의 훈련 후 1951년 7월 31일쯤
우리는 최전방에 있었지만 화천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100
00:11:05,800 --> 00:11:16,600
그곳에서 미군이 거대한 댐을
폭파시키는 사건이 벌어졌죠
101
00:11:16,600 --> 00:11:26,967
이로 인해 계곡 전체에 홍수가 발생했고
중국군에게 대규모 사상자를 발생시켰습니다
102
00:11:27,833 --> 00:11:39,767
이후, 같은 해 10월 5일경
산정리 지역 최전방에 주둔했습니다
103
00:11:40,367 --> 00:11:48,367
거기서 당연히 나중에 하달된
새로운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104
00:11:48,867 --> 00:12:01,900
그리고 1952년 6월쯤 김화 철로에
우리 부대가 배치됐죠
105
00:12:02,500 --> 00:12:07,032
그곳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거든요
106
00:12:07,233 --> 00:12:17,567
그곳은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고지대여서 통제가 가능했습니다
107
00:12:18,433 --> 00:12:25,533
대략 김화, 철원, 평강
사이에 있었어요
108
00:12:25,533 --> 00:12:29,300
평강은 북한 수도가
아닌 다른 도시입니다
109
00:12:29,300 --> 00:12:36,767
1952년 콜롬비아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그곳에 있었어요
110
00:12:37,600 --> 00:12:41,467
도착했을 당시의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111
00:12:42,167 --> 00:12:49,167
그러니까 처음부터,
특히 15일 오후였어요
112
00:12:49,167 --> 00:12:55,233
몰골이 엉망인 수많은
아이들이 구걸하러 다녔어요
113
00:12:55,233 --> 00:13:03,067
그곳에서 좀 떨어져 있는 항구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114
00:13:03,067 --> 00:13:09,767
몰골이 엉망인 사람들을요
115
00:13:09,767 --> 00:13:19,767
하선했을 때와 그다음 날에는
통제된 장소의 사람들과 접촉이 가능해졌어요
116
00:13:19,767 --> 00:13:26,933
아시다시피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하는
그런 장소에서 말이에요
117
00:13:26,933 --> 00:13:36,433
저는 기아, 빈곤, 극빈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8
00:13:36,433 --> 00:13:43,433
도시가 파괴된 모습, 고아, 과부, 배고픔에 허덕여
아무거나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어요
119
00:13:43,433 --> 00:13:55,400
그 사람들은 쓰레기, 썩은 생선도 먹었는데
저희는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었거든요
120
00:13:55,400 --> 00:14:01,433
그러니까 부대 식량이죠
저희는 몇 가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121
00:14:01,433 --> 00:14:06,667
도움을 주고 여성분들과 그런 것들이요
122
00:14:07,000 --> 00:14:14,333
저는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알게 되었어요
123
00:14:14,333 --> 00:14:21,367
그러니까 언어 차이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124
00:14:21,367 --> 00:14:25,767
참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
꼭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125
00:14:25,767 --> 00:14:32,700
한국 국민에게 잔혹한 상황,
불행이 발생했다는 게 확실했어요
126
00:14:32,700 --> 00:14:35,067
그게 우리가 느낀 점이었어요
127
00:14:37,567 --> 00:14:45,467
지금 말씀해 주신 상황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특별한 기회가 있었나요?
128
00:14:45,467 --> 00:14:51,167
당연히 동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129
00:14:51,167 --> 00:14:56,400
자주는 아니지만 일요일에는
국제연합 모임에 갈 수 있었거든요
130
00:14:56,400 --> 00:15:02,800
거기서 술을 마시며 당시
생활환경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131
00:15:02,800 --> 00:15:09,967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군인들을
통해서 상황 파악을 했죠
132
00:15:09,967 --> 00:15:17,467
또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군인들에게
전쟁 상황과 진행 상황, 북한의 상황이 어떤지도 들었습니다
133
00:15:18,042 --> 00:15:25,908
한국 국민이 당면한 가슴 찢어질 듯한 상황
슬픈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134
00:15:25,933 --> 00:15:36,667
한국군이 김일성이 주도한 침공의 여파로 인해
직면한 상황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135
00:15:38,700 --> 00:15:44,300
한국에 계신 동안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으셨나요?
136
00:15:44,300 --> 00:15:56,767
저의 사기 문제이기도 했고 8군에서
명령으로 지시한 사항이기도 했습니다
137
00:15:56,767 --> 00:16:05,833
저희가 합류한 부대에서는 참전 군인의 가족에게
매주 편지를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138
00:16:06,000 --> 00:16:12,533
그리고 규모가 큰
배송체계가 있었어요
139
00:16:12,533 --> 00:16:18,367
편지의 경우 10일에서 15일 정도
걸려 도착했어요
140
00:16:18,367 --> 00:16:23,333
전투원의 사기를 확실히
높이기 위해 관심을 가졌어요
141
00:16:23,333 --> 00:16:31,467
가족들과 연락할 때는 놀랄 수 있으니
전투나 전쟁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142
00:16:31,467 --> 00:16:39,133
개인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항상 연락을 유지했어요
143
00:16:39,133 --> 00:16:42,467
특히 어머니와는 그렇게 했어요
144
00:16:42,467 --> 00:16:51,533
여기서 만난 다른 친구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145
00:16:52,200 --> 00:16:57,567
콜롬비아에서 어떤 내용을 장군님께 보내셨나요?
한국에 있는 장군님께 편지는 잘 전달되었나요?
146
00:16:57,567 --> 00:17:00,600
콜롬비아 상황에 대해
써서 보내곤 했습니다
147
00:17:00,933 --> 00:17:11,100
특히, 저희 어머니께서 계몽주의적 성향이 있으셔서
그 당시 50년대에 있었던 폭력상황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148
00:17:11,500 --> 00:17:15,967
나라를 휩쓸고 있던
그 상황에 대해서 말이죠
149
00:17:15,967 --> 00:17:23,933
저희가 떠나 있었던 시기에 게릴라
그 당시 집단 강도라 부르던 게릴라 집단이 너무 많았어요
150
00:17:24,567 --> 00:17:29,700
정치적인 폭력도 엄청났고요
151
00:17:29,700 --> 00:17:36,967
그리고 당연히 저희가 이야기한 것은
개인적인 내용과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152
00:17:38,933 --> 00:17:46,067
장군님이나 콜롬비아 부대와
다른 나라 군대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53
00:17:46,067 --> 00:17:47,600
관계가 어땠나요?
154
00:17:47,600 --> 00:17:57,900
부대마다 담당 지역이 있어서
접점이 있었던 나라가 많지 않았습니다
155
00:17:57,900 --> 00:18:03,200
상호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한 장소에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156
00:18:03,200 --> 00:18:12,433
처음으로 만난 군은 필리핀군이었습니다
함께 훈련 중이었으니까요
157
00:18:12,767 --> 00:18:21,500
전투기간을 통틀어 가끔씩 연락을 유지한
유일한 부대가 있습니다
158
00:18:21,500 --> 00:18:25,400
가까이 있었던 프랑스 부대였어요
159
00:18:25,400 --> 00:18:32,300
계속 접촉을 해야만 했던 미군 부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른 부대와는 접촉이 없었습니다
160
00:18:32,300 --> 00:18:37,433
특히 작전 중에 또는 한국 부대와의
연락 때문에 미군과 연락해야 했죠
161
00:18:37,532 --> 00:18:43,696
한국에 계시는 동안 평화나
기쁨의 순간이 있으셨나요?
162
00:18:43,721 --> 00:18:47,321
기억나시는 게 있나요?
163
00:18:47,840 --> 00:18:51,653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이요?
164
00:18:51,678 --> 00:18:52,508
있습니다
165
00:18:52,579 --> 00:19:03,225
냄비를 이용해 점심을
만들던 휴식시간이었어요
166
00:19:03,819 --> 00:19:08,070
동료들과 후방 지역
강 쪽으로 가곤 했습니다
167
00:19:08,175 --> 00:19:17,275
중국인에게서 빼앗아 온 식량과 전투식량으로
산코초(Sancocho) 같은 음식을 만들었었고
168
00:19:17,300 --> 00:19:21,933
아주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169
00:19:21,933 --> 00:19:31,567
또, 한국 밖에서 그러니까 일본에서
휴식/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좋았죠
170
00:19:31,933 --> 00:19:45,667
일본인들과 있으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일본인들과 아주 가깝고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171
00:19:45,826 --> 00:19:50,160
전쟁 중 생활 여건은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172
00:19:50,167 --> 00:19:56,167
음식이나 수면, 의류, 휴식시간,
날씨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173
00:19:56,833 --> 00:20:06,933
그러니까 생활에 대해서 말하면
미국은 힘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은 유지할 수 있었어요
174
00:20:06,933 --> 00:20:15,933
물류라고 하는 관점에서
아주 큰 힘이 있었다고 봅니다
175
00:20:15,933 --> 00:20:25,800
우리는 전부 미국식 군복을
지원받았어요
176
00:20:25,800 --> 00:20:35,067
장비, 의복, 식품 등이 다 있었는데
역시 미국에서 만든 좋은 제품이었어요
177
00:20:35,400 --> 00:20:44,200
건강, 보건, 위생, 청결 등에
대한 관리도 그랬고요
178
00:20:44,733 --> 00:20:57,100
그런 환경이 있어서 저희 군이
사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79
00:20:57,400 --> 00:21:01,200
거기서 저희가 배운 사실 중
하나가 바로
180
00:21:01,200 --> 00:21:10,667
전투원은 수염이 덥수룩한 더럽고 형편없이
흐트러진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81
00:21:10,667 --> 00:21:16,800
열병식 때처럼 상태를 유지하라는 명령도 있었죠
모든 게 반짝거리게 유지하는 상태로 말이에요
182
00:21:16,800 --> 00:21:20,300
왜냐하면 이게 사기를
올려주거든요
183
00:21:20,300 --> 00:21:22,433
목욕시설도 있었습니다
184
00:21:22,433 --> 00:21:26,533
당시 최전방에 있던 사람도
자주 교대하고 후방 지대로 갔거든요
185
00:21:26,533 --> 00:21:32,133
사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고요
186
00:21:32,133 --> 00:21:36,967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어요
187
00:21:37,667 --> 00:21:43,834
보급품은, C 레이션이라고
불리던 보급품이 있었어요
188
00:21:44,233 --> 00:21:55,433
담배와 껌, 과자, 샌드위치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189
00:21:55,433 --> 00:22:03,667
다양한 종류의 보급품이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메뉴가 들어 있는 전투식량도 있었어요
190
00:22:04,000 --> 00:22:10,300
음식과 관련해서는 전투원이 2일 이상
전투식량만 먹고 지낼 수 없도록 정해져 있어서
191
00:22:10,300 --> 00:22:17,567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음식을
비슷한 비율로 먹었습니다
192
00:22:17,567 --> 00:22:23,233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군인들도
똑같이 특별 보급품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193
00:22:23,233 --> 00:22:27,267
라틴 사람들과 우리 콜롬비아인들에게는
신기한 것이 있었습니다
194
00:22:27,267 --> 00:22:33,733
추수감사절에 부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최전방 병사에게 보내는 게 있었거든요
195
00:22:33,733 --> 00:22:38,500
부대에서 칠면조 다리랑
아이스크림을 주더라고요
196
00:22:38,500 --> 00:22:43,800
그것을 헬리콥터를 통해 보내줬는데
그게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였어요
197
00:22:43,800 --> 00:22:49,967
그런데 거기 있던 미국인들에게는
그렇게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게 전통이라고 하더라고요
198
00:22:49,967 --> 00:22:52,700
저희에게 그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199
00:22:53,500 --> 00:22:59,133
날씨 같은 경우는, 아실 텐데요
200
00:23:00,100 --> 00:23:08,533
미국에 살면서 보셨겠지만
여름에 더위가 어마어마하잖아요
201
00:23:08,533 --> 00:23:12,500
그 당시 6월과 7월에 마침
우리는 훈련 중이었습니다
202
00:23:12,500 --> 00:23:16,367
들판으로 나가야 했는데
거름이 뿌려져 있던 논이었죠
203
00:23:16,367 --> 00:23:25,833
악취가 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른 쪽으로 뛰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4
00:23:25,833 --> 00:23:34,333
그래서 우리는 사람은 더운 기후에도
추운 기후에도 적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5
00:23:34,333 --> 00:23:38,633
그러니까 그 상황에
적응하는 거죠
206
00:23:38,633 --> 00:23:42,233
1951년 11월 22일이었습니다
207
00:23:42,233 --> 00:23:48,133
첫눈이 왔고 우리에게 눈은 새로운 것이었어요
군인들이 나가서 뛰놀고 눈을 던지고 했습니다
208
00:23:48,133 --> 00:23:49,343
눈덩이를요
209
00:23:49,368 --> 00:23:56,967
그런데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니
아주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210
00:23:56,967 --> 00:24:01,400
손발에 괴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었어요
211
00:24:01,400 --> 00:24:11,067
특히, 장갑을 안 꼈을 때
아니면 조심성 없이 행동했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을요
212
00:24:11,067 --> 00:24:16,267
강한 추위 때문에 코나 연골의
골절 가능성이 있었죠
213
00:24:16,267 --> 00:24:19,800
그 시기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힘들었어요
214
00:24:19,800 --> 00:24:25,133
특히 겨울이랑 여름이요
봄과 가을은 아니었고요
215
00:24:25,133 --> 00:24:29,800
그냥 지나가는 시기잖아요
아시듯이 말이에요
216
00:24:30,667 --> 00:24:34,367
장군님, 전투 전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217
00:24:35,500 --> 00:24:41,400
한국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218
00:24:43,467 --> 00:24:52,233
가장 위험했던 건 당연히 1951년 10월 13일
노매드(Nomad)작전 기간이었죠
219
00:24:53,033 --> 00:25:01,667
그리고 이후에 C중대에 있을 때
김화 전투 상황에서도 위험했습니다
220
00:25:02,467 --> 00:25:07,300
적과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거든요
221
00:25:08,067 --> 00:25:13,933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전방에서 귀국 연락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222
00:25:13,933 --> 00:25:20,356
최전방에서 멀리, 그러니까 3~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223
00:25:20,533 --> 00:25:28,433
그리고 자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교대해서 콜롬비아로 돌아가야 했어요
224
00:25:28,433 --> 00:25:36,393
그래서 중대 지프차를 탔고
한 장병이 운전을 했습니다
225
00:25:36,567 --> 00:25:46,533
적들 시야에 안 보이던 장소를 벗어나자마자
포격을 받기 시작했어요
226
00:25:46,700 --> 00:25:49,447
말 그대로 포격이었어요
227
00:25:49,474 --> 00:25:57,000
저는 신의 가호를 빌면서 운전하던 병사에게
"최고속력으로 달려"라고 말했습니다
228
00:25:57,000 --> 00:26:04,767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행스럽게도 운이 따랐습니다
229
00:26:05,167 --> 00:26:10,967
저의 어머니의 기도와 운이 따라줘서 저는 살았어요
그래도 저에게는 괴로운 순간이었죠
230
00:26:10,967 --> 00:26:14,500
18개월 후에야 저는 그것이
포격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231
00:26:14,500 --> 00:26:17,133
제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32
00:26:17,133 --> 00:26:29,933
아니면 포탄 파편에 맞아 부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233
00:26:29,933 --> 00:26:33,300
400고지 점령 때도
힘들었습니다
234
00:26:33,300 --> 00:26:39,433
제가 있던 곳과 400고지 사이를
50mm 기관총을 가지고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235
00:26:39,433 --> 00:26:47,500
그 당시에는 대위이셨던 알바로 아야벨 대령님을
지원하는 작전을 위해서였습니다
236
00:26:48,033 --> 00:26:54,800
우리 진영과 적의 진영, 두 진영 사이에 제가 있게 되면서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237
00:26:54,800 --> 00:26:58,400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살아 나왔어요
238
00:26:58,400 --> 00:27:02,067
저는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서요
239
00:27:04,133 --> 00:27:09,200
장군님, 장군님께서 참여하셨던 전투 중
가장 중요했던 전투는 무엇이었나요?
240
00:27:09,500 --> 00:27:18,367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당연히 작전명령에 따라
순차적으로 목표 지점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241
00:27:18,367 --> 00:27:24,800
1951년 10월 13일에
콜롬비아 대대에게 부여된 목표 지점 확보요
242
00:27:24,800 --> 00:27:30,500
제가 C중대 제1소대장이었거든요
243
00:27:30,500 --> 00:27:38,693
10월 14일 0시경,
행군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244
00:27:38,867 --> 00:27:42,747
10월 13일이었을 수도 있어요
245
00:27:43,000 --> 00:27:48,325
목표 지점 부근에 도착해서
군의 사기를 북돋으려 했어요
246
00:27:48,600 --> 00:27:58,367
한국말을 모르기도 했고 목표 지점의 지형 때문에
그곳에 "라테타(La Tet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247
00:27:58,933 --> 00:28:03,800
그것이 제가 전투를 지휘하면서 했던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248
00:28:04,367 --> 00:28:10,641
목표 지점을 점령하고 최전방에 서 있었어요
미 제9군단의 최전방에요
249
00:28:10,800 --> 00:28:18,233
1951년 2월, 아니 10월 아침 8시에
목표 지점을 점령했습니다
250
00:28:18,233 --> 00:28:24,833
그 목표 지점을 점령했을 때
피해가 있었어요
251
00:28:24,833 --> 00:28:34,267
간단히 말씀드리면, 3명의 부사관이 부상을 입었고
장병 1명이 사망했습니다
252
00:28:34,267 --> 00:28:38,267
장병 1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니었고요
253
00:28:38,267 --> 00:28:43,500
그리고 돈 폴로(Don Polo)라고
이름 붙인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254
00:28:43,500 --> 00:28:50,567
이름이 폴로니아(Polan?a)였던 것 같은데요
폴로니아 대대장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255
00:28:50,567 --> 00:28:59,167
의심의 여지없이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256
00:28:59,400 --> 00:29:06,767
상세한 부분까지 임무를 완수했다는
자부심과 만족을 느꼈죠
257
00:29:06,767 --> 00:29:10,800
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258
00:29:12,100 --> 00:29:16,200
다른 경험도 말씀드릴 수 있는데 듣고 싶으세요?
259
00:29:16,200 --> 00:29:16,900
네, 말씀해 주세요
260
00:29:16,900 --> 00:29:26,167
발 대위님에게 작전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261
00:29:26,167 --> 00:29:33,400
저는 김화에 주둔하던
C중대에 소속되어 있었고요
262
00:29:34,533 --> 00:29:38,600
발 대위님은 콜롬비아에서 오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263
00:29:38,600 --> 00:29:42,133
전 1년 정도의
전투 경험이 있었고요
264
00:29:42,700 --> 00:29:47,033
경험 덕분에 전문가가 되어 전투 상황을 알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어요
265
00:29:47,033 --> 00:29:52,567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움직여야 했는데
대위님과 작전 수행자, 무전기
266
00:29:52,567 --> 00:29:56,467
그러니까 제 무전기와 대위님 무전기가
연결될 필요가 있었죠
267
00:29:56,467 --> 00:30:06,633
제 하사관 또는 제 대리 인력이
독수리고지라 불리는 장소로 이동해야 했어요
268
00:30:06,633 --> 00:30:16,000
지금 보시는 것과 비슷한 높이에 위치한
계곡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어요
269
00:30:16,000 --> 00:30:20,100
고지에선 그곳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었죠
270
00:30:20,100 --> 00:30:25,733
적진을 볼 수 있고 당연히
효율적인 공격이 가능했어요
271
00:30:25,733 --> 00:30:32,900
거기 배수로가 있었고
당연히 우리는 그곳을 통해 이동했습니다
272
00:30:32,900 --> 00:30:35,633
새벽에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273
00:30:36,067 --> 00:30:44,000
배수로로 우리의 모습을 감추고 있긴 했지만
전 그곳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어요
274
00:30:44,000 --> 00:30:47,600
위험한 상황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275
00:30:47,600 --> 00:30:52,467
대위님께 작전명령을 전달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설명드렸습니다
276
00:30:52,467 --> 00:31:00,767
그때 철조망이 빽빽이 세워진
독수리고지에서 본 것이 있었어요
277
00:31:02,267 --> 00:31:05,567
지뢰밭이었던 그곳에서
무엇인가 움직였습니다
278
00:31:05,567 --> 00:31:09,600
전투에 익숙한 저에게
대위님이 말씀하셨죠
279
00:31:09,600 --> 00:31:14,133
철조망 사이로 오는 것이 적이냐고 물어보시고는
"내가 쏘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280
00:31:14,133 --> 00:31:17,900
그래서 대위님께
중요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281
00:31:17,900 --> 00:31:25,300
그리고 여왕의 사선이라 부르던 곳에서
"이곳에선 적을 이용해야 합니다"라고 대위님께 말했습니다
282
00:31:25,300 --> 00:31:29,767
"적은 우리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283
00:31:29,767 --> 00:31:35,600
콜롬비아가 아닌 여기서 우리는 암살자 부대가 아닌
콜롬비아 군대로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84
00:31:36,433 --> 00:31:42,600
실제로 제가 잡은 포로가
투항하기도 했습니다
285
00:31:42,600 --> 00:31:51,667
그 포로는 포로들이 있던
거제 포로수용소로 보낼 예정이었던 대위였어요
286
00:31:51,667 --> 00:31:53,916
이게 또 다른 큰 경험이었습니다
287
00:31:54,033 --> 00:31:58,000
6·25전쟁이 장군님의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288
00:31:59,400 --> 00:32:06,733
당연히 개인의 관점에서도
인간 차원에서도 큰 영향이 있었습니다
289
00:32:07,133 --> 00:32:16,533
당연히 적 앞에서 죽음의 위협에
맞서는 것이니까요
290
00:32:17,967 --> 00:32:26,867
한국인들과 콜롬비아인들 사이에 그 어떤 교류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건 제가 알지 못했던 현실이었습니다
291
00:32:27,667 --> 00:32:34,933
그런데 인간적인 관점에서 전투는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92
00:32:35,067 --> 00:32:40,300
나에게 진정한 적은 적이 아닌
나의 양심이라는 사실이요
293
00:32:40,300 --> 00:32:46,767
그동안 받은 군사교육에 맞게
제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294
00:32:46,767 --> 00:32:54,700
제 삶에서 원칙과 반대로
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295
00:32:54,700 --> 00:33:03,767
일반적인 원칙에는 반하지만
직업군인에게는 합당한 일이었어요
296
00:33:04,267 --> 00:33:15,667
직업적 관점에서 보면 사관학교에서 배운
교육내용을 적용하기에 딱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297
00:33:15,667 --> 00:33:22,000
전쟁, 전술, 전투에 대한 것 말이에요
298
00:33:23,100 --> 00:33:32,933
결론적으로 군사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하게 된 것입니다
299
00:33:32,933 --> 00:33:39,067
현장에서 생생하게 적용하여
완전히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전투를 한 것입니다
300
00:33:39,700 --> 00:33:49,633
그래서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 그런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
저를 대단히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301
00:33:49,633 --> 00:33:58,533
그리고 제가 준장이 될 때까지
제 군인 인생에 그것을 최대한 적용했습니다
302
00:34:00,900 --> 00:34:06,267
전쟁 후에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나요?
303
00:34:06,267 --> 00:34:17,800
물론입니다, 제가 1990년에
6·25전쟁참전용사협회를 설립했거든요
304
00:34:18,633 --> 00:34:22,700
그때부터 갈 이유가 생겼어요
305
00:34:22,700 --> 00:34:31,700
협회가 국제6·25전쟁참전연합
소속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306
00:34:31,700 --> 00:34:39,713
연합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회의에
참석해야 했거든요
307
00:34:40,000 --> 00:34:50,367
한편, 6·25전쟁참전용사협회의 회장 자격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기로 개인적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308
00:34:50,367 --> 00:34:55,100
한국에 10번 정도는
간 것 같습니다
309
00:34:58,733 --> 00:35:07,367
정전협정 서명 61년이 지난 지금
남북의 현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10
00:35:08,100 --> 00:35:20,600
자주 저희가 진행하는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311
00:35:20,600 --> 00:35:28,267
콜롬비아 부대와 함대가 참여한
중요한 작전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312
00:35:29,400 --> 00:35:33,684
콜롬비아 해군의 참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313
00:35:34,133 --> 00:35:37,202
61년이나 지났는데도요
314
00:35:37,400 --> 00:35:47,100
양국 정부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사실상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에 서명했죠
315
00:35:47,433 --> 00:35:55,400
어떤 강연에서 대사님께서 자주 하시는 연설에서
관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16
00:35:55,400 --> 00:35:58,233
콜롬비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대화하면서도 듣고요
317
00:35:58,233 --> 00:36:02,041
이경덕 씨가 그 예입니다
318
00:36:02,167 --> 00:36:07,585
한국?콜롬비아 문화재단
이사장이신 분 말이에요
319
00:36:07,800 --> 00:36:19,500
항상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돌았는데
특히 북한이 공산독재체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20
00:36:19,900 --> 00:36:25,012
자유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무너진 곳이기 때문이죠
321
00:36:25,100 --> 00:36:29,000
반면 남한에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데
322
00:36:29,700 --> 00:36:37,433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러 간 것이었어요
323
00:36:37,433 --> 00:36:43,467
그래서 지금까지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은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입니다
324
00:36:43,467 --> 00:36:51,833
양국 그러니까 남북한의
정치적 관계 측면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325
00:36:51,833 --> 00:37:02,804
제가 최근에 읽은 바로는 남한 인구 중
대략 3만 명 정도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326
00:37:03,067 --> 00:37:10,267
이것이 계속해서 남북에 남아있는 긴장관계를
더 자극하고 있습니다
327
00:37:10,267 --> 00:37:16,233
특히, 북한 정부와
관련해서요
328
00:37:16,233 --> 00:37:25,133
한참 전에 합의한 판문점에서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때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329
00:37:25,133 --> 00:37:29,733
판문점에서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에 서명한 일을 말하는 겁니다
330
00:37:29,733 --> 00:37:33,033
결론적으로 현재 상황은
긴장감이 도는 상황입니다
331
00:37:33,033 --> 00:37:46,167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고 봅니다
332
00:37:47,433 --> 00:37:51,000
분쟁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어요
333
00:37:52,700 --> 00:37:58,767
장군님께서는 전 세계 6·25전쟁 참전용사가 남긴
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34
00:37:59,167 --> 00:38:03,733
전 세계적으로 남은 유산은
경험입니다
335
00:38:05,367 --> 00:38:14,133
북한의 대한민국 침공으로
생긴 것이죠
336
00:38:14,133 --> 00:38:24,533
국제연합을 창설하면서 1945년에 합의한 바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한 침공이었습니다
337
00:38:24,533 --> 00:38:29,433
그러니까 유엔의 안보리를 통해
모두는 아니었지만
338
00:38:29,433 --> 00:38:35,833
대부분의 국가,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안이 있었습니다
339
00:38:35,833 --> 00:38:48,967
1950년 7월 27일에 한국 안보를 위한 안보리의 소집에
대다수의 국가가 응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340
00:38:50,000 --> 00:39:00,433
전 세계적으로는 많은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341
00:39:00,433 --> 00:39:07,133
1945년에 종전했으나 상대적으로
빨리 끝난 전쟁이었죠
342
00:39:07,133 --> 00:39:15,633
그리고 1951년, 즉 6년 뒤에
새로운 지역 전쟁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343
00:39:15,633 --> 00:39:20,600
국제관계에서도 그랬고 제가 보기에
특히 영향이 컸던 부분이 있었어요
344
00:39:20,600 --> 00:39:29,600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 역량
또는 확장하겠다는 생각을 저지했습니다
345
00:39:29,600 --> 00:39:38,167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상황을 이용해 전 세계를 차지하겠다는
소련의 팽창전략을 저지할 수 있었던 거죠
346
00:39:40,900 --> 00:39:45,200
미래 세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347
00:39:45,433 --> 00:39:54,267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348
00:39:54,267 --> 00:40:02,667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때 민주주의적으로 적합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349
00:40:02,867 --> 00:40:08,067
공격하겠다는 마음이 아닌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350
00:40:08,067 --> 00:40:11,700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351
00:40:11,700 --> 00:40:16,367
잘 모르는 적으로부터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침략에 대비하는 것 말입니다
352
00:40:16,633 --> 00:40:25,000
장군님, 콜롬비아 6·25전쟁참전용사협회의 협회장으로서
장군님의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353
00:40:25,000 --> 00:40:31,533
6·25전쟁은 이미 잊혀진 전쟁이라는 판단에
반대하는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354
00:40:32,300 --> 00:40:40,800
수년 전부터 6·25전쟁 참전용사인
우리가 받은 느낌이 있습니다
355
00:40:41,233 --> 00:40:46,933
전쟁에 함께했던 6·25전쟁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들도 우리를 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356
00:40:46,933 --> 00:40:52,400
그래서 1년 전까지
하던 게 있습니다
357
00:40:54,900 --> 00:41:04,833
3달 간격으로 콜롬비아군이 수행한
최고의 작전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해 온 것입니다
358
00:41:04,833 --> 00:41:15,400
노매드작전, 클라이머작전, 발불라작전 같은 걸 기념했죠
해군에서는 시가렛작전도 있었고요
359
00:41:15,700 --> 00:41:25,467
또한, 다른 시도도 했습니다
360
00:41:26,567 --> 00:41:31,833
고등군사학교의 간부와
지도부에 연락을 했어요
361
00:41:31,833 --> 00:41:38,133
사관학교에도 연락을 했고 수년간
6·25전쟁에 대한 대화를 진행해 왔습니다
362
00:41:38,133 --> 00:41:46,233
대화에서는 특히 전쟁 그 자체에 대해서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교훈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363
00:41:46,233 --> 00:41:53,133
콜롬비아인들에게 이 전쟁이 준 경험과
배움에 대해서도 다루었고요
364
00:41:53,133 --> 00:41:59,267
이 모든 것들이 콜롬비아군
현대화의 문을 열어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