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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Raul Martinez Espinosa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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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1 00:00:05,567 --> 00:00:07,400 안녕하세요, 장군님 2 00:00:08,133 --> 00:00:09,176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3 00:00:09,200 --> 00:00:13,909 성함과 출생지 그리고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세요 4 00:00:14,867 --> 00:00:17,930 저는 라울 마르티네스 에스피노사라고 합니다 5 00:00:18,600 --> 00:00:24,633 1928년 2월 26일 산탄데르(Santander)의 벨레스(V?lez)에서 태어났습니다 6 00:00:25,867 --> 00:00:30,791 가족, 부모님, 형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7 00:00:31,533 --> 00:00:35,880 부모님 성함은 카포레안 마르티네스, 베아트리스 에스피노사입니다 8 00:00:36,467 --> 00:00:41,824 제 고향에서 얼마동안 사셨어요 9 00:00:42,200 --> 00:00:49,100 그 후에 칼리로 이주하셨고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돌아가셨어요 10 00:00:49,400 --> 00:00:56,300 그리고 제 형제들 중 큰 형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고위직이었죠 11 00:00:56,300 --> 00:00:59,009 큰 형은 제네바에서 11년 동안 있었습니다 12 00:00:59,267 --> 00:01:02,174 이후에는 에콰도르에서 군인으로 있었고요 13 00:01:02,333 --> 00:01:04,833 콜롬비아에서는 직업교육센터인 세낫 (CENAT, Centro de Educaci?n Formal Ense?anza 14 00:01:04,833 --> 00:01:07,133 y Aplicaci?n al Trabajo)에 해당하는 세캅(CECAP, Centro de Capacitaci?n Profesional)을 설립했죠 15 00:01:07,133 --> 00:01:10,310 그 후엔 국제노동기구(ILO) 미션 책임자로 몬테비데오에 가셨고요 16 00:01:10,567 --> 00:01:19,600 마지막엔 코스타리카에 정착하셨고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17 00:01:21,967 --> 00:01:23,967 둘째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어요 18 00:01:29,467 --> 00:01:42,400 여기 콜롬비아에서 일하다 마지막엔 미국으로 이주했고 유감스럽게도 몇 년 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 00:01:42,933 --> 00:01:47,733 그 다음 형제 이름은 카풀리안 마르티네스예요 20 00:01:47,733 --> 00:01:51,948 치과 의사인데 다른 치과 의사와 결혼했어요 21 00:01:52,233 --> 00:02:02,233 국립대학교 치의학 교수인데 지금은 보고타에 살고 있습니다 22 00:02:02,700 --> 00:02:06,890 여자 형제 중에 소라이다 데 두케는 칼리에 살고 있고 23 00:02:06,914 --> 00:02:11,467 카를로스 두케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어요 24 00:02:11,800 --> 00:02:17,300 셋째 여동생은 후디트 데 메히아예요 25 00:02:17,300 --> 00:02:28,249 산타 로사 데 비테르보 시의 검사인 페드로 메히아와 결혼했어요 26 00:02:28,533 --> 00:02:32,517 자유혁명운동회의소(C?mara por MRL Movimiento Revolucionario Liberal)에 대표로 있었죠 27 00:02:32,700 --> 00:02:34,569 그 애도 세상을 떠났어요 28 00:02:34,700 --> 00:02:44,256 그리고 막내 콘수엘로 데 레날은 군인인 알바로 레날 사파타 대위와 결혼했는데 29 00:02:44,533 --> 00:02:49,100 대위는 군에서 제대해서 지금은 건설 엔지니어를 하고 있어요 30 00:02:50,767 --> 00:02:52,626 저는 아이가 셋이에요 31 00:02:52,833 --> 00:02:56,303 첫째를 율로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후안 파블로 마르티네스이고 32 00:02:56,533 --> 00:03:00,633 프랑스 밀라노에서 책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33 00:03:00,900 --> 00:03:05,167 둘째 아들 마우리시오는 소셜 커뮤니케이터입니다 34 00:03:05,300 --> 00:03:11,416 여기서 직업전문대학을 나왔어요 현재는 일하고 있습니다 35 00:03:11,533 --> 00:03:21,395 셋째 그러니까 막내는 이름이 로드리고이고 호주 브리즈번 대학교에서 공부했어요 36 00:03:21,600 --> 00:03:30,406 지금은 세계은행에서 일하고 훌륭한 북미 여성과 결혼했어요 37 00:03:30,567 --> 00:03:32,567 이상이 제 가족들입니다 38 00:03:36,200 --> 00:03:46,833 장군님, 장군님의 군복무 경력과 6·25전쟁 참전 군사학교에서의 교육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39 00:03:47,167 --> 00:03:57,285 사실 저는 산탄데르에 있는 소코로(Socorro) 대학 부설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군에 입대했어요 40 00:03:57,433 --> 00:04:04,489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했습니다 41 00:04:04,800 --> 00:04:13,833 그래서 산탄데르에 있는 소코로(Socorro)의 칼다스(Caldas) 제1 공병부대에서 학생 신분으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42 00:04:14,767 --> 00:04:25,873 그 기간 동안 그리고 여러 상황으로 인해 특히 운동과 체육, 학업 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43 00:04:26,067 --> 00:04:35,918 친척 중 한 분이 저에게 권했다고 해야 하나 사관학교에 들어갈 것을 추천했어요 44 00:04:36,167 --> 00:04:39,685 1944년에 그렇게 했지요 45 00:04:39,803 --> 00:04:43,302 군사학교에 입학했어요 46 00:04:43,567 --> 00:04:49,583 1944년과 1945년에 장교 수업을 들었고요 47 00:04:49,767 --> 00:04:59,176 1946년에는 군사학교 구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러니까 중대장이었죠 48 00:04:59,433 --> 00:05:08,568 훌륭한 경험을 위한 양성소의 일환으로 고등학교 1~3학년으로 구성된 학생부대를 만들었습니다 49 00:05:08,733 --> 00:05:14,567 저는 이곳의 지휘관이었는데 이 학생들은 군사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죠 50 00:05:14,567 --> 00:05:22,733 제가 이끌던 간부가 14명 정도였고 250명의 학생이 그곳에 속해 있었어요 51 00:05:22,833 --> 00:05:30,033 그 후, 1947년에 군사과정을 마쳤어요 52 00:05:30,033 --> 00:05:36,433 그리고 1948년에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53 00:05:36,867 --> 00:05:44,067 군사학교에서 특수한 상황에 대해 대비 중이었는데요 54 00:05:44,367 --> 00:05:48,187 아주 혹독한 시험이었죠 55 00:05:48,467 --> 00:05:55,374 4월 9일 오후 1시경 우리는 로드리게스 데 가이탄 박사님께서 살해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56 00:05:55,667 --> 00:06:00,344 저희 소위들의 근무지를 이동시켰다는 이유였죠 57 00:06:00,600 --> 00:06:05,420 제 경우에는 라스 크루세스(Las Cruces) 지구 2번가 8번 도로에 위치한 58 00:06:05,533 --> 00:06:10,367 경찰의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 지국으로 갔습니다 59 00:06:10,367 --> 00:06:13,533 거기서 5개월간 복무했습니다 60 00:06:13,533 --> 00:06:23,533 그리고 같은 해 그러니까 1948년 7월 5일 중위로 진급하여 포병학교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61 00:06:23,533 --> 00:06:31,000 포병학교에서의 경험이 저의 군사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네요 62 00:06:31,000 --> 00:06:36,700 전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63 00:06:36,700 --> 00:06:40,705 제 담당 지휘관님께서 포병 쪽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64 00:06:41,033 --> 00:06:47,451 그런데 동기가 부추겨서 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65 00:06:47,533 --> 00:06:51,229 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병무기의 성과를 보았을 때 66 00:06:51,367 --> 00:06:58,331 공병무기가 콜롬비아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67 00:06:58,467 --> 00:07:02,905 공병무기는 그 당시 장애물 구축, 다리 건설 등의 역할을 했습니다 68 00:07:03,067 --> 00:07:13,589 그래서 당시 진급했을 때 저는 공병무기 쪽으로 지원했어요 69 00:07:13,767 --> 00:07:19,967 군은 저를 당시에 메데진에 있는 공병학교로 보냈어요 70 00:07:20,333 --> 00:07:27,083 이후 메데진에서 바라카 알메하로 근무지를 이동해 베르가라 이 벨라스코(Bergara y Velazco) 공병부대로 갔습니다 71 00:07:27,300 --> 00:07:34,600 거기 있을 때가 아마 1950년 11월이었을 거예요 72 00:07:37,967 --> 00:07:45,559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73 00:07:45,767 --> 00:07:52,334 우리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바로 세계지도 앞에 모였습니다 74 00:07:52,600 --> 00:07:57,637 아마 젊어서 그랬겠지요 75 00:07:57,833 --> 00:08:01,290 제가 어렸을 때 벨기에령 콩고 파병 자원 모집을 하고 있는 걸 보고 76 00:08:01,433 --> 00:08:07,246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생각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77 00:08:07,442 --> 00:08:12,006 부모님께 파병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고 78 00:08:12,233 --> 00:08:20,755 그 당시에 이것이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었습니다 79 00:08:20,939 --> 00:08:32,973 동료들은 물론 공병이었던 에르난도 모로이 파라와 도밍고 메디나 리바네이라 박사님께도 말했었어요 80 00:08:33,433 --> 00:08:37,133 저희는 파병을 자원할 것이라고요 81 00:08:37,567 --> 00:08:44,733 그래서 군 지휘관님께 서신을 보내 한국 파병 자원의사를 전했습니다 82 00:08:45,033 --> 00:08:49,567 1950년 말 우리는 보고타에 모였어요 83 00:08:49,967 --> 00:08:54,015 1900년, 아니 잘못 말했네요 죄송해요 84 00:08:55,167 --> 00:09:05,200 1951년 그러니까 1월쯤에 여기 보병학교에 모였습니다 85 00:09:05,782 --> 00:09:13,640 그 후에 훈련을 받고 콜롬비아 부대에 합류했죠 86 00:09:14,406 --> 00:09:18,206 장군님, 한국에서의 장군님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87 00:09:18,733 --> 00:09:22,033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 어디로 도착하셨나요? 88 00:09:24,900 --> 00:09:34,333 1951년 6월 15일 오후 5시경, 부산 근방에 도착했습니다 89 00:09:35,900 --> 00:09:49,300 그리고 다음 날 그러니까 1951년 6월 16일 오전 9~10시경에 부산항 부두에 내렸어요 90 00:09:49,767 --> 00:10:00,044 그곳에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과 제8군이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91 00:10:00,333 --> 00:10:11,200 거기서 국제연합 군사훈련센터까지 이동했고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렀어요 92 00:10:12,533 --> 00:10:15,242 한국에 얼마나 계셨나요? 93 00:10:15,467 --> 00:10:17,567 저는 18개월 있었습니다 94 00:10:18,267 --> 00:10:21,948 배치받아 갔던 지역들을 기억하시나요? 95 00:10:22,200 --> 00:10:25,567 처음에는 부산에 있었어요 96 00:10:26,200 --> 00:10:32,733 다음은 화천지역에 있었습니다 97 00:10:34,000 --> 00:10:39,433 우리 부대가 예비 부대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었죠 98 00:10:41,100 --> 00:10:53,933 일단 우리 부대는 미 제9군단 제24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습니다 99 00:10:54,600 --> 00:11:05,531 6주간의 훈련 후 1951년 7월 31일쯤 우리는 최전방에 있었지만 화천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100 00:11:05,800 --> 00:11:16,600 그곳에서 미군이 거대한 댐을 폭파시키는 사건이 벌어졌죠 101 00:11:16,600 --> 00:11:26,967 이로 인해 계곡 전체에 홍수가 발생했고 중국군에게 대규모 사상자를 발생시켰습니다 102 00:11:27,833 --> 00:11:39,767 이후, 같은 해 10월 5일경 산정리 지역 최전방에 주둔했습니다 103 00:11:40,367 --> 00:11:48,367 거기서 당연히 나중에 하달된 새로운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104 00:11:48,867 --> 00:12:01,900 그리고 1952년 6월쯤 김화 철로에 우리 부대가 배치됐죠 105 00:12:02,500 --> 00:12:07,032 그곳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거든요 106 00:12:07,233 --> 00:12:17,567 그곳은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고지대여서 통제가 가능했습니다 107 00:12:18,433 --> 00:12:25,533 대략 김화, 철원, 평강 사이에 있었어요 108 00:12:25,533 --> 00:12:29,300 평강은 북한 수도가 아닌 다른 도시입니다 109 00:12:29,300 --> 00:12:36,767 1952년 콜롬비아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그곳에 있었어요 110 00:12:37,600 --> 00:12:41,467 도착했을 당시의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111 00:12:42,167 --> 00:12:49,167 그러니까 처음부터, 특히 15일 오후였어요 112 00:12:49,167 --> 00:12:55,233 몰골이 엉망인 수많은 아이들이 구걸하러 다녔어요 113 00:12:55,233 --> 00:13:03,067 그곳에서 좀 떨어져 있는 항구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114 00:13:03,067 --> 00:13:09,767 몰골이 엉망인 사람들을요 115 00:13:09,767 --> 00:13:19,767 하선했을 때와 그다음 날에는 통제된 장소의 사람들과 접촉이 가능해졌어요 116 00:13:19,767 --> 00:13:26,933 아시다시피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하는 그런 장소에서 말이에요 117 00:13:26,933 --> 00:13:36,433 저는 기아, 빈곤, 극빈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8 00:13:36,433 --> 00:13:43,433 도시가 파괴된 모습, 고아, 과부, 배고픔에 허덕여 아무거나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어요 119 00:13:43,433 --> 00:13:55,400 그 사람들은 쓰레기, 썩은 생선도 먹었는데 저희는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었거든요 120 00:13:55,400 --> 00:14:01,433 그러니까 부대 식량이죠 저희는 몇 가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121 00:14:01,433 --> 00:14:06,667 도움을 주고 여성분들과 그런 것들이요 122 00:14:07,000 --> 00:14:14,333 저는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알게 되었어요 123 00:14:14,333 --> 00:14:21,367 그러니까 언어 차이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124 00:14:21,367 --> 00:14:25,767 참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 꼭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125 00:14:25,767 --> 00:14:32,700 한국 국민에게 잔혹한 상황, 불행이 발생했다는 게 확실했어요 126 00:14:32,700 --> 00:14:35,067 그게 우리가 느낀 점이었어요 127 00:14:37,567 --> 00:14:45,467 지금 말씀해 주신 상황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특별한 기회가 있었나요? 128 00:14:45,467 --> 00:14:51,167 당연히 동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129 00:14:51,167 --> 00:14:56,400 자주는 아니지만 일요일에는 국제연합 모임에 갈 수 있었거든요 130 00:14:56,400 --> 00:15:02,800 거기서 술을 마시며 당시 생활환경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131 00:15:02,800 --> 00:15:09,967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군인들을 통해서 상황 파악을 했죠 132 00:15:09,967 --> 00:15:17,467 또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군인들에게 전쟁 상황과 진행 상황, 북한의 상황이 어떤지도 들었습니다 133 00:15:18,042 --> 00:15:25,908 한국 국민이 당면한 가슴 찢어질 듯한 상황 슬픈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134 00:15:25,933 --> 00:15:36,667 한국군이 김일성이 주도한 침공의 여파로 인해 직면한 상황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135 00:15:38,700 --> 00:15:44,300 한국에 계신 동안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으셨나요? 136 00:15:44,300 --> 00:15:56,767 저의 사기 문제이기도 했고 8군에서 명령으로 지시한 사항이기도 했습니다 137 00:15:56,767 --> 00:16:05,833 저희가 합류한 부대에서는 참전 군인의 가족에게 매주 편지를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138 00:16:06,000 --> 00:16:12,533 그리고 규모가 큰 배송체계가 있었어요 139 00:16:12,533 --> 00:16:18,367 편지의 경우 10일에서 15일 정도 걸려 도착했어요 140 00:16:18,367 --> 00:16:23,333 전투원의 사기를 확실히 높이기 위해 관심을 가졌어요 141 00:16:23,333 --> 00:16:31,467 가족들과 연락할 때는 놀랄 수 있으니 전투나 전쟁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142 00:16:31,467 --> 00:16:39,133 개인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항상 연락을 유지했어요 143 00:16:39,133 --> 00:16:42,467 특히 어머니와는 그렇게 했어요 144 00:16:42,467 --> 00:16:51,533 여기서 만난 다른 친구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145 00:16:52,200 --> 00:16:57,567 콜롬비아에서 어떤 내용을 장군님께 보내셨나요? 한국에 있는 장군님께 편지는 잘 전달되었나요? 146 00:16:57,567 --> 00:17:00,600 콜롬비아 상황에 대해 써서 보내곤 했습니다 147 00:17:00,933 --> 00:17:11,100 특히, 저희 어머니께서 계몽주의적 성향이 있으셔서 그 당시 50년대에 있었던 폭력상황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148 00:17:11,500 --> 00:17:15,967 나라를 휩쓸고 있던 그 상황에 대해서 말이죠 149 00:17:15,967 --> 00:17:23,933 저희가 떠나 있었던 시기에 게릴라 그 당시 집단 강도라 부르던 게릴라 집단이 너무 많았어요 150 00:17:24,567 --> 00:17:29,700 정치적인 폭력도 엄청났고요 151 00:17:29,700 --> 00:17:36,967 그리고 당연히 저희가 이야기한 것은 개인적인 내용과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152 00:17:38,933 --> 00:17:46,067 장군님이나 콜롬비아 부대와 다른 나라 군대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53 00:17:46,067 --> 00:17:47,600 관계가 어땠나요? 154 00:17:47,600 --> 00:17:57,900 부대마다 담당 지역이 있어서 접점이 있었던 나라가 많지 않았습니다 155 00:17:57,900 --> 00:18:03,200 상호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한 장소에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156 00:18:03,200 --> 00:18:12,433 처음으로 만난 군은 필리핀군이었습니다 함께 훈련 중이었으니까요 157 00:18:12,767 --> 00:18:21,500 전투기간을 통틀어 가끔씩 연락을 유지한 유일한 부대가 있습니다 158 00:18:21,500 --> 00:18:25,400 가까이 있었던 프랑스 부대였어요 159 00:18:25,400 --> 00:18:32,300 계속 접촉을 해야만 했던 미군 부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른 부대와는 접촉이 없었습니다 160 00:18:32,300 --> 00:18:37,433 특히 작전 중에 또는 한국 부대와의 연락 때문에 미군과 연락해야 했죠 161 00:18:37,532 --> 00:18:43,696 한국에 계시는 동안 평화나 기쁨의 순간이 있으셨나요? 162 00:18:43,721 --> 00:18:47,321 기억나시는 게 있나요? 163 00:18:47,840 --> 00:18:51,653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이요? 164 00:18:51,678 --> 00:18:52,508 있습니다 165 00:18:52,579 --> 00:19:03,225 냄비를 이용해 점심을 만들던 휴식시간이었어요 166 00:19:03,819 --> 00:19:08,070 동료들과 후방 지역 강 쪽으로 가곤 했습니다 167 00:19:08,175 --> 00:19:17,275 중국인에게서 빼앗아 온 식량과 전투식량으로 산코초(Sancocho) 같은 음식을 만들었었고 168 00:19:17,300 --> 00:19:21,933 아주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169 00:19:21,933 --> 00:19:31,567 또, 한국 밖에서 그러니까 일본에서 휴식/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좋았죠 170 00:19:31,933 --> 00:19:45,667 일본인들과 있으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일본인들과 아주 가깝고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171 00:19:45,826 --> 00:19:50,160 전쟁 중 생활 여건은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172 00:19:50,167 --> 00:19:56,167 음식이나 수면, 의류, 휴식시간, 날씨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173 00:19:56,833 --> 00:20:06,933 그러니까 생활에 대해서 말하면 미국은 힘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은 유지할 수 있었어요 174 00:20:06,933 --> 00:20:15,933 물류라고 하는 관점에서 아주 큰 힘이 있었다고 봅니다 175 00:20:15,933 --> 00:20:25,800 우리는 전부 미국식 군복을 지원받았어요 176 00:20:25,800 --> 00:20:35,067 장비, 의복, 식품 등이 다 있었는데 역시 미국에서 만든 좋은 제품이었어요 177 00:20:35,400 --> 00:20:44,200 건강, 보건, 위생, 청결 등에 대한 관리도 그랬고요 178 00:20:44,733 --> 00:20:57,100 그런 환경이 있어서 저희 군이 사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79 00:20:57,400 --> 00:21:01,200 거기서 저희가 배운 사실 중 하나가 바로 180 00:21:01,200 --> 00:21:10,667 전투원은 수염이 덥수룩한 더럽고 형편없이 흐트러진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81 00:21:10,667 --> 00:21:16,800 열병식 때처럼 상태를 유지하라는 명령도 있었죠 모든 게 반짝거리게 유지하는 상태로 말이에요 182 00:21:16,800 --> 00:21:20,300 왜냐하면 이게 사기를 올려주거든요 183 00:21:20,300 --> 00:21:22,433 목욕시설도 있었습니다 184 00:21:22,433 --> 00:21:26,533 당시 최전방에 있던 사람도 자주 교대하고 후방 지대로 갔거든요 185 00:21:26,533 --> 00:21:32,133 사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고요 186 00:21:32,133 --> 00:21:36,967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어요 187 00:21:37,667 --> 00:21:43,834 보급품은, C 레이션이라고 불리던 보급품이 있었어요 188 00:21:44,233 --> 00:21:55,433 담배와 껌, 과자, 샌드위치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189 00:21:55,433 --> 00:22:03,667 다양한 종류의 보급품이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메뉴가 들어 있는 전투식량도 있었어요 190 00:22:04,000 --> 00:22:10,300 음식과 관련해서는 전투원이 2일 이상 전투식량만 먹고 지낼 수 없도록 정해져 있어서 191 00:22:10,300 --> 00:22:17,567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음식을 비슷한 비율로 먹었습니다 192 00:22:17,567 --> 00:22:23,233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군인들도 똑같이 특별 보급품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193 00:22:23,233 --> 00:22:27,267 라틴 사람들과 우리 콜롬비아인들에게는 신기한 것이 있었습니다 194 00:22:27,267 --> 00:22:33,733 추수감사절에 부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최전방 병사에게 보내는 게 있었거든요 195 00:22:33,733 --> 00:22:38,500 부대에서 칠면조 다리랑 아이스크림을 주더라고요 196 00:22:38,500 --> 00:22:43,800 그것을 헬리콥터를 통해 보내줬는데 그게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였어요 197 00:22:43,800 --> 00:22:49,967 그런데 거기 있던 미국인들에게는 그렇게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게 전통이라고 하더라고요 198 00:22:49,967 --> 00:22:52,700 저희에게 그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199 00:22:53,500 --> 00:22:59,133 날씨 같은 경우는, 아실 텐데요 200 00:23:00,100 --> 00:23:08,533 미국에 살면서 보셨겠지만 여름에 더위가 어마어마하잖아요 201 00:23:08,533 --> 00:23:12,500 그 당시 6월과 7월에 마침 우리는 훈련 중이었습니다 202 00:23:12,500 --> 00:23:16,367 들판으로 나가야 했는데 거름이 뿌려져 있던 논이었죠 203 00:23:16,367 --> 00:23:25,833 악취가 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른 쪽으로 뛰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4 00:23:25,833 --> 00:23:34,333 그래서 우리는 사람은 더운 기후에도 추운 기후에도 적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5 00:23:34,333 --> 00:23:38,633 그러니까 그 상황에 적응하는 거죠 206 00:23:38,633 --> 00:23:42,233 1951년 11월 22일이었습니다 207 00:23:42,233 --> 00:23:48,133 첫눈이 왔고 우리에게 눈은 새로운 것이었어요 군인들이 나가서 뛰놀고 눈을 던지고 했습니다 208 00:23:48,133 --> 00:23:49,343 눈덩이를요 209 00:23:49,368 --> 00:23:56,967 그런데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니 아주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210 00:23:56,967 --> 00:24:01,400 손발에 괴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었어요 211 00:24:01,400 --> 00:24:11,067 특히, 장갑을 안 꼈을 때 아니면 조심성 없이 행동했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을요 212 00:24:11,067 --> 00:24:16,267 강한 추위 때문에 코나 연골의 골절 가능성이 있었죠 213 00:24:16,267 --> 00:24:19,800 그 시기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힘들었어요 214 00:24:19,800 --> 00:24:25,133 특히 겨울이랑 여름이요 봄과 가을은 아니었고요 215 00:24:25,133 --> 00:24:29,800 그냥 지나가는 시기잖아요 아시듯이 말이에요 216 00:24:30,667 --> 00:24:34,367 장군님, 전투 전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217 00:24:35,500 --> 00:24:41,400 한국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218 00:24:43,467 --> 00:24:52,233 가장 위험했던 건 당연히 1951년 10월 13일 노매드(Nomad)작전 기간이었죠 219 00:24:53,033 --> 00:25:01,667 그리고 이후에 C중대에 있을 때 김화 전투 상황에서도 위험했습니다 220 00:25:02,467 --> 00:25:07,300 적과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거든요 221 00:25:08,067 --> 00:25:13,933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전방에서 귀국 연락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222 00:25:13,933 --> 00:25:20,356 최전방에서 멀리, 그러니까 3~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223 00:25:20,533 --> 00:25:28,433 그리고 자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교대해서 콜롬비아로 돌아가야 했어요 224 00:25:28,433 --> 00:25:36,393 그래서 중대 지프차를 탔고 한 장병이 운전을 했습니다 225 00:25:36,567 --> 00:25:46,533 적들 시야에 안 보이던 장소를 벗어나자마자 포격을 받기 시작했어요 226 00:25:46,700 --> 00:25:49,447 말 그대로 포격이었어요 227 00:25:49,474 --> 00:25:57,000 저는 신의 가호를 빌면서 운전하던 병사에게 "최고속력으로 달려"라고 말했습니다 228 00:25:57,000 --> 00:26:04,767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행스럽게도 운이 따랐습니다 229 00:26:05,167 --> 00:26:10,967 저의 어머니의 기도와 운이 따라줘서 저는 살았어요 그래도 저에게는 괴로운 순간이었죠 230 00:26:10,967 --> 00:26:14,500 18개월 후에야 저는 그것이 포격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231 00:26:14,500 --> 00:26:17,133 제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32 00:26:17,133 --> 00:26:29,933 아니면 포탄 파편에 맞아 부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233 00:26:29,933 --> 00:26:33,300 400고지 점령 때도 힘들었습니다 234 00:26:33,300 --> 00:26:39,433 제가 있던 곳과 400고지 사이를 50mm 기관총을 가지고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235 00:26:39,433 --> 00:26:47,500 그 당시에는 대위이셨던 알바로 아야벨 대령님을 지원하는 작전을 위해서였습니다 236 00:26:48,033 --> 00:26:54,800 우리 진영과 적의 진영, 두 진영 사이에 제가 있게 되면서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237 00:26:54,800 --> 00:26:58,400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살아 나왔어요 238 00:26:58,400 --> 00:27:02,067 저는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서요 239 00:27:04,133 --> 00:27:09,200 장군님, 장군님께서 참여하셨던 전투 중 가장 중요했던 전투는 무엇이었나요? 240 00:27:09,500 --> 00:27:18,367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당연히 작전명령에 따라 순차적으로 목표 지점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241 00:27:18,367 --> 00:27:24,800 1951년 10월 13일에 콜롬비아 대대에게 부여된 목표 지점 확보요 242 00:27:24,800 --> 00:27:30,500 제가 C중대 제1소대장이었거든요 243 00:27:30,500 --> 00:27:38,693 10월 14일 0시경, 행군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244 00:27:38,867 --> 00:27:42,747 10월 13일이었을 수도 있어요 245 00:27:43,000 --> 00:27:48,325 목표 지점 부근에 도착해서 군의 사기를 북돋으려 했어요 246 00:27:48,600 --> 00:27:58,367 한국말을 모르기도 했고 목표 지점의 지형 때문에 그곳에 "라테타(La Tet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247 00:27:58,933 --> 00:28:03,800 그것이 제가 전투를 지휘하면서 했던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248 00:28:04,367 --> 00:28:10,641 목표 지점을 점령하고 최전방에 서 있었어요 미 제9군단의 최전방에요 249 00:28:10,800 --> 00:28:18,233 1951년 2월, 아니 10월 아침 8시에 목표 지점을 점령했습니다 250 00:28:18,233 --> 00:28:24,833 그 목표 지점을 점령했을 때 피해가 있었어요 251 00:28:24,833 --> 00:28:34,267 간단히 말씀드리면, 3명의 부사관이 부상을 입었고 장병 1명이 사망했습니다 252 00:28:34,267 --> 00:28:38,267 장병 1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니었고요 253 00:28:38,267 --> 00:28:43,500 그리고 돈 폴로(Don Polo)라고 이름 붙인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254 00:28:43,500 --> 00:28:50,567 이름이 폴로니아(Polan?a)였던 것 같은데요 폴로니아 대대장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255 00:28:50,567 --> 00:28:59,167 의심의 여지없이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256 00:28:59,400 --> 00:29:06,767 상세한 부분까지 임무를 완수했다는 자부심과 만족을 느꼈죠 257 00:29:06,767 --> 00:29:10,800 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258 00:29:12,100 --> 00:29:16,200 다른 경험도 말씀드릴 수 있는데 듣고 싶으세요? 259 00:29:16,200 --> 00:29:16,900 네, 말씀해 주세요 260 00:29:16,900 --> 00:29:26,167 발 대위님에게 작전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261 00:29:26,167 --> 00:29:33,400 저는 김화에 주둔하던 C중대에 소속되어 있었고요 262 00:29:34,533 --> 00:29:38,600 발 대위님은 콜롬비아에서 오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263 00:29:38,600 --> 00:29:42,133 전 1년 정도의 전투 경험이 있었고요 264 00:29:42,700 --> 00:29:47,033 경험 덕분에 전문가가 되어 전투 상황을 알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어요 265 00:29:47,033 --> 00:29:52,567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움직여야 했는데 대위님과 작전 수행자, 무전기 266 00:29:52,567 --> 00:29:56,467 그러니까 제 무전기와 대위님 무전기가 연결될 필요가 있었죠 267 00:29:56,467 --> 00:30:06,633 제 하사관 또는 제 대리 인력이 독수리고지라 불리는 장소로 이동해야 했어요 268 00:30:06,633 --> 00:30:16,000 지금 보시는 것과 비슷한 높이에 위치한 계곡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어요 269 00:30:16,000 --> 00:30:20,100 고지에선 그곳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었죠 270 00:30:20,100 --> 00:30:25,733 적진을 볼 수 있고 당연히 효율적인 공격이 가능했어요 271 00:30:25,733 --> 00:30:32,900 거기 배수로가 있었고 당연히 우리는 그곳을 통해 이동했습니다 272 00:30:32,900 --> 00:30:35,633 새벽에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273 00:30:36,067 --> 00:30:44,000 배수로로 우리의 모습을 감추고 있긴 했지만 전 그곳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어요 274 00:30:44,000 --> 00:30:47,600 위험한 상황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275 00:30:47,600 --> 00:30:52,467 대위님께 작전명령을 전달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설명드렸습니다 276 00:30:52,467 --> 00:31:00,767 그때 철조망이 빽빽이 세워진 독수리고지에서 본 것이 있었어요 277 00:31:02,267 --> 00:31:05,567 지뢰밭이었던 그곳에서 무엇인가 움직였습니다 278 00:31:05,567 --> 00:31:09,600 전투에 익숙한 저에게 대위님이 말씀하셨죠 279 00:31:09,600 --> 00:31:14,133 철조망 사이로 오는 것이 적이냐고 물어보시고는 "내가 쏘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280 00:31:14,133 --> 00:31:17,900 그래서 대위님께 중요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281 00:31:17,900 --> 00:31:25,300 그리고 여왕의 사선이라 부르던 곳에서 "이곳에선 적을 이용해야 합니다"라고 대위님께 말했습니다 282 00:31:25,300 --> 00:31:29,767 "적은 우리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283 00:31:29,767 --> 00:31:35,600 콜롬비아가 아닌 여기서 우리는 암살자 부대가 아닌 콜롬비아 군대로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84 00:31:36,433 --> 00:31:42,600 실제로 제가 잡은 포로가 투항하기도 했습니다 285 00:31:42,600 --> 00:31:51,667 그 포로는 포로들이 있던 거제 포로수용소로 보낼 예정이었던 대위였어요 286 00:31:51,667 --> 00:31:53,916 이게 또 다른 큰 경험이었습니다 287 00:31:54,033 --> 00:31:58,000 6·25전쟁이 장군님의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288 00:31:59,400 --> 00:32:06,733 당연히 개인의 관점에서도 인간 차원에서도 큰 영향이 있었습니다 289 00:32:07,133 --> 00:32:16,533 당연히 적 앞에서 죽음의 위협에 맞서는 것이니까요 290 00:32:17,967 --> 00:32:26,867 한국인들과 콜롬비아인들 사이에 그 어떤 교류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건 제가 알지 못했던 현실이었습니다 291 00:32:27,667 --> 00:32:34,933 그런데 인간적인 관점에서 전투는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92 00:32:35,067 --> 00:32:40,300 나에게 진정한 적은 적이 아닌 나의 양심이라는 사실이요 293 00:32:40,300 --> 00:32:46,767 그동안 받은 군사교육에 맞게 제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294 00:32:46,767 --> 00:32:54,700 제 삶에서 원칙과 반대로 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295 00:32:54,700 --> 00:33:03,767 일반적인 원칙에는 반하지만 직업군인에게는 합당한 일이었어요 296 00:33:04,267 --> 00:33:15,667 직업적 관점에서 보면 사관학교에서 배운 교육내용을 적용하기에 딱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297 00:33:15,667 --> 00:33:22,000 전쟁, 전술, 전투에 대한 것 말이에요 298 00:33:23,100 --> 00:33:32,933 결론적으로 군사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하게 된 것입니다 299 00:33:32,933 --> 00:33:39,067 현장에서 생생하게 적용하여 완전히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전투를 한 것입니다 300 00:33:39,700 --> 00:33:49,633 그래서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 그런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 저를 대단히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301 00:33:49,633 --> 00:33:58,533 그리고 제가 준장이 될 때까지 제 군인 인생에 그것을 최대한 적용했습니다 302 00:34:00,900 --> 00:34:06,267 전쟁 후에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나요? 303 00:34:06,267 --> 00:34:17,800 물론입니다, 제가 1990년에 6·25전쟁참전용사협회를 설립했거든요 304 00:34:18,633 --> 00:34:22,700 그때부터 갈 이유가 생겼어요 305 00:34:22,700 --> 00:34:31,700 협회가 국제6·25전쟁참전연합 소속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306 00:34:31,700 --> 00:34:39,713 연합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회의에 참석해야 했거든요 307 00:34:40,000 --> 00:34:50,367 한편, 6·25전쟁참전용사협회의 회장 자격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기로 개인적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308 00:34:50,367 --> 00:34:55,100 한국에 10번 정도는 간 것 같습니다 309 00:34:58,733 --> 00:35:07,367 정전협정 서명 61년이 지난 지금 남북의 현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10 00:35:08,100 --> 00:35:20,600 자주 저희가 진행하는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311 00:35:20,600 --> 00:35:28,267 콜롬비아 부대와 함대가 참여한 중요한 작전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312 00:35:29,400 --> 00:35:33,684 콜롬비아 해군의 참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313 00:35:34,133 --> 00:35:37,202 61년이나 지났는데도요 314 00:35:37,400 --> 00:35:47,100 양국 정부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사실상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에 서명했죠 315 00:35:47,433 --> 00:35:55,400 어떤 강연에서 대사님께서 자주 하시는 연설에서 관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16 00:35:55,400 --> 00:35:58,233 콜롬비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대화하면서도 듣고요 317 00:35:58,233 --> 00:36:02,041 이경덕 씨가 그 예입니다 318 00:36:02,167 --> 00:36:07,585 한국?콜롬비아 문화재단 이사장이신 분 말이에요 319 00:36:07,800 --> 00:36:19,500 항상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돌았는데 특히 북한이 공산독재체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20 00:36:19,900 --> 00:36:25,012 자유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무너진 곳이기 때문이죠 321 00:36:25,100 --> 00:36:29,000 반면 남한에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데 322 00:36:29,700 --> 00:36:37,433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러 간 것이었어요 323 00:36:37,433 --> 00:36:43,467 그래서 지금까지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은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입니다 324 00:36:43,467 --> 00:36:51,833 양국 그러니까 남북한의 정치적 관계 측면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325 00:36:51,833 --> 00:37:02,804 제가 최근에 읽은 바로는 남한 인구 중 대략 3만 명 정도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326 00:37:03,067 --> 00:37:10,267 이것이 계속해서 남북에 남아있는 긴장관계를 더 자극하고 있습니다 327 00:37:10,267 --> 00:37:16,233 특히, 북한 정부와 관련해서요 328 00:37:16,233 --> 00:37:25,133 한참 전에 합의한 판문점에서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때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329 00:37:25,133 --> 00:37:29,733 판문점에서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에 서명한 일을 말하는 겁니다 330 00:37:29,733 --> 00:37:33,033 결론적으로 현재 상황은 긴장감이 도는 상황입니다 331 00:37:33,033 --> 00:37:46,167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고 봅니다 332 00:37:47,433 --> 00:37:51,000 분쟁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어요 333 00:37:52,700 --> 00:37:58,767 장군님께서는 전 세계 6·25전쟁 참전용사가 남긴 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34 00:37:59,167 --> 00:38:03,733 전 세계적으로 남은 유산은 경험입니다 335 00:38:05,367 --> 00:38:14,133 북한의 대한민국 침공으로 생긴 것이죠 336 00:38:14,133 --> 00:38:24,533 국제연합을 창설하면서 1945년에 합의한 바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한 침공이었습니다 337 00:38:24,533 --> 00:38:29,433 그러니까 유엔의 안보리를 통해 모두는 아니었지만 338 00:38:29,433 --> 00:38:35,833 대부분의 국가,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안이 있었습니다 339 00:38:35,833 --> 00:38:48,967 1950년 7월 27일에 한국 안보를 위한 안보리의 소집에 대다수의 국가가 응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340 00:38:50,000 --> 00:39:00,433 전 세계적으로는 많은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341 00:39:00,433 --> 00:39:07,133 1945년에 종전했으나 상대적으로 빨리 끝난 전쟁이었죠 342 00:39:07,133 --> 00:39:15,633 그리고 1951년, 즉 6년 뒤에 새로운 지역 전쟁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343 00:39:15,633 --> 00:39:20,600 국제관계에서도 그랬고 제가 보기에 특히 영향이 컸던 부분이 있었어요 344 00:39:20,600 --> 00:39:29,600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 역량 또는 확장하겠다는 생각을 저지했습니다 345 00:39:29,600 --> 00:39:38,167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상황을 이용해 전 세계를 차지하겠다는 소련의 팽창전략을 저지할 수 있었던 거죠 346 00:39:40,900 --> 00:39:45,200 미래 세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347 00:39:45,433 --> 00:39:54,267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348 00:39:54,267 --> 00:40:02,667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때 민주주의적으로 적합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349 00:40:02,867 --> 00:40:08,067 공격하겠다는 마음이 아닌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350 00:40:08,067 --> 00:40:11,700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351 00:40:11,700 --> 00:40:16,367 잘 모르는 적으로부터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침략에 대비하는 것 말입니다 352 00:40:16,633 --> 00:40:25,000 장군님, 콜롬비아 6·25전쟁참전용사협회의 협회장으로서 장군님의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353 00:40:25,000 --> 00:40:31,533 6·25전쟁은 이미 잊혀진 전쟁이라는 판단에 반대하는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354 00:40:32,300 --> 00:40:40,800 수년 전부터 6·25전쟁 참전용사인 우리가 받은 느낌이 있습니다 355 00:40:41,233 --> 00:40:46,933 전쟁에 함께했던 6·25전쟁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들도 우리를 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356 00:40:46,933 --> 00:40:52,400 그래서 1년 전까지 하던 게 있습니다 357 00:40:54,900 --> 00:41:04,833 3달 간격으로 콜롬비아군이 수행한 최고의 작전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해 온 것입니다 358 00:41:04,833 --> 00:41:15,400 노매드작전, 클라이머작전, 발불라작전 같은 걸 기념했죠 해군에서는 시가렛작전도 있었고요 359 00:41:15,700 --> 00:41:25,467 또한, 다른 시도도 했습니다 360 00:41:26,567 --> 00:41:31,833 고등군사학교의 간부와 지도부에 연락을 했어요 361 00:41:31,833 --> 00:41:38,133 사관학교에도 연락을 했고 수년간 6·25전쟁에 대한 대화를 진행해 왔습니다 362 00:41:38,133 --> 00:41:46,233 대화에서는 특히 전쟁 그 자체에 대해서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교훈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363 00:41:46,233 --> 00:41:53,133 콜롬비아인들에게 이 전쟁이 준 경험과 배움에 대해서도 다루었고요 364 00:41:53,133 --> 00:41:59,267 이 모든 것들이 콜롬비아군 현대화의 문을 열어준 겁니다

구술자정보

목록
구술자 / 생년월일
Raul Martinez Espinosa / 19280226
국가 / 소속 및 직위
콜롬비아 / 육군 소위
주요활동
화천 전투, 김화 전투 등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구술장소
구술요약
라울 마르티네스 에스피노사는 고등학교 때 군복무를 한 후 사관학교에 입학한 직업군인으로 한국전쟁 참전에 자원한 콜롬비아 군인이다. 한국전쟁 중 생각보다 인간다운 군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연락도 취했고 다양한 전투 경험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역량을 키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관계 경색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으며 한국 국민들이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을 잊어가는 것 같아 콜롬비아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의 회장으로서 행사를 개최하며 한국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