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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Mario Nel Bernal Avella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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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0:04,933 --> 00:00:08,167 저는 마리오 넬 베르날 아베야 (Mario Nel Bernal Abella)입니다 2 00:00:08,167 --> 00:00:16,000 1930년 2월 19일 보야카주 소가모소(Sogamoso)에서 태어났어요 3 00:00:16,633 --> 00:00:23,233 부모님은 에르네스토 베르날과 블랑카 베야이고, 두 분 다 소가모소 태생이십니다 4 00:00:24,533 --> 00:00:28,433 누이가 셋인데, 한 명은 죽었고 다른 분들은 살아있어요 5 00:00:28,433 --> 00:00:31,267 이젠 나이가 들어 할머니들이 되었죠 6 00:00:31,800 --> 00:00:38,267 고등학교 저학년까지 수가무시(Sugamuxi) 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7 00:00:40,933 --> 00:00:51,967 그러다가 군인이 되거나 의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보고타에 갔어요 8 00:00:52,500 --> 00:00:59,000 그리고 카데테스 사관학교에 합격해 그곳에 입학했습니다 9 00:00:59,000 --> 00:01:00,800 후회는 없어요 10 00:01:01,633 --> 00:01:05,733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선택할 겁니다 11 00:01:07,800 --> 00:01:16,233 대령님, 감사합니다 사관학교의 군사훈련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세요 12 00:01:16,233 --> 00:01:21,833 1947년 2월에 입학하고 13 00:01:21,833 --> 00:01:32,333 1952년 5월 4일에 졸업했습니다 14 00:01:32,533 --> 00:01:35,333 정정할게요, 1951년입니다 15 00:01:37,067 --> 00:01:40,900 앞선 5년 동안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어요 16 00:01:40,900 --> 00:01:48,867 그 후 2년은 군사, 기술, 전술 공부 분야를 보완했습니다 17 00:01:49,167 --> 00:01:57,867 군비, 지리, 지형, 군 역사, 언어, 일반 지식 등이었어요 18 00:01:59,900 --> 00:02:05,633 그 5년 동안 국가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 00:02:05,633 --> 00:02:10,133 1948년 4월 9일이었죠 20 00:02:10,133 --> 00:02:13,967 국가의 역사를 반으로 나눈 사건이었어요 21 00:02:14,500 --> 00:02:24,933 독립 후 200년간 이어진 역사에 존재했던 고유한 고통이 다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22 00:02:24,933 --> 00:02:32,333 독립전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우리나라 영토를 떠난 후 말입니다 23 00:02:34,167 --> 00:02:42,633 고통이 계속되었고 나라 전체에 정치적인 불안이 이어졌습니다 24 00:02:43,767 --> 00:02:49,033 일부 경찰은 게릴라 반군이 되었습니다 25 00:02:50,533 --> 00:02:57,167 당시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어요 26 00:02:58,700 --> 00:03:04,133 그 무렵, 6·25전쟁에 참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27 00:03:04,133 --> 00:03:06,700 저는 이미 5년간 교육을 받은 상태였지요 28 00:03:06,700 --> 00:03:10,667 어떻게 전쟁을 하는지, 이론적으로 전쟁이란 무엇인지를 말이죠 29 00:03:10,667 --> 00:03:16,100 한반도에서 전쟁을 직접 경험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0 00:03:16,100 --> 00:03:24,800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있는 것보다 말입니다 31 00:03:26,633 --> 00:03:31,167 6·25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하신 것인가요? 아니면 파병된 것인가요? 32 00:03:31,167 --> 00:03:33,867 전적으로 자발적인 참전이었습니다 33 00:03:34,500 --> 00:03:44,867 졸업 후, 3개월이 지난 8월까지 저는 마니살레스에 있는 아야쿠초(Ayacucho) 대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34 00:03:44,867 --> 00:03:54,133 그곳에서 신청서를 제출했고 수락되어 그 즉시 보고타로 향했습니다 35 00:03:54,733 --> 00:04:01,267 제2대대의 예비 중대에 합류했죠 36 00:04:02,167 --> 00:04:12,233 그곳에는 장교 7명, 부사관 20명 및 사병 120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37 00:04:13,100 --> 00:04:27,900 우리는 기예르모 핀손 카이세도 소령이 지휘하는 보병학교에서 두 달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38 00:04:27,900 --> 00:04:38,300 또한 그곳에는 참전용사인 미군 고든 소령이 고문관으로 있었어요 39 00:04:39,100 --> 00:04:51,867 이들을 통해 한국과 관련된 적응훈련과 안내를 받았습니다 40 00:04:52,700 --> 00:04:59,333 이렇게 대대로 합류할 준비가 이루어졌습니다 41 00:05:00,533 --> 00:05:03,600 한국에는 얼마 동안 계셨나요? 42 00:05:04,067 --> 00:05:06,633 11개월이요 43 00:05:08,700 --> 00:05:19,900 그러니까 1951년 10월 한국에 입국했고 1952년 11월에 귀국했습니다 44 00:05:21,767 --> 00:05:25,067 한국으로 어떻게 이동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45 00:05:25,367 --> 00:05:30,900 먼저 보고타에서 카르타헤나로 비행했어요 46 00:05:31,167 --> 00:05:48,433 카르타헤나에서 미해군 해상 수송선인 루테넌트 레이몬드 보두인호에 승선했습니다 47 00:05:50,133 --> 00:05:56,300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예비 대대도 있었어요 48 00:05:57,367 --> 00:06:04,200 그 달에 우리는 선상 생활에 적응하며 항해를 이어갔어요 49 00:06:05,067 --> 00:06:12,100 미군의 엄격한 규율을 따랐습니다 50 00:06:13,500 --> 00:06:21,100 완벽한 개인 청결을 강조했었어요 51 00:06:21,900 --> 00:06:29,467 군인들은 아주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교육과 훈련을 받았어요 52 00:06:30,067 --> 00:06:37,233 또한 보고타에서 배우고 연습했던 부대 장교들의 이론적인 훈련도 이어졌습니다 53 00:06:37,233 --> 00:06:41,400 푸에르토리코 군인들과의 교류는 정감 있고 즐거웠습니다 54 00:06:43,067 --> 00:06:49,200 파나마해협에서는 야간에 몇 시간 정도 하선할 기회가 있었어요 55 00:06:50,733 --> 00:06:55,067 12주 후 하와이제도에 도착했습니다 56 00:06:55,300 --> 00:07:01,567 그곳에서 버스로 와이키키 해변을 돌아보고 57 00:07:01,567 --> 00:07:09,767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에게 기념품도 보낼 수 있는 짧은 여행을 하도록 허가해 주었어요 58 00:07:11,767 --> 00:07:25,000 12월 아니, 11월 16일에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어요 59 00:07:29,200 --> 00:07:40,033 그곳에서 기차로 일본 남부의 사세보항으로 이동했습니다 60 00:07:40,467 --> 00:07:48,867 이후 곧바로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 한국의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61 00:07:50,433 --> 00:07:56,833 대령님, 6·25전쟁에 참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요? 62 00:07:57,200 --> 00:08:02,500 어머니는 그 사실에 놀라고 슬퍼하셨어요 63 00:08:02,800 --> 00:08:11,467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의 전쟁에 참전한다는 것이냐! 하고요 64 00:08:12,300 --> 00:08:15,467 아버지는 그냥 받아들이셨어요 65 00:08:16,133 --> 00:08:23,667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떠나 있던 1년 내내 울고 또 우셨어요 66 00:08:24,133 --> 00:08:30,033 제 여동생들은 저에게 뭔가 말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67 00:08:30,033 --> 00:08:36,300 의심할 여지없이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68 00:08:37,267 --> 00:08:39,833 제 후견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69 00:08:39,833 --> 00:08:46,033 "당장 네 일자리를 알아봐 줄테니, 그만 두거라" 70 00:08:46,733 --> 00:08:53,633 하지만 저는 그때 사관학교에서 5년간의 노력과 성공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71 00:08:54,200 --> 00:09:02,667 스무 살의 청년이었던 저는 스스로를 영웅이라 여겼죠 72 00:09:02,667 --> 00:09:12,767 그래서 결국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직접 전쟁을 경험해 보기로 결정했어요 73 00:09:13,633 --> 00:09:20,733 한국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74 00:09:20,733 --> 00:09:24,667 저는 그 순간을 끔찍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75 00:09:25,200 --> 00:09:32,300 배에서 내리자 마자 한국 정치 당국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76 00:09:32,300 --> 00:09:42,333 그리고 미군 당국 및 부대대장인 노보아 소령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77 00:09:43,067 --> 00:09:50,867 화환을 걸어주었고 짧은 환영연설이 이어졌죠 78 00:09:51,300 --> 00:10:04,033 트럭을 타고 부산 근처에 있는 16개국 연합군 훈련장으로 향했습니다 79 00:10:05,167 --> 00:10:18,233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슬픈 일 중 하나는 C 레이션을 먹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80 00:10:19,167 --> 00:10:27,900 산코초, 스프, 즉석밥, 바나나 등 콜롬비아의 전형적인 음식과는 너무 다른 81 00:10:27,900 --> 00:10:33,767 군용식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였어요 82 00:10:34,167 --> 00:10:39,833 한 콜롬비아 군인이 원칙을 어기고 입에 안 맞는다며 통조림을 밖으로 던졌습니다 83 00:10:39,833 --> 00:10:46,433 84세인 이 나이에도 그때의 그 광경을 슬픈 영화처럼 기억하고 있답니다 84 00:10:46,600 --> 00:10:52,933 굶주린 개와 영양실조에 걸린 꾀죄죄한 아이가 통조림을 얻으려 뛰어갔고 85 00:10:52,933 --> 00:10:58,633 수염이 길게 자란 노인이 힘겹게 몸을 가누며 다가갔죠 86 00:10:58,633 --> 00:11:03,067 누가 먼저 통조림을 낚아채는지 살펴보고 있었어요 87 00:11:03,067 --> 00:11:08,400 결국은 개가 통조림을 가로챘지요 88 00:11:08,400 --> 00:11:10,133 어찌나 슬픈 광경이었던지! 89 00:11:10,667 --> 00:11:18,667 처음 본 서울은 쑥대밭이 되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90 00:11:18,667 --> 00:11:28,267 마치 강도 10의 지진이 발생해 건물도 집도 다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광경이었어요 91 00:11:28,267 --> 00:11:37,400 물론 우리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차례나 서울을 수복하고 점령한 상태였지요 92 00:11:37,400 --> 00:11:51,067 공습, 포격, 로켓, 기관총 발사 등으로 인해 도시와 숲들이 파괴되어 가고 있었어요 93 00:11:51,067 --> 00:11:59,067 그 모습은 마치 요즘 젊은이들의 최신 머리모양 같았어요 94 00:12:02,667 --> 00:12:04,400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대령님 95 00:12:06,267 --> 00:12:15,133 대령님, 6·25전쟁 당시 어떤 지역에 배치되었는지 기억나시나요? 96 00:12:15,133 --> 00:12:16,733 당연히 기억합니다 97 00:12:17,667 --> 00:12:27,800 부산 근처의 훈련소에서 2개월간 훈련했어요 98 00:12:27,800 --> 00:12:36,533 그 후 1952년 1월 16일에 이동했습니다 99 00:12:38,033 --> 00:12:47,400 2개의 소총 중대와 콜롬비아 대대가 함께 배치되어 있던 첫 번째 전선에 도착했습니다 100 00:12:47,400 --> 00:12:54,333 사상자가 발생했고 우리는 이 사상자들을 대체하는 예비 중대였습니다 101 00:12:55,833 --> 00:13:04,400 이 전선은 한반도 서부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따라 형성되어 있었어요 102 00:13:06,167 --> 00:13:14,833 38선 근처의 중간 도시인 김화를 통과했습니다 103 00:13:17,200 --> 00:13:26,000 그곳에는 밤에 도착했으며, 미군 대대와 교대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104 00:13:26,633 --> 00:13:33,767 미군들과 교대한 지 10분쯤 되었을 때,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105 00:13:34,567 --> 00:13:43,200 특정 경로의 지뢰제거작전을 수행하는 2개의 공병분대를 보호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어요 106 00:13:43,700 --> 00:13:50,833 베르날 소위에게 소대 중 2개 분대를 이끌고 정찰을 나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107 00:13:52,867 --> 00:14:03,100 야간 중에 아무도 이 지역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해야했어요 108 00:14:05,067 --> 00:14:14,733 실제로 이튿날 지뢰가 제거된 경로로 전차들이 들어와 적군에게 포격을 가했지요 109 00:14:17,067 --> 00:14:31,233 다음 날, 대대는 미군 제7사단 제21연대에서 분리되었습니다 110 00:14:31,767 --> 00:14:38,733 동일한 사단의 제31연대에 통합되었습니다 111 00:14:41,400 --> 00:14:51,667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남쪽으로 16~18km 떨어진 김화 부근으로 이동했어요 112 00:14:55,100 --> 00:15:01,367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습니다 113 00:15:04,567 --> 00:15:13,167 우리는 5월 10일까지 앞서 언급한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어요 114 00:15:13,167 --> 00:15:21,867 나중에 언급하게 될 400고지 바로 앞이죠 115 00:15:22,933 --> 00:15:24,800 답변 감사합니다, 대령님 116 00:15:24,800 --> 00:15:34,300 전쟁기간 동안 생활 여건, 기후, 의복, 잠자리 음식 등은 어땠는지 얘기해 주세요 117 00:15:35,600 --> 00:15:37,833 먼저 기후에 대해 말하지요 118 00:15:37,833 --> 00:15:44,167 우리는 계절 변화에 익숙해진 상태였어요 겨울일 때 한국에 도착했죠 119 00:15:47,600 --> 00:15:52,867 이후 아름다운 세 개의 계절이 찾아왔어요 120 00:15:53,400 --> 00:16:01,433 지금 보면 구식이겠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좋은 군복을 착용했어요 121 00:16:02,567 --> 00:16:10,633 콜롬비아 군인들은 음식에도 익숙해졌고 제 개인적으로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122 00:16:10,633 --> 00:16:14,133 C 레이션에 만족했으니까요 123 00:16:16,033 --> 00:16:21,533 여가생활 조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124 00:16:22,000 --> 00:16:31,767 오늘날의 인터넷, 휴대폰, 텔레비전 등이 없었던 시절이었는데요 125 00:16:32,633 --> 00:16:43,167 그래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연락은 잘 됐습니다 126 00:16:43,567 --> 00:16:52,267 라틴아메리카 포스트 익스체인지 (la Latin American Post Exchange)를 통해 127 00:16:52,267 --> 00:16:57,000 매달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128 00:16:58,367 --> 00:17:05,233 콜롬비아에 대한 소식도 이 매체를 통해 듣곤 했습니다 129 00:17:06,233 --> 00:17:11,467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들이 어떤 소식을 전해왔고 130 00:17:11,467 --> 00:17:18,000 또 대령님은 편지로 전쟁에 대한 어떤 내용을 전했는지 얘기해 주세요 131 00:17:18,000 --> 00:17:24,967 음, 가족들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어요 132 00:17:26,633 --> 00:17:30,500 저는 이곳에서 경험한 것을 얘기했지요 133 00:17:31,033 --> 00:17:37,100 제 경우에는 일본 도쿄에서 3주간 머무를 기회가 있었어요 134 00:17:37,100 --> 00:17:42,367 군인들이 전장에서 벗어나 일주일 동안 135 00:17:42,367 --> 00:17:48,033 R&R(Rest and Recreation)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곤 했습니다 136 00:17:48,900 --> 00:17:58,300 월급으로 받은 달러를 저축해 두었다가 일본을 여행하며 쓰곤 했어요 137 00:17:58,300 --> 00:18:07,067 일본은 그 유명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항복한 상태였어요 138 00:18:07,367 --> 00:18:16,767 그 후 미군이 점령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139 00:18:18,967 --> 00:18:24,200 콜롬비아 대대에서 복무하는 동안 대령님이나 콜롬비아 동료 군인들이 140 00:18:24,200 --> 00:18:28,367 외국군이나 한국군과 어떤 관계였는지 기억하세요? 141 00:18:28,367 --> 00:18:32,000 물론입니다 매우 화기애애한 사이였어요 142 00:18:32,000 --> 00:18:42,367 결국 우리는 모두 한국이 공산주의의 침략을 받지 않도록 돕기 위해 파견된 16개국 연합군이었으니까요 143 00:18:44,867 --> 00:18:49,700 우리 모두 모험 정신이 충만했어요 144 00:18:51,700 --> 00:18:57,700 다른 나라의 군인들은 이미 겪어봤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전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145 00:18:57,700 --> 00:19:01,967 재미있었어요 146 00:19:01,967 --> 00:19:08,000 부산 훈련장에서 문신을 새긴 사람들을 만났어요 147 00:19:08,367 --> 00:19:13,967 코걸이와 귀걸이를 한 건장한 체구의 에티오피아 사람들이었어요 148 00:19:14,533 --> 00:19:20,967 "죽으려면 어디를 맞아도 죽는데 이까짓 게 무슨 소용이야" 하며 149 00:19:20,967 --> 00:19:25,733 정찰할 때 방탄조끼를 입지 않던 터키인들도 있었고요 150 00:19:25,733 --> 00:19:39,033 이론적으로 방탄조끼는 대구경의 화기에서 발생한 충격과 파편으로부터 흉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151 00:19:43,533 --> 00:19:52,267 캐나다, 호주, 프랑스,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군인들도 만났습니다 152 00:19:53,267 --> 00:20:01,667 막사에서 반달 문양을 새긴 이슬람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행하는 모습을 봤어요 153 00:20:02,167 --> 00:20:08,733 그리고 이슬람 종교의식을 마친 사제가 나온 후 막사로 성배와 십자가를 든 카톨릭 사제가 들어가는 모습도 봤어요 154 00:20:08,733 --> 00:20:12,767 이 모든 것이 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어요 155 00:20:13,767 --> 00:20:17,700 이 경험들은 청년이었던 제 견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어요 156 00:20:17,700 --> 00:20:28,800 더 너그러워지고, 지구에는 서로 다른 상황과 문화를 지닌 인간들이 존재하지만 157 00:20:28,800 --> 00:20:33,433 본질적으로는 다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158 00:20:35,200 --> 00:20:46,967 대령님, 6·25전쟁을 경험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159 00:20:47,667 --> 00:20:58,167 제 생각에,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일본과 한국의 일부 지역을 여행하는 것들이었어요 160 00:20:58,833 --> 00:21:05,633 일본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알려진 나라입니다 161 00:21:06,067 --> 00:21:16,133 동양 최고의 강국이었고 실제로 그런 국가였어요 162 00:21:16,133 --> 00:21:28,633 제가 보기에, 그 당시 일본인들은 중국인, 한국인, 라오스인 등 다른 동양인보다 163 00:21:28,633 --> 00:21:34,000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164 00:21:34,567 --> 00:21:40,367 한번은 오카다 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165 00:21:40,933 --> 00:21:51,433 70세가 넘는 연세의 현인으로 우리가 휴가 중일 때 통역사를 소개해주신 분입니다 166 00:21:53,500 --> 00:22:01,500 완벽한 스페인어를 구사하셨으며 미국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계셨어요 167 00:22:01,500 --> 00:22:10,567 지구의 거대한 산림, 거대한 녹색 허파라 할 수 있는 아마존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168 00:22:10,567 --> 00:22:16,067 그리고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파괴의 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169 00:22:16,067 --> 00:22:20,500 이후 인간에 의한 파괴 및 천연자원 남용으로 인해 170 00:22:20,500 --> 00:22:32,267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두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71 00:22:32,967 --> 00:22:37,000 그래서 오카다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172 00:22:37,000 --> 00:22:45,267 "교수님, 일본이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지배당하게 되었을 때 교수님은 왜 할복하지 않으셨나요?" 173 00:22:46,033 --> 00:22:48,033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174 00:22:48,033 --> 00:22:53,633 인간을 뛰어넘은 신이라고 생각했던 천황이 국민들 앞에 나와 이렇게 말했어요 175 00:22:54,233 --> 00:23:02,133 "저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입니다 여러분은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176 00:23:02,600 --> 00:23:11,467 향후 우리 사회를 이끌고 안내할 의무가 있는 여러분이 자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77 00:23:11,467 --> 00:23:20,700 천황의 말처럼 우리가 사라진다면 과연 누가 일본의 젊은이를 이끌고 교육하겠어요?" 178 00:23:21,733 --> 00:23:26,367 이것은 정말 멋진, 보람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179 00:23:27,300 --> 00:23:32,633 언젠가는 식기를 살 기회가 있었어요 180 00:23:33,433 --> 00:23:43,267 일본에서 손으로 채색한 식기 세트 다섯 상자를 어머님께 사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181 00:23:43,267 --> 00:23:46,200 모든 식기들이 콜롬비아에 도착했는데 182 00:23:46,200 --> 00:23:51,733 이곳 바란키야항에서 소가모소로 운반하는 사이에 한 상자가 분실되었어요 183 00:23:51,733 --> 00:23:56,233 하지만 일본에서 바란키야항까지는 전체 수량이 제대로 도착했었어요 184 00:23:59,200 --> 00:24:04,800 한 번은 교토와 다른 지역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85 00:24:05,767 --> 00:24:09,700 사세보항으로 향하던 중이었어요 186 00:24:11,767 --> 00:24:20,567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6년이 흐른 나가사키를 지나가다 사과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187 00:24:21,200 --> 00:24:25,933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팔던 여인을 보았거든요 188 00:24:25,933 --> 00:24:32,467 두이타마(Duitama)에서 철도를 이용해 소가모소로 갈 때도 이런 상인들을 보곤 하지요 189 00:24:32,467 --> 00:24:42,133 당시 우리는 방사선이 실제로 생명체나 식물을 죽이는지 알고 싶은 궁금함이 들어 사과를 먹었습니다 190 00:24:42,133 --> 00:24:45,033 방사선이 생명체에 해를 입히지는 않는 것 같아요 191 00:24:45,033 --> 00:24:51,833 제가 이렇게 살아있고, 제 동료들도 그런 것으로 보아 방사선에 의한 피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92 00:24:54,233 --> 00:24:59,167 대령님, 전장에서의 경험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세요 193 00:24:59,767 --> 00:25:07,567 한국에서 복무하는 기간 동안 가장 힘들고 위험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194 00:25:07,567 --> 00:25:20,400 제가 도착했을 때 6·25전쟁은 한반도의 38선을 따라 전개되는 고착전 양상을 띠고 있었어요 195 00:25:21,133 --> 00:25:32,000 적군과의 거리는 멀게는 1,000~1,200m 가깝게는 300~400m였습니다 196 00:25:32,333 --> 00:25:37,267 밤낮으로 총격과 대치전이 계속되었습니다 197 00:25:37,267 --> 00:25:47,700 박격포, 대포, 조명탄, 예광탄 탄창이 있는 기관총 등의 포탄과 탄알이 쏟아지고 있었어요 198 00:25:47,700 --> 00:25:55,433 적군을 물리치고 아군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적군의 정찰을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교전을 펼쳤습니다 199 00:25:56,200 --> 00:26:13,800 이러한 상황에서도 방어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정찰, 전투정찰, 수색정찰, 확인정찰을 계속 했습니다 200 00:26:13,800 --> 00:26:24,033 그 좁고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지속적으로 교전한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들릴 정도였습니다 201 00:26:24,500 --> 00:26:36,567 소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거기에 모래주머니를 얹어 만든 포대(砲臺) 안에서 군인들이 어떻게 지낼까요? 202 00:26:36,567 --> 00:26:40,467 행여 비나 눈이 오거나 폭염이 닥치면 어떻게 하죠? 203 00:26:40,467 --> 00:26:49,833 종이상자에 음식을 담아 먹고 고형 알코올로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면 말이에요 204 00:26:49,833 --> 00:26:55,833 화장실에 갈 때조차 언제 적군에게 노출될지 몰라 205 00:26:55,833 --> 00:27:02,600 무반동총이나 기관총을 들고 매우 조심해서 이동해야 하면, 어떨까요? 206 00:27:02,600 --> 00:27:10,667 변기에 소변을 보러 나갔는데 방금 나온 소변이 완전히 얼어붙는다면 어떻겠습니까? 207 00:27:10,667 --> 00:27:20,000 이 모든 것이 열대지방에서 파견된 젊은 장교가 겪어야 했던 낯선 상황입니다 208 00:27:21,933 --> 00:27:27,367 대령님께서 참여한 가장 기념비적인 전투는 어떤 것이었나요? 209 00:27:28,167 --> 00:27:36,400 6·25전쟁 참전 기간 중 최고의 순간은 1952년 6월 21일로 210 00:27:36,400 --> 00:27:40,633 이 날은 우연히도 저의 어머님 생신입니다 211 00:27:41,033 --> 00:27:47,367 전날 밤 이미 작전명령이 떨어진 상태였고 212 00:27:47,367 --> 00:27:56,733 저는 제31연대 제1대대가 위치한 지역 근처의 A 중대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213 00:27:57,600 --> 00:28:03,633 다음 날 새벽 4시 10분 출발선을 넘었습니다 214 00:28:04,100 --> 00:28:13,467 제1소대와 제3소대가 100고지와 300고지를 차지한 상태였습니다 215 00:28:13,933 --> 00:28:22,633 목표 지점을 향해 계속 전진했고 마지막 300고지에서는 50m마다 통제선을 설정했습니다 216 00:28:22,933 --> 00:28:31,033 아군이 적군에 노출될 경우 사전에 조율된 지원사격을 가해 217 00:28:31,033 --> 00:28:36,900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218 00:28:36,900 --> 00:28:43,933 우리는 20분 만에 적군으로부터 50m 떨어진 5번 통제선에 도착했어요 219 00:28:43,933 --> 00:28:52,600 그 지점에서 적군이 우리를 발견했고 자동 화기와 수류탄을 발사했어요 220 00:28:53,733 --> 00:29:03,700 우리는 총검을 들고 육탄전에 돌입했습니다 221 00:29:03,700 --> 00:29:10,567 적군의 참호에 도달하기 위해 이렇게 50m를 전진하는 사이 222 00:29:10,567 --> 00:29:21,533 F84 전투기 2대가 기관총과 네이팜탄을 발사하며 지원했어요 223 00:29:22,433 --> 00:29:29,233 이 과정에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224 00:29:29,633 --> 00:29:37,333 여기에는 제가 지휘하던 소대의 분대장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225 00:29:38,333 --> 00:29:42,233 육탄전을 하며 적군의 참호에 도달했을 때 226 00:29:42,233 --> 00:29:47,533 엄청난 거구의 한 중국군이 아군의 왼쪽 대퇴골을 잘랐고 227 00:29:47,533 --> 00:29:52,567 사망자가 한 명 발생했습니다 228 00:29:52,567 --> 00:29:59,367 이후 15명의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229 00:30:00,600 --> 00:30:10,067 수류탄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지만 참호에 진입하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230 00:30:10,067 --> 00:30:15,567 막상 참호로 들어가자 그 깊이가 3m 이상이었고 폭도 매우 좁았습니다 231 00:30:16,267 --> 00:30:21,000 포로 3명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232 00:30:21,000 --> 00:30:28,267 고메스라는 군인을 죽인 적군도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233 00:30:28,267 --> 00:30:33,533 이후 포로로 이송 가능한 적군 생존자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234 00:30:33,533 --> 00:30:44,567 확인한 결과, 델가디요 하사와 함께 처음 잡았던 세 명이었습니다 235 00:30:44,967 --> 00:30:57,567 작전을 위해 받았던 들것 14개 중 6개를 사용했고 포로들은 S2대대의 파치니 대위에게 인계했어요 236 00:30:58,600 --> 00:31:09,700 아군과 적군의 부상자를 재확인한 후 더 많은 들것을 요청해야 했어요 237 00:31:09,700 --> 00:31:13,333 그리고 적군이 사용하던 무기를 수거했어요 238 00:31:13,833 --> 00:31:28,633 문서나 서류는 많이 찾지 못했는데 흥미롭게도 머리를 박박 깎은 거구의 중국인을 발견했어요 239 00:31:29,067 --> 00:31:34,400 또한 온통 피로 물든 지폐들도 몇 장 있는데, 이따가 보여 줄게요 240 00:31:38,800 --> 00:31:47,400 아군과 적군의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추가로 요청한 들것이 도착할 때까지 2시간 가량 기다려야 했습니다 241 00:31:47,667 --> 00:31:59,167 마지막 50m를 공격하는 과정은 상대편을 죽이려 달려드는 인간들의 분노와 다툼이 뒤섞인 242 00:31:59,167 --> 00:32:06,433 귀가 먹먹해지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습니다 243 00:32:06,433 --> 00:32:12,000 "살기 아니면 죽기" 둘 중 하나였고, 다른 대안은 없었죠 244 00:32:12,000 --> 00:32:15,933 사방에 피와 땀이 흥건했어요 245 00:32:15,933 --> 00:32:23,967 화염방사기를 쏘던 두 사람은 내장이 다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로 이렇게 말했어요 246 00:32:23,967 --> 00:32:28,300 "중위님,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247 00:32:28,300 --> 00:32:35,033 제가 말했습니다 "조금만 참아, 도와주러 갈게, 우리가 간다고" 248 00:32:35,967 --> 00:32:48,733 우리가 이 두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제31연대의 지원 사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49 00:32:48,733 --> 00:32:54,367 400고지에 있는 적군들이 다른 두 고지에 있는 적군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250 00:32:54,367 --> 00:32:57,700 철저하게 저지하기 위한 지원 사격이었어요 251 00:32:58,733 --> 00:33:02,833 고지들의 높이는 최대 1,100m에 달했습니다 252 00:33:03,833 --> 00:33:06,200 이것이 바로 절정의 순간이었습니다 253 00:33:06,200 --> 00:33:12,733 전투의 굉음 속에 우리는 사망자와 부상자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254 00:33:12,733 --> 00:33:19,533 저는 수년 전 고인이 되어 그의 가족들과 함께 무덤에서 애도했던 255 00:33:19,533 --> 00:33:24,567 통신병 레오나르도 에르난데스와 마지막까지 함께했습니다 256 00:33:27,200 --> 00:33:32,300 갈린도 대위에게 임무를 완료했다고 보고했습니다 257 00:33:34,933 --> 00:33:38,900 그러자 미군 정보부의 한 소령이 축하의 말을 전하더군요 258 00:33:38,900 --> 00:33:41,233 그 분이 나온 사진도 보여줄 수 있어요 259 00:33:41,667 --> 00:33:43,000 그는 제게 말했어요 260 00:33:43,000 --> 00:33:46,733 "축하해요 선생님은 용감한 군인입니다" 261 00:33:46,733 --> 00:33:49,267 이후 이렇게 묻더군요 "전투에서 어떤 무기를 사용했나요?" 262 00:33:49,267 --> 00:33:52,533 저는 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263 00:33:52,533 --> 00:33:57,100 그저 소대를 이끌고 임무를 완수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어요 264 00:33:57,400 --> 00:33:59,533 그게 사실이었죠 265 00:33:59,533 --> 00:34:03,167 저는 단 한 발도 쏘지 않았습니다 소대원들을 지휘했을 뿐입니다 266 00:34:03,167 --> 00:34:10,933 그러자 그곳에 있던 모든 지휘관이 경의를 표했어요 267 00:34:10,933 --> 00:34:20,933 사단장부터 연대장, 제1대대장 및 그 휘하의 소령들까지 저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268 00:34:20,933 --> 00:34:27,000 콜롬비아군 대대장이었던 루이스 아틸리오 레이바 소령도 그 자리에 계셨죠 269 00:34:27,267 --> 00:34:33,933 이것이 바로 제 6·25전쟁 참전의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270 00:34:34,900 --> 00:34:37,767 대령님, 전투 중 부상을 입으셨는지요? 271 00:34:37,767 --> 00:34:44,500 아뇨, 총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머리와 등에 파편을 맞았습니다 272 00:34:44,500 --> 00:34:48,900 우리 소대에 속했던 다른 일곱 명의 소대원들도 마찬가지였죠 273 00:34:48,900 --> 00:34:57,433 우리 소대에서는 사망자 1 명, 부상자 15명이 발생했고 이 중 8명에게 파편이 박혔지만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274 00:34:57,667 --> 00:35:06,900 하지만 400고지 전투가 끝난 후 저는 야전병원에 2주 동안 입원했어요 275 00:35:06,900 --> 00:35:11,500 널빤지처럼 아주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어요 276 00:35:11,633 --> 00:35:21,367 요추와 흉추 3개가 파열되어 한 달 동안 몸을 굽히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277 00:35:22,367 --> 00:35:28,167 6·25전쟁 당시의 전적을 치하하는 훈장을 받으셨는지요? 278 00:35:28,167 --> 00:35:38,533 네, 받았습니다 우리 소대, 중대 제3소대는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어요 279 00:35:38,533 --> 00:35:49,200 참전해 무공을 세운 연합군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별 4개의 은성훈장이었습니다 280 00:35:49,200 --> 00:36:00,800 두 번째 훈장으로 용맹(Valor)을 뜻하는 "V" 마크가 새겨진 동성훈장을 받았습니다 281 00:36:01,600 --> 00:36:13,100 이것은 콜롬비아 대대가 6·25전쟁에 참전해 2년 4개월간 벌인 전투의 무공을 인정받아 수여된 것이고 282 00:36:13,100 --> 00:36:19,200 전체 훈장의 22%를 차지합니다 283 00:36:19,400 --> 00:36:30,867 이 훈장들을 받은 것은 우리에게 큰 영광이자 자부심입니다 284 00:36:34,067 --> 00:36:37,000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말을 찾진 못하겠지만 285 00:36:37,000 --> 00:36:45,933 당시 육군 장교이자 콜롬비아 사람으로서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286 00:36:48,533 --> 00:36:56,100 복무가 끝났을 때,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셨나요? 287 00:36:56,100 --> 00:36:59,333 한국에 대해 품은 희망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288 00:36:59,333 --> 00:37:09,067 1952년 11월 귀국한 후 15일간의 휴가를 받았습니다 289 00:37:09,467 --> 00:37:17,933 휴가를 마치고 육군 사령부로 복귀하자 미군 제8군 참모장이 표창장을 수여했어요 290 00:37:17,933 --> 00:37:34,333 6·25전쟁에 참전했던 12명의 장교를 훌륭한 장교이자 지휘관으로 인정하는 표창장을 주더군요 291 00:37:34,333 --> 00:37:38,800 이따가 이 표창장의 사본을 드릴 수도 있어요 292 00:37:39,233 --> 00:37:46,700 표창장 전달 후, 베르날 중위는 카르타헤나로 가 293 00:37:46,700 --> 00:37:53,333 ARC 볼리바르 해군기지의 해병대대에 합류하라고 했습니다 294 00:37:56,167 --> 00:38:03,533 그곳에서 1년 후쯤 아내인 엘레나를 만났습니다 295 00:38:03,533 --> 00:38:07,800 지금은 결혼한 지 60년이 되었고 296 00:38:09,667 --> 00:38:17,133 아들 5명, 손자 11명, 증손자 4명이 있습니다 297 00:38:17,133 --> 00:38:21,200 하나님의 은총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지요 298 00:38:22,867 --> 00:38:27,400 전쟁이 끝난 후 다시 한국을 찾을 기회가 있었나요? 299 00:38:27,400 --> 00:38:40,000 네, 6·25전쟁 50주년이던 2000년 기념행사를 위해 16개 참전국에서 각각 참전용사 10명을 초청했어요 300 00:38:40,933 --> 00:38:50,100 지금은 고인이 된 제 친구 푸야나 장군이 6·25전쟁 참전용사협회 회의에서 301 00:38:50,100 --> 00:39:00,633 이 행사에 참여할 10명을 추첨으로 뽑을 필요 없이 저를 포함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302 00:39:01,167 --> 00:39:08,367 그래서 저는 아내와 함께 한국에 갔고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303 00:39:10,200 --> 00:39:20,767 그 놀라운 상황과 관련해, 오늘날 한국이 경제, 산업 및 민주적 과정의 측면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304 00:39:20,767 --> 00:39:21,867 물론이죠 305 00:39:22,300 --> 00:39:33,700 당시 파견되었을 때도 통역관을 통해 한국은 1950년에도 문맹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306 00:39:33,833 --> 00:39:42,867 한국은 국가와 가정 모두 교육에 힘쓰는 문화를 지닌 사회였습니다 307 00:39:43,967 --> 00:39:58,800 전쟁이 끝나고 황폐해진 한국은 불과 30년 만에 기술과 자본을 지원받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308 00:39:58,800 --> 00:40:01,100 놀랄 만한 일이지요 309 00:40:02,933 --> 00:40:09,433 올해 2014년은 정전협정 체결 후 61년이 되는 해입니다 310 00:40:09,900 --> 00:40:18,167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마침내 남북한 간 평화조약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311 00:40:18,467 --> 00:40:21,200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312 00:40:21,200 --> 00:40:25,533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으로 되돌아가야 해요 313 00:40:25,900 --> 00:40:28,167 전 세계적 재앙이었죠 314 00:40:28,167 --> 00:40:32,500 우리 모두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315 00:40:33,467 --> 00:40:38,467 하지만 인간이 하는 어떤 일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316 00:40:38,600 --> 00:40:51,533 당시 승전국들은 한국, 라오스, 베트남 등과 같은 작은 나라들을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 317 00:40:51,533 --> 00:40:57,833 영토를 분할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318 00:40:57,833 --> 00:41:06,767 이 국가들의 북쪽은 승전국인 러시아가 장악하도록 양보했습니다 319 00:41:06,767 --> 00:41:19,567 남쪽은 자유시장경제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이 차지했죠 320 00:41:20,333 --> 00:41:29,000 북한이 민주화되도록 사고방식을 바꾸거나 321 00:41:29,000 --> 00:41:41,433 남한이 북한, 특히 그 지배계급의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322 00:41:42,200 --> 00:41:49,567 1953년 판문점에서도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했는데 323 00:41:49,567 --> 00:41:59,000 정전협정이 진행 중인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324 00:41:59,000 --> 00:42:07,133 처음 제가 젊었을 때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325 00:42:07,133 --> 00:42:17,200 한국을 위한 최선의 길은 남쪽보다 자원이 풍부한 북쪽에서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요 326 00:42:17,200 --> 00:42:23,567 만약 남한과 북한이 함께 지금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다면 더 많은 것을 성취했을 것입니다 327 00:42:23,567 --> 00:42:29,633 하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이후 베트남, 라오스 등의 일부 전쟁에서 동일한 역사가 반복되었지요 328 00:42:29,633 --> 00:42:34,433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329 00:42:36,800 --> 00:42:43,900 6·25전쟁 참전용사의 유산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330 00:42:44,567 --> 00:42:53,333 참전용사로서 유산이라면 경험과 개인적인 성과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331 00:42:53,333 --> 00:43:00,833 무엇보다도 인간, 국가, 가족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인 전쟁을, 그 파괴의 참상을 극복했다는 점입니다 332 00:43:00,833 --> 00:43:08,067 전쟁은 적을 파괴하고 무찌르거나 이기려는 의지를 빼앗는 것입니다 333 00:43:08,067 --> 00:43:13,967 경제가 정지되고, 교육이 무너지며 가족이 와해되죠 334 00:43:13,967 --> 00:43:22,033 남자들이 전쟁터로 떠나면 노인 여자와 아이들이 남아 전쟁을 지원합니다 335 00:43:22,767 --> 00:43:34,233 군인으로서 한국에서 배운 것은 기존의 무기, 전술과 기술을 최신의 것으로 진보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입니다 336 00:43:34,233 --> 00:43:39,400 이를 통해 콜롬비아 군대가 발전할 수 있었고 337 00:43:39,400 --> 00:43:47,233 제 개인적으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병대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338 00:43:47,400 --> 00:44:00,333 당시의 새로운 수단과 기술을 활용해 장교와 군대를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339 00:44:00,867 --> 00:44:09,700 또 다른 유산은 국제관계입니다 340 00:44:10,233 --> 00:44:22,333 콜롬비아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어려움과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341 00:44:23,467 --> 00:44:27,333 그래도 정치적 결단을 내려 한국을 도왔습니다 342 00:44:29,700 --> 00:44:37,633 콜롬비아에 대한 한국의 대응도 훌륭하고 특별했습니다 343 00:44:37,633 --> 00:44:46,433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략으로 인해 한국이 자유를 상실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344 00:44:46,433 --> 00:44:59,100 그리고 한국은 2년 전 한국 대통령께서 방문 당시 말씀하신 것처럼 콜롬비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345 00:44:59,100 --> 00:45:06,100 콜롬비아의 청년층, 특히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오늘날은 물론 346 00:45:06,467 --> 00:45:15,833 미래 발전의 기초가 될 교육과 기술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347 00:45:15,833 --> 00:45:24,900 이것이 바로 콜롬비아가 6·25전쟁에 참전한 경험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348 00:45:26,300 --> 00:45:33,433 6·25전쟁이란 주제와 관련해 후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349 00:45:35,200 --> 00:45:44,100 재차 강조하지만, 인간이나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해결책은 350 00:45:44,100 --> 00:45:54,567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과 같은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51 00:45:58,367 --> 00:46:05,500 인간들 사이의 차이는 카인과 아벨이 살던 태고적부터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352 00:46:05,967 --> 00:46:09,833 늘 벌어져온 일이었어요 353 00:46:09,833 --> 00:46:14,700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 수많은 기술 발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354 00:46:14,700 --> 00:46:26,533 하지만 인간, 가정, 사회와 경제에 초래한 재난을 생각한다면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355 00:46:26,833 --> 00:46:37,167 가장 많은 전쟁을 겪은 대륙이자 가장 많은 인종, 경제, 언어 및 문화 공동체가 존재하는 356 00:46:37,167 --> 00:46:42,033 유럽을 생각해 보세요 357 00:46:42,033 --> 00:46:48,000 오늘날 이들은 유럽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358 00:46:48,000 --> 00:46:57,667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더 많이 협력한 결과 오늘날 유럽은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경제공동체가 되었습니다 359 00:46:57,667 --> 00:47:06,433 저개발국의 발전을 지원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어요 360 00:47:06,600 --> 00:47:19,067 다른 대륙들도 이러한 모범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길 바라며 유럽공동체의 성공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361 00:47:21,567 --> 00:47:37,433 미국에서 발간된 ≪잊혀진 전쟁≫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자유를 빼앗지 못하도록 막는 362 00:47:37,433 --> 00:47:44,400 유엔의 엄청난 노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363 00:47:46,700 --> 00:47:58,567 2년 반 동안 이어진 이 전쟁으로 두 나라에서 약 3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364 00:47:59,467 --> 00:48:08,033 1953년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은 정전이에요 365 00:48:08,033 --> 00:48:18,700 2014년인 지금 지구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366 00:48:20,967 --> 00:48:26,567 언젠가는 이 정전협정이 제대로 마무리 되길 바랍니다 367 00:48:27,000 --> 00:48:37,667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은 분단된 상태입니다 368 00:48:38,200 --> 00:48:50,033 물론 이상적인 것은 통일이지만, 물과 기름을 섞어 하나로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369 00:48:51,600 --> 00:48:53,200 대령님, 말씀 감사합니다 370 00:48:53,767 --> 00:48:58,567 이 인터뷰에서 추가적으로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371 00:49:00,267 --> 00:49:08,300 글쎄요, 이번 인터뷰는 세부사항을 다루지 않고 매우 개괄적인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372 00:49:08,600 --> 00:49:22,367 6·25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콜롬비아에서 발간된 잡지를 드릴게요 373 00:49:22,767 --> 00:49:29,500 이 잡지는 모든 군사작전을 간결한 방식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374 00:49:29,767 --> 00:49:39,400 또한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쓴 책 ≪자유와 영광을 위한 한국 참전≫도 있습니다 375 00:49:39,400 --> 00:49:55,300 이 책은 참전용사들의 경험과 미래의 콜롬비아 군인 특히 장교들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어요 376 00:49:55,300 --> 00:50:03,467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6·25전쟁에서 얻은 경험을 어떻게 전달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구술자정보

목록
구술자 / 생년월일
Mario Nel Bernal Avella / 19300219
국가 / 소속 및 직위
콜롬비아 / 육군 장교
주요활동
화천 전투, 김화 전투 등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구술장소
구술요약
마리오 넬 베르날 아베야는 콜롬비아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로서, 1951년 자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김화 400고지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현격한 전적을 남겼고, 그가 지휘한 3소대는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과 동성훈장을 받았다. 본 인터뷰는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 한국에 대한 인상, 한국전쟁 참전이 남긴 유산, 미래 세대에 대한 메시지 등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