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1
00:00:05,267 --> 00:00:10,167
저는 호세 하이메 로드리게스 로드리게스
(Jos? Jaime Rodr?guez Rodr?guez)입니다
2
00:00:11,267 --> 00:00:19,367
1923년 7월 20일
툰하에서 출생했습니다
3
00:00:21,800 --> 00:00:24,933
부모님과 형제자매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4
00:00:27,233 --> 00:00:35,967
저는 로만 로드리게스 카르데나스와
로돌파 로드리게스 플로레스의 아들입니다
5
00:00:37,967 --> 00:00:45,267
같은 부모님 슬하에
형이 두 분 계세요
6
00:00:47,033 --> 00:00:56,700
이러면 질문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7
00:00:56,700 --> 00:00:59,933
- 네, 맞습니다
- 자세한 얘기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8
00:01:00,500 --> 00:01:04,433
학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9
00:01:06,367 --> 00:01:17,800
콜롬비아 교육과정에 따라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전문교육을 마쳤습니다
10
00:01:23,433 --> 00:01:32,833
퇴역 당시와 6·25전쟁에 참전할 당시의
계급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11
00:01:34,433 --> 00:01:48,167
참전 당시에는 콜롬비아
육군 중위였습니다
12
00:01:50,933 --> 00:01:59,767
전쟁이 끝나고 귀국했을 때는
대위로 진급한 상태였습니다
13
00:02:01,333 --> 00:02:09,533
그때부터 정상적으로 군 경력을 쌓아 나갔고
장군으로 퇴역했습니다
14
00:02:11,600 --> 00:02:13,267
잘 알겠습니다
15
00:02:14,142 --> 00:02:19,300
장군님, 군인을 직업으로 정하신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6
00:02:19,467 --> 00:02:26,367
또한 6·25전쟁 참전은 자발적인 것이었나요?
아니면 차출되신 것인가요?
17
00:02:27,267 --> 00:02:28,833
좋은 질문이네요
18
00:02:30,933 --> 00:02:43,967
콜롬비아 정부가 예비병역제를 도입함에 따라
군사교육은 민간인 때부터 받기 시작했습니다
19
00:02:46,233 --> 00:02:59,867
중등교육부터 훈련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15세 청소년일 때부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네요
20
00:03:00,867 --> 00:03:03,533
가족 중에도 군인이 있었어요
21
00:03:04,833 --> 00:03:09,967
저보다 먼저 육군 장교가 된
사촌들이 있었으니까요
22
00:03:10,467 --> 00:03:17,267
이것도 제가 군인이 된 것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 중 하나입니다
23
00:03:18,467 --> 00:03:28,867
그다음 질문에 답변을 드리면
자발적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어요
24
00:03:31,125 --> 00:03:39,659
참전 당시 24살이나 25살이었고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25
00:03:41,100 --> 00:03:48,033
보야카주 치킨키라시에서
복무 중이었습니다
26
00:03:51,333 --> 00:03:55,833
전쟁에 참전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27
00:03:56,967 --> 00:04:02,233
그야 뭐, 가족 모두 놀랐습니다
28
00:04:02,500 --> 00:04:05,922
그것도 자발적인
참전이라고 하니까요
29
00:04:06,167 --> 00:04:10,533
군에서 보낸 것도 아니고
제가 자원했다고 했으니 더 놀랬을 겁니다
30
00:04:12,200 --> 00:04:18,500
당연히 온 가족이
망연자실했습니다
31
00:04:19,467 --> 00:04:24,400
"왜 한국에 간다는 거지?
결혼도 했고 자식까지 있는데"
32
00:04:25,100 --> 00:04:29,967
하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는 그래야만 했어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33
00:04:31,667 --> 00:04:37,600
그래서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참전을 결정했습니다
34
00:04:37,600 --> 00:04:43,033
엄밀히 말하면, 예정되지 않은 결정이긴 했지만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었죠
35
00:04:43,775 --> 00:04:46,642
장군님, 당시 슬하의 자녀가
몇이나 되었나요?
36
00:04:46,667 --> 00:04:55,100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4.5명의 자녀가 있었어요
37
00:04:56,133 --> 00:05:00,267
제가 떠날 당시에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고요
38
00:05:01,267 --> 00:05:04,967
지금도 제 동료들은 놀라워해요
39
00:05:05,967 --> 00:05:16,467
사실 저 자신조차 자식 넷에 다섯 째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놀랍기는 합니다
40
00:05:19,900 --> 00:05:25,467
장군님, 참전하기 전에는
어떤 군사훈련을 받으셨는지 얘기해 주세요
41
00:05:25,651 --> 00:05:29,067
언제, 어디서, 어떤 훈련을 받으셨나요?
42
00:05:32,860 --> 00:05:40,260
초기 전투훈련은
콜롬비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43
00:05:40,867 --> 00:05:52,133
정확히 말하면, 기병학교에서 약 두 달간
전쟁에 대비하는 고강도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44
00:05:52,333 --> 00:05:59,933
말하자면, 평소와 다른 전쟁에서 잘 대처할 수 있고
책임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45
00:05:59,933 --> 00:06:07,100
장교로서 받던 정규 교육이
한층 강화된 형태였어요
46
00:06:11,633 --> 00:06:20,433
한국에서도 전장으로 투입되기 전
적응훈련을 받았고요
47
00:06:21,467 --> 00:06:35,033
요약하면, 정규전에 장교로서 참여하기 위해
콜롬비아와 한국에서 수년간 훈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8
00:06:37,600 --> 00:06:41,700
어떤 부대에 계셨고, 당시 직급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보직을 맡으셨나요?
49
00:06:41,700 --> 00:06:44,833
동료들의 이름은요?
50
00:06:44,833 --> 00:06:50,267
따르는 병사들은 몇 명이나 있었는지
기억나시는 것이 있나요?
51
00:06:50,267 --> 00:06:58,233
음, 제 나이를 생각하면 답하기
조금 어려운 질문이군요
52
00:06:59,000 --> 00:07:08,200
하여간에 한국에 참전할 당시
저는 수크레(Sucre) 제2보병대대에 있었습니다
53
00:07:09,333 --> 00:07:17,500
콜롬비아의 종교적 수도인
치킨키라시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였어요
54
00:07:21,267 --> 00:07:29,667
당시 저는 소대장이었고 장교와 부사관을 비롯해
약 50명 정도가 제 휘하에 있었습니다
55
00:07:29,667 --> 00:07:35,567
그리고 당시 저는 교관이었습니다
56
00:07:36,000 --> 00:07:47,233
모든 상황들 그러니까 콜롬비아 병역과 관련된
모든 상황에 관여했습니다
57
00:07:50,467 --> 00:07:57,100
한국으로 가기 전
콜롬비아군에서 복무했을 때입니다
58
00:07:57,100 --> 00:08:02,267
제 보직은 수크레 대대의
군수장교였습니다
59
00:08:02,967 --> 00:08:09,500
당시 군수장교는 부대의
물류를 담당하는 장교였어요
60
00:08:09,567 --> 00:08:15,900
실질적으로 저는 재무담당관이자
대대장님을 모시는 참모이기도 했습니다
61
00:08:15,900 --> 00:08:21,633
당시 라파엘 산 후안 중령님께서
대대장이셨는데
62
00:08:22,867 --> 00:08:27,833
정말 덕망 있는 분이었어요
63
00:08:28,400 --> 00:08:37,700
부대원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셨습니다
64
00:08:37,700 --> 00:08:43,033
제가 6·25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보고타는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65
00:08:43,033 --> 00:08:46,733
정권이 바뀌었던 거죠
66
00:08:48,367 --> 00:08:55,100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 콜롬비아인은 정치에 너무 열정적입니다
67
00:08:55,100 --> 00:08:59,900
그 시기는 국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 상황이었어요
68
00:09:06,233 --> 00:09:12,367
동료들은 사관학교의
일부 동기들만 기억이 나네요
69
00:09:12,367 --> 00:09:22,567
그리고 부첼리 대령,
그리고 로드리게스 핀손 대위도 생각나네요
70
00:09:23,067 --> 00:09:30,767
핀손 대위는 어디서나 주목할 만한 행동을 해
다들 슈퍼맨이라 불렀어요
71
00:09:30,767 --> 00:09:36,133
정말 활동적인 사람이었어요
72
00:09:40,433 --> 00:09:44,300
한국에는 언제,
어디로 도착하셨나요?
73
00:09:45,233 --> 00:09:53,400
1952년 말 한겨울에 도착했어요
74
00:09:56,567 --> 00:10:04,600
보고타에서 카르타헤나로, 카르타헤나에서 하와이로
다시 하와이에서 일본으로 이동했어요
75
00:10:04,600 --> 00:10:11,600
가는 데만 한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76
00:10:14,133 --> 00:10:20,900
사실상, 1952년은 이동하면서
그 해를 마무리한 셈이네요
77
00:10:24,700 --> 00:10:29,767
한반도에는 일본을 거쳐 도착했습니다
78
00:10:31,267 --> 00:10:40,967
인천항을 통해 전쟁이 한창이던
한국으로 입국했어요
79
00:10:44,000 --> 00:10:46,800
한국 어디에서 전투에 참가하셨나요?
80
00:10:48,333 --> 00:11:00,633
6·25전쟁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두 개의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81
00:11:03,200 --> 00:11:06,300
고통스러운 전투였지요
82
00:11:06,300 --> 00:11:18,700
콜롬비아 대대는 1년 전 한국에 도착했고
적극적인 공격으로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상태였습니다
83
00:11:18,700 --> 00:11:29,900
우리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실제로 전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두 가지 상황의 희생자였습니다
84
00:11:29,900 --> 00:11:37,567
적의 진지를 공격하고
이후 다시 적의 역습을 받는 그런 상황이었지요
85
00:11:37,733 --> 00:11:43,733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86
00:11:43,733 --> 00:11:48,367
저는 이 작전을 '피비린내 나는 3월'이라고
불렀습니다
87
00:11:48,367 --> 00:12:01,367
마침내 3월 10일 콜롬비아군은 바르불라작전을 통해
중국군 진지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88
00:12:01,367 --> 00:12:10,633
적의 진지까지 진입해
백병전을 벌여야 했고요
89
00:12:10,633 --> 00:12:18,267
적진에 우리 깃발을 꽂는 것이 목표였지요
그래서 작전명이 바르불라였던 거예요
90
00:12:18,267 --> 00:12:26,633
콜롬비아 독립전쟁의 바르불라전투에서 이름을 따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죠
91
00:12:27,267 --> 00:12:33,567
뒤이어 아군 전초기지에 대한
중국군과 북한군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92
00:12:33,567 --> 00:12:37,733
50명 정도가 참여한 대일(Dale)전투였지요
93
00:12:37,733 --> 00:12:48,267
당시 2개 중대가 야간교대를 하던 중 발생한
불모고지전투가 바로 그것입니다
94
00:12:49,100 --> 00:12:55,200
아군이 교대 중인 틈을 노린 적군의 공격에
우리 모두 당황했어요
95
00:12:55,200 --> 00:12:58,567
지나친 착각이 아니고
확실히 기억하는데요
96
00:12:58,800 --> 00:13:04,700
당시 아군은 사실상
전멸당한 수준이었습니다
97
00:13:04,700 --> 00:13:11,467
전사자가 92명, 부상자가 97명
실종자가 30명에 달했으니까요
98
00:13:12,833 --> 00:13:20,700
달리 말해, 그 당시 그곳에 있던 콜롬비아군의 대다수가
앞서 말한 세 가지 전투 중 어느 하나에는 희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99
00:13:24,533 --> 00:13:29,533
한국에서 얼마 동안 전쟁을 치르신 것인가요?
언제 콜롬비아로 귀국하셨어요?
100
00:13:31,000 --> 00:13:35,567
콜롬비아에는 대위를 달고 귀국했어요
101
00:13:37,900 --> 00:13:42,400
1954년에 전장에서 진급했으니까요
102
00:13:42,400 --> 00:13:48,667
그리고 대략 1년 반 정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103
00:13:50,133 --> 00:13:57,100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도 참여했어요
104
00:13:57,400 --> 00:14:05,233
이후 정전협정 중에 발생한
작전에도 참여했습니다
105
00:14:05,433 --> 00:14:10,833
정전협정을 체결했지만,
평화협정은 체결하지 못했지요
106
00:14:12,067 --> 00:14:19,867
그래서 늘 국지적인 공격과
상시적인 방어가 있었어요
107
00:14:21,567 --> 00:14:32,567
그리고 야간 공격 등과 같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해 발생되는 각종 문제들이 이어졌습니다
108
00:14:32,567 --> 00:14:38,267
전쟁 위협이 계속되는 이유도
물론 여기에 있었고요
109
00:14:39,767 --> 00:14:44,967
이 얘기를 들려주세요
참전하기 전 전쟁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110
00:14:46,300 --> 00:14:48,300
6·25전쟁이요?
111
00:14:51,000 --> 00:14:56,400
네, 1950년부터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112
00:14:56,400 --> 00:15:03,767
라우레아노 고메스 정부가
콜롬비아 대대를 창설했어요
113
00:15:05,333 --> 00:15:15,333
콜롬비아 해군의 호위함 파디야호를 통해
이미 한국에 군대를 파병했다는 뉴스를 통해서요
114
00:15:15,600 --> 00:15:24,267
그러니까 한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콜롬비아 부대는
호위함 파디야호였던 것이지요
115
00:15:26,067 --> 00:15:30,467
그 이후에 우리 지상군이
파병되었습니다
116
00:15:32,233 --> 00:15:42,233
저는 구체적으로
1954년 3월에 귀국했습니다
117
00:15:45,867 --> 00:15:51,733
한국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118
00:15:53,900 --> 00:15:58,333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한겨울이었어요
119
00:15:58,833 --> 00:16:08,033
일본에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방한복을 받았지요
120
00:16:09,067 --> 00:16:15,033
솔직히 말해, 제 첫인상은
당황스러움이었어요
121
00:16:15,400 --> 00:16:28,500
하선하니 겨우 장교 한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콜롬비아 대대의 부대대장이었던 산타 크루스 소령이었습니다
122
00:16:29,200 --> 00:16:34,667
소령은 우리를 군용 트럭으로
이동시켰어요
123
00:16:34,667 --> 00:16:44,733
그렇게 그날 밤 대대 주둔지로의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24
00:16:46,933 --> 00:16:59,467
추호의 과장도 없이 말해, 당시 저는 적막감
가난, 불행과 고통을 보았어요
125
00:16:59,467 --> 00:17:09,567
저는 그 상황에 놀랐어요
처음으로 완전히 파괴된 나라에 도착했으니까요
126
00:17:12,967 --> 00:17:19,500
한국에 있는 동안 배치되었던
장소를 말씀해 주세요
127
00:17:21,800 --> 00:17:30,333
제일 먼저 철원지역에 위치한
훈련장에 도착했어요
128
00:17:31,600 --> 00:17:38,533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곳에서 전선에 투입되기 전까지
다시 적응훈련을 받았습니다
129
00:17:40,067 --> 00:17:44,700
그곳에서 전선까지는 거리가 있었지요
130
00:17:46,200 --> 00:17:54,233
그러니까 이 훈련장
인근에 있는 산에서
131
00:17:58,133 --> 00:18:00,100
약 2개월 정도 머물렀어요
132
00:18:06,833 --> 00:18:12,000
그 당시 상황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133
00:18:12,467 --> 00:18:18,667
어쨌든 이후 우리는
실제 전투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134
00:18:20,433 --> 00:18:28,733
그러자 앞서 언급했던 당혹감이
금방 책임감으로 바뀌더군요
135
00:18:28,733 --> 00:18:35,533
언제든 지시가 떨어지면
그 즉시 전장으로 나가야 했어요
136
00:18:37,967 --> 00:18:43,367
상황이 닥치니까
실감이 나기 시작했어요
137
00:18:43,367 --> 00:18:46,633
사실, 적응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그나마 차분했던 거였어요
138
00:18:46,633 --> 00:18:54,900
전선에 투입된 후부터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139
00:18:55,533 --> 00:19:00,633
그야말로 전쟁의 혹독함을
느끼기 시작한 거지요
140
00:19:02,067 --> 00:19:05,900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141
00:19:08,100 --> 00:19:21,200
동맹국 진영의 적군과 연합국 진영의 아군으로 갈린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요
142
00:19:21,200 --> 00:19:27,600
우리 콜롬비아 대대가 속한 진영과
반대 진영이 서로 총칼을 겨누었어요
143
00:19:27,967 --> 00:19:30,400
실제 상황에 처한 것이지요
144
00:19:30,400 --> 00:19:33,967
인디언헤드라는 지역에
집결한 상태였습니다
145
00:19:33,967 --> 00:19:38,700
맞아요, 그 이름이 생각나네요
146
00:19:38,700 --> 00:19:50,600
그곳에서 다시 마찬가지로 철원에 속했던
또 다른 지역인 캡 스튜어트로 이동했습니다
147
00:19:51,867 --> 00:19:56,333
그곳에서 첫 번째 공격명령을
하달받았습니다
148
00:19:56,333 --> 00:20:01,867
제가 앞서 바르불라작전이라
말씀드렸던 전투였지요
149
00:20:02,133 --> 00:20:06,267
그 명령을 받았을 때가
3월 말이었습니다
150
00:20:06,500 --> 00:20:15,833
전년도도 그렇고 1952년 새해에도
우리는 실제 전장에서 보냈습니다
151
00:20:16,700 --> 00:20:20,200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었지요
152
00:20:20,200 --> 00:20:22,900
전장에서 온갖 감정들이
밀려오더군요
153
00:20:22,900 --> 00:20:29,633
멀리 떨어져 있는 조국의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고요
154
00:20:31,200 --> 00:20:35,200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155
00:20:36,867 --> 00:20:39,367
전쟁기간 동안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얘기해 주세요
156
00:20:39,367 --> 00:20:45,033
그러니까 음식, 잠자리 등은 어떠했는지
휴식시간에는 무엇을 했는지 등이요
157
00:20:47,367 --> 00:20:58,833
음, 제 생각에 우리가 세계 최고의
군대에 속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58
00:20:59,800 --> 00:21:02,700
우리에겐 또 다른 놀라움이었어요
159
00:21:02,700 --> 00:21:06,933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였고,
모든 일이 원활하게 해결되었습니다
160
00:21:06,933 --> 00:21:17,667
식량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는 전혀 없었고
그 어떤 순간에도 고통을 받지 않았어요
161
00:21:20,033 --> 00:21:28,100
모든 것이 잘 준비되어
있었으니까요
162
00:21:28,100 --> 00:21:30,900
전장에서 부족한 것은
전혀 없었어요
163
00:21:30,900 --> 00:21:35,967
항상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잠을
잘 수 있었고, 잘 먹었어요
164
00:21:37,100 --> 00:21:41,433
잘 훈련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제대로 공급받았어요
165
00:21:41,433 --> 00:21:51,633
실제로 미군에 소속되었던 경험은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166
00:21:51,833 --> 00:21:58,200
사실 콜롬비아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었어요
167
00:21:59,167 --> 00:22:06,167
콜롬비아에서 우리의 임무는
일상적인 반복에 불과했거든요
168
00:22:07,867 --> 00:22:18,967
하지만 한국에서 받았던 미군의
물류 지원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169
00:22:23,400 --> 00:22:30,500
참전하셨을 당시 결혼한 상태였다고 하셨는데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으셨나요?
170
00:22:30,500 --> 00:22:31,933
매월 주고받았습니다
171
00:22:32,533 --> 00:22:34,500
편지를요?
172
00:22:34,767 --> 00:22:45,133
그러니까 서신 교환은 대략
한 달 반마다 이루어졌어요
173
00:22:46,167 --> 00:22:54,333
당연히 아내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지요
174
00:22:57,033 --> 00:23:02,433
이곳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들려주고
무엇보다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175
00:23:03,733 --> 00:23:09,767
그 당시 뉴스로 전파된
소식이 있었는데요
176
00:23:13,433 --> 00:23:21,067
특히 중국군이 공격해 온 불모고지전투가
일어났을 당시에도 보도가 되었어요
177
00:23:21,733 --> 00:23:25,133
콜롬비아 대대가 전멸했다고
보도됐습니다
178
00:23:26,933 --> 00:23:28,967
하지만 제가 속한 중대는
아니었어요
179
00:23:28,967 --> 00:23:35,567
그날 밤 전멸 수준의 피해를 입은 대대이긴
했지만 저는 C중대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180
00:23:36,800 --> 00:23:45,500
편지를 통해 가족들 소식을 접했고
특히 제 아내가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어요
181
00:23:45,500 --> 00:23:52,367
때로는 아이들의 음성을 녹음한
디스크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182
00:23:56,200 --> 00:24:00,333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신을 통해 들려주곤 했어요
183
00:24:00,333 --> 00:24:04,400
저는 가족을 치킨키라에
두고 왔었습니다
184
00:24:04,400 --> 00:24:08,280
그곳에 사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85
00:24:08,467 --> 00:24:11,800
그곳에 남은 장교들에게 가족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어요
186
00:24:12,833 --> 00:24:23,000
동료 장교들은 제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187
00:24:24,033 --> 00:24:31,033
편지 교환은 정기적이고 원활한
방식으로 적시에 이루어졌습니다
188
00:24:32,833 --> 00:24:39,667
우편 배송은 편지를 받기까지
대략 15일 정도 걸렸습니다
189
00:24:39,967 --> 00:24:46,633
당연히 편지를 쓴 당일 받을 수는 없었고
배송까지 15일 정도 걸렸었어요
190
00:24:46,806 --> 00:24:53,667
아내와 자녀는 물론이고
형제자매와도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191
00:24:53,667 --> 00:25:03,433
다행스럽게도 저는 제 친가나 처가의 가족들과
정기적으로 정상적인 편지 교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2
00:25:06,867 --> 00:25:16,567
장군님을 비롯한 콜롬비아 군인들이
다른 외국군이나 한국군과 어떤 관계였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193
00:25:23,433 --> 00:25:26,200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194
00:25:27,133 --> 00:25:34,867
실제로 미군이 제공한
프로그램 활동이 있었어요
195
00:25:35,067 --> 00:25:53,667
대략 3개월마다 연대 내 다른
외국 부대들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있었지요
196
00:25:54,233 --> 00:26:02,200
이렇게 3개월에 한 번씩
후방 지역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197
00:26:02,733 --> 00:26:10,767
휴식 중에는 함께 스포츠를 즐겼고요
198
00:26:10,967 --> 00:26:16,833
그러면서 우애를 나누며 교류했습니다
199
00:26:18,767 --> 00:26:28,233
조화롭게 모든 것이 잘 계획되어 있었고
특히 우리 군은 영국군과 매우 친하게 지냈어요
200
00:26:28,933 --> 00:26:39,167
매번 휴가 때마다 영국에서 파병된 군인들과
축구대회를 열 정도였으니까요
201
00:26:39,167 --> 00:26:43,567
영국 군인들은 축구를 매우 잘했고, 우리도 그랬지요
콜롬비아군은 훌륭한 축구팀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202
00:26:47,300 --> 00:26:56,767
문화 교류도 이루어졌어요, 물론 전시라는
한계 상황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203
00:26:57,200 --> 00:27:07,500
한국에 파병된 모든 외국 군대를 다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외국군과만 전우애를 나누었어요
204
00:27:07,500 --> 00:27:10,667
그래도 우리 주변에 있던 외국 군인들
205
00:27:10,667 --> 00:27:16,033
우리와 같은 사단이나 연대에 속했던
외국 군인들과는 알고 지냈습니다
206
00:27:16,233 --> 00:27:26,933
한국에 주둔했던 미 제8군은 한 번에
수십만 명에 이르는 군단을 이동시켰습니다
207
00:27:27,467 --> 00:27:36,067
그 덕분에 대대 수준에서 이웃한 여러 외국
군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208
00:27:37,400 --> 00:27:46,000
6·25전쟁 참전기간 동안 가장 힘들고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말씀해 주세요
209
00:27:48,306 --> 00:27:54,839
의심할 여지없이 앞서 언급했던
'피비린내 나는 3월'이었죠
210
00:27:56,700 --> 00:28:03,867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했으니까요
211
00:28:06,960 --> 00:28:19,893
우리 중화기소대의
기관총 사수가 전사하면
212
00:28:21,700 --> 00:28:32,667
언제든 그 자리에 제가 투입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213
00:28:33,933 --> 00:28:42,500
1953년 3월 23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 밤이었습니다
214
00:28:43,500 --> 00:28:50,500
'불모고지'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이 유명한 전투가 벌어졌던 날이죠
215
00:28:51,000 --> 00:28:54,600
'불모고지'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216
00:28:54,600 --> 00:28:59,782
이곳이 북한군과 대치하며 연합군이
확보한 최전방 전초 기지였습니다
217
00:29:00,100 --> 00:29:04,833
양측이 뺐고 빼앗기는 과정들을
수차례 반복했어요
218
00:29:05,540 --> 00:29:08,974
나중에 가서는 사실상 그 지역에
방어수단이 전혀 없게 되었어요
219
00:29:10,447 --> 00:29:19,414
쉬는 동안 그저 잠시 몸을 숨길 수 있는 참호들만
덩그러니 남게 된 그런 불모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220
00:29:20,333 --> 00:29:27,798
전쟁이 더 힘겹고, 더 처참하고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어요
221
00:29:27,919 --> 00:29:35,853
또한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었지요
222
00:29:36,166 --> 00:29:47,933
전장은 동료 군인들과 정신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따뜻한 가족의 정을 나누던 곳이기도 했어요
223
00:29:48,486 --> 00:29:54,253
바로 그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밤으로 기억합니다
224
00:29:56,660 --> 00:29:58,560
전투 중 부상을 입으셨는지요?
225
00:30:00,346 --> 00:30:02,646
다행히 부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226
00:30:05,459 --> 00:30:11,725
참전기간 동안 보람을 느꼈던 순간
또는 평화의 순간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227
00:30:13,333 --> 00:30:15,500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228
00:30:22,193 --> 00:30:29,659
정전협정 체결 후 제가 대위로
진급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229
00:30:29,972 --> 00:30:37,039
군사작전은 중단되었지만
계속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230
00:30:38,192 --> 00:30:42,259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231
00:30:43,105 --> 00:30:51,205
저에게는 대위로 진급했던 그때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 중 하나였어요
232
00:30:52,046 --> 00:30:59,813
그러고 보니 3월 전투가 끝난 후
임무 완수를 치하하기 위해
233
00:30:59,867 --> 00:31:09,300
용맹을 상징하는 "V" 마크가 새겨진 명예훈장을
콜롬비아 대대로부터 받았던 행사가 생각납니다
234
00:31:11,900 --> 00:31:21,366
대대장님께서 직접 훈장을 수여해 주셨는데
그날 밤 전투에서 제가 얼마 안 되는 병력으로
235
00:31:21,433 --> 00:31:32,029
중국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불모고지'에
인접한 월주 진지를 지켜냈거든요
236
00:31:32,200 --> 00:31:40,700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가 적군에게
함락되지 않도록 막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37
00:31:40,867 --> 00:31:51,800
이 진지가 적군의 수중에 들어갔다면
미군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238
00:31:55,453 --> 00:31:56,920
그런 다른 사례가 있나요?
239
00:31:58,900 --> 00:32:01,200
사실 진급과 관련된 일이 있어요
240
00:32:02,767 --> 00:32:07,633
또 다른 매우 특별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241
00:32:08,000 --> 00:32:13,200
콜롬비아군이 속했던 사단의 사단장은
아서 트뤼도 장군이셨습니다
242
00:32:13,767 --> 00:32:18,467
당시 트뤼도 장군은 프랑스 혈통의
미국인 소장이었어요
243
00:32:18,967 --> 00:32:23,100
우리 대대와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244
00:32:23,500 --> 00:32:29,712
제가 별 3개를 달던 자리에도
참석해 주셨어요
245
00:32:29,939 --> 00:32:36,006
미군의 경우에 장군들은 별로 계급을 표시하죠
그분은 소장으로 2성 장군이셨습니다
246
00:32:36,700 --> 00:32:46,178
이와 달리 콜롬비아에서는
하급 장교에게 별을 사용합니다
247
00:32:46,433 --> 00:32:51,700
제가 세 번째 별을 달고 대위가 되었을 때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248
00:32:53,100 --> 00:32:59,833
"축하해, 나도 세 번째
별을 달면 좋겠다"
249
00:33:00,633 --> 00:33:08,833
이 말을 듣고 짧은 영어로라도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250
00:33:11,533 --> 00:33:19,900
"장군님 같이 훌륭한 분께는 이미 5성
장군의 별 다섯 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51
00:33:20,567 --> 00:33:22,567
그러자 그분이 저를 안아 주셨어요
252
00:33:26,500 --> 00:33:32,800
한국에서 복무하는 동안
어떤 보수나 대가를 받으셨는지요?
253
00:33:32,800 --> 00:33:37,500
또한 그렇게 받은 보수는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254
00:33:37,500 --> 00:33:48,700
매우 좋은 질문이네요
당연히 제 직급에 맞는 월급을 받았습니다
255
00:33:49,233 --> 00:33:54,867
콜롬비아를 대표해
파병된 것이었으니까요
256
00:33:55,933 --> 00:34:06,567
콜롬비아도 당연히 매달 월급을 지급했는데
월급은 콜롬비아 페소와 달러로 지급되었어요
257
00:34:09,100 --> 00:34:17,933
다섯 명의 자식을 키우며
버젓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258
00:34:18,800 --> 00:34:25,800
월급의 3/4은 제 아내에게
지급되도록 했어요
259
00:34:26,933 --> 00:34:40,600
달러로 지급되던 부분은 모두
콜롬비아에 가져갈 물건들을 사는 데 썼습니다
260
00:34:42,000 --> 00:34:52,933
파병군들이 일본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미국이 계획한 R&R(Rest and Recreation) 프로그램이란 것이 있었는데
261
00:34:55,033 --> 00:34:58,433
일종의 회복/휴식
프로그램이었지요
262
00:34:59,033 --> 00:35:10,467
6개월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10일의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263
00:35:13,267 --> 00:35:19,133
그 10일 동안 가족들에게
가져갈 물건을 구입하곤 했습니다
264
00:35:19,133 --> 00:35:26,200
한 번은 아내의 이니셜이 새겨진
식기를 주문하기도 했었지요
265
00:35:27,233 --> 00:35:37,600
옷, 장난감 등 당시 일본에서
팔던 물건들을 구입했지요
266
00:35:39,567 --> 00:35:43,467
많은 물건을 살 수 있었어요
267
00:35:44,167 --> 00:35:49,333
이렇게 가족에게 가져갈 물건들을
구입하느라 쓴 것이 전부였습니다
268
00:35:49,633 --> 00:35:53,433
모조리 물건을 사는 데 썼지요
269
00:35:54,940 --> 00:35:56,873
이번엔 이 얘기를 들려주세요
270
00:35:57,667 --> 00:36:01,267
장군님은 정전협정 서명 후 한국을
떠나셨습니다, 그렇지요?
271
00:36:03,833 --> 00:36:14,200
한국을 떠날 당시,
심정은 어떠셨나요?
272
00:36:14,200 --> 00:36:19,367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서
기대하신 것이 있으셨나요?
273
00:36:20,300 --> 00:36:28,300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슬펐습니다
274
00:36:28,867 --> 00:36:37,300
콜롬비아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제는 흘러가 버린 인생의 한 시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더군요
275
00:36:38,033 --> 00:36:40,867
그렇게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276
00:36:42,200 --> 00:36:47,533
"언제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까?"
277
00:36:49,019 --> 00:36:53,453
지금 되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278
00:36:54,646 --> 00:37:03,513
전쟁은 제 군 경력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을 남겼습니다
279
00:37:04,233 --> 00:37:11,700
콜롬비아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것들을
한국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280
00:37:12,000 --> 00:37:19,360
저에게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281
00:37:19,487 --> 00:37:23,654
6·25전쟁 전 군인의 삶과
6·25전쟁 후 군인의 삶으로 나뉜다고나 할까요
282
00:37:24,767 --> 00:37:33,333
6·25전쟁 참전은 나머지 제 군 경력에 지대한 영향을 준
매우 근본적이고 귀중한 교훈들을 남겼습니다
283
00:37:34,033 --> 00:37:40,666
당시 한국에 와보니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284
00:37:41,833 --> 00:37:51,767
그처럼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요
285
00:37:51,973 --> 00:37:54,840
실제로 한국의 역사는 정말 슬펐습니다
286
00:37:57,200 --> 00:38:05,133
1952년 한국에 도착했을 때
287
00:38:05,533 --> 00:38:16,800
저는 한국이 1910년에 일제의 한국강점 조약을 체결하고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를 알고 있었어요
288
00:38:20,000 --> 00:38:29,767
일본의 약탈이 극에 달해
한국은 완전히 진이 빠진 상태였지요
289
00:38:30,160 --> 00:38:39,527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파괴되어
4층짜리 건물조차 없던 서울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290
00:38:39,567 --> 00:38:46,900
그 밖에 다른 곳들도
매우 가난한 마을 뿐이었지요
291
00:38:48,613 --> 00:38:57,180
유일하게 괜찮아 보이는 것은
그나마 대한제국 궁전이었어요
292
00:38:58,420 --> 00:39:14,186
당시 한국인들이 처했던 비참한 상황과 비교하면
콜롬비아는 모든 면에서 훨씬 우월한 나라였습니다
293
00:39:15,019 --> 00:39:19,552
게다가 한국인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294
00:39:21,506 --> 00:39:29,406
당시 한국은 가난한 나라이자
정말 비참한 나라였습니다
295
00:39:36,552 --> 00:39:46,319
장군님, 이제 6·25전쟁의 유산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 이후로 한국을 다시 방문하신 적이 있나요?
296
00:39:47,080 --> 00:39:48,480
네, 있어요
297
00:39:51,400 --> 00:40:03,400
6·25전쟁에서 귀국한 후 35년이 지났을 무렵
한국 라이온스클럽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298
00:40:05,800 --> 00:40:09,167
그와 관련해 글도
썼던 것으로 기억해요
299
00:40:11,419 --> 00:40:22,986
3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감회를 담은
글이었는데 이따가 찾게 되면 보여줄게요
300
00:40:26,139 --> 00:40:29,873
한국 방문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301
00:40:30,952 --> 00:40:41,952
저에게 한국과의 유대는 정말 각별합니다
전쟁 자체가 형제와 같은 전우애를 갖게 만드니까요
302
00:40:42,846 --> 00:40:51,079
이렇게 라이온스클럽 회장의 특별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어요
303
00:40:52,446 --> 00:40:58,480
당시 라이온스클럽 회장이 보고타를 방문했고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를 열었는데
304
00:40:59,827 --> 00:41:02,327
그때 저도 초대를 받았어요
305
00:41:03,553 --> 00:41:13,853
그리고 우연히 우리를 초청해 준 라이온스클럽 회장
김소식 여사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306
00:41:13,900 --> 00:41:21,123
그분이 이렇게 묻더군요
"전쟁에서 돌아오신 후 다시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나요?"
307
00:41:21,207 --> 00:41:25,240
"아뇨,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여사님께서 말씀하셨어요
308
00:41:25,300 --> 00:41:29,277
"제가 장군님과 사모님을 초청하겠습니다"
309
00:41:31,686 --> 00:41:45,006
그냥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매우 의미 있는 대화였어요
310
00:41:45,153 --> 00:41:54,841
그로부터 1개월쯤 후 저와 제 아내를 위한
한국행 비행기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311
00:41:54,986 --> 00:42:04,416
그렇게 저와 제 아내는 한국을 방문했고
라이온스클럽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312
00:42:04,619 --> 00:42:08,919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지요
313
00:42:09,033 --> 00:42:20,720
35년 만에 방문한 한국의 모습은 놀라웠어요
짧은 기간에 이룬 눈부신 발전에 놀랐습니다
314
00:42:20,906 --> 00:42:28,006
한 국가에게 35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미 강대국이 되어 있었어요
315
00:42:28,319 --> 00:42:32,586
아시아의 다섯 마리 호랑이 중
하나가 되어 있더군요
316
00:42:35,980 --> 00:42:41,447
다른 방문 기회도 있었나요?
아니면 한 번 뿐이었나요?
317
00:42:41,546 --> 00:42:43,646
그때 이후로는 없습니다
318
00:42:46,113 --> 00:42:57,413
6·25전쟁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 성과와
민주화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19
00:42:58,000 --> 00:43:01,566
그야말로 모범 그 자체예요
320
00:43:02,333 --> 00:43:08,800
우리 콜롬비아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모범이라 할 수 있어요
321
00:43:09,400 --> 00:43:14,833
참전했을 때만 해도 식민지에서
막 해방된 국가였어요
322
00:43:16,033 --> 00:43:23,100
그처럼 가난했던 국가가 이제 어엿한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모습을 보고 기뻤어요
323
00:43:24,100 --> 00:43:31,567
한국이 이룬 그 모든 성과에 기쁨을 느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324
00:43:31,687 --> 00:43:37,520
저는 정말이지 한국인에게
큰 형제애를 느끼거든요
325
00:43:41,620 --> 00:43:46,187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1년이 지났습니다
326
00:43:47,319 --> 00:43:53,286
이처럼 오랫동안 정전 상태를
유지한 사례는 없었지요
327
00:43:54,000 --> 00:43:54,704
그렇지요
328
00:43:54,967 --> 00:43:59,800
이러한 상황을 종식시키고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바꾸려면
329
00:43:59,800 --> 00:44:01,900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330
00:44:01,900 --> 00:44:07,167
그렇게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우리가 바라는 꿈이기도 하지요
331
00:44:07,467 --> 00:44:11,000
하지만 솔직히 말해
몹시 어렵다고 봐요
332
00:44:11,167 --> 00:44:17,100
화합하기 정말 어려운 정치적
이념들이 서로 충돌하니까요
333
00:44:18,107 --> 00:44:25,040
제 생각에는 정전협정 당시에
큰 잘못을 범했다고 봅니다
334
00:44:25,733 --> 00:44:37,733
하나였던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눠
휴전선을 그은 일 말입니다
335
00:44:39,333 --> 00:44:46,867
클라크 장군은 이 군사분계선 설정이
유약함에서 비롯된 잘못이라 하셨지요
336
00:44:46,867 --> 00:44:51,400
실제로 이로 인해 한반도는
둘로 쪼개졌습니다
337
00:44:52,033 --> 00:44:58,967
사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화해시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338
00:44:59,600 --> 00:45:04,400
둘은 판이하게 다른 정치 이념입니다
339
00:45:04,400 --> 00:45:12,502
북한에 공산주의자들이 있고 남한에 민주주의자들이
있는 이런 상황이 계속 유지되는 한 말이에요
340
00:45:12,733 --> 00:45:18,500
그래서 평화조약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341
00:45:18,500 --> 00:45:27,867
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베를린
342
00:45:29,345 --> 00:45:37,245
아니 독일이 남긴 선례가 한국에서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343
00:45:38,133 --> 00:45:43,333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식입니다
344
00:45:43,552 --> 00:45:47,686
하지만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이상에 불과하죠
345
00:45:47,753 --> 00:45:50,453
한국이 다시 하나가 되길 바랍니다
346
00:45:51,273 --> 00:45:57,973
동족상잔을 유발하는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지요
347
00:46:02,586 --> 00:46:08,419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유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48
00:46:12,433 --> 00:46:16,799
6·25전쟁 참전은요
349
00:46:19,746 --> 00:46:26,046
우리 모두에게 완전한 탈바꿈을 의미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350
00:46:26,300 --> 00:46:36,922
해군, 육군 등 6·25전쟁에
참가했던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351
00:46:37,233 --> 00:46:46,254
과장 없이 말해, 콜롬비아군은 6·25전쟁 참전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352
00:46:46,567 --> 00:46:52,633
6·25전쟁에 참전하기 전 우리 군은
353
00:46:53,533 --> 00:47:02,686
특히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군사 분야 전문교육을 받았어요
354
00:47:03,000 --> 00:47:11,333
하지만 6·25전쟁 참전 후에는
미군이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지요
355
00:47:13,033 --> 00:47:20,983
전략, 전술, 물류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발자국을 남겼어요
356
00:47:21,300 --> 00:47:29,100
우리가 6·25전쟁에서 얻을 수 있었던
357
00:47:29,100 --> 00:47:34,400
그리고 한국에서 콜롬비아로 돌아와
우리 군에 남은 최고의 교훈이었습니다
358
00:47:36,867 --> 00:47:44,233
6·25전쟁에 대해 후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359
00:47:46,900 --> 00:47:51,267
글쎄요, 6·25전쟁은 그저
사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360
00:47:51,267 --> 00:47:59,867
현실 세계에서는 가능하면
대내외적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
361
00:48:00,467 --> 00:48:08,967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군요
362
00:48:09,967 --> 00:48:23,767
군사교리 분야의 한 권위 있는 저술가는 전쟁이
다른 수단을 적용하는 정책이라고 했습니다
363
00:48:24,767 --> 00:48:29,433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364
00:48:31,833 --> 00:48:39,900
전 세계가 전쟁이라는 극단으로 치닫는 대신
화해와 조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365
00:48:40,100 --> 00:48:49,300
제 생각에는 전쟁도 평화로
되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366
00:48:50,300 --> 00:48:56,667
군인으로서 한 말씀드리면
부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
367
00:48:58,667 --> 00:49:02,733
전쟁과 같은 과열된 방식을
피할 수 있길 바랍니다
368
00:49:06,247 --> 00:49:13,247
장군님, 저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의견이 있으실까요?
일화를 말씀해 주셔도 좋고요
369
00:49:19,273 --> 00:49:26,673
글쎄요, 저는 군인이 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370
00:49:27,733 --> 00:49:38,867
사실 군인이 되기 전에는
국립대학에서 공학수학을 공부했어요
371
00:49:40,813 --> 00:49:54,013
하지만 결국은 군인이 되려는 제 소명에 따라
대학 강의실이 병영으로 바뀌었네요
372
00:49:57,293 --> 00:50:02,593
또한 저에게는 성공적인
군 경력을 이루는 행운도 따랐습니다
373
00:50:03,333 --> 00:50:09,833
군을 떠나며 사관학교에서
퇴임사를 했었어요
374
00:50:10,533 --> 00:50:14,292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375
00:50:14,454 --> 00:50:29,633
"전사의 삶에서 기독교인의
삶으로 되돌아간다"라고요
376
00:50:34,567 --> 00:50:38,382
- 장군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377
00:50:38,667 --> 00:50:40,833
좋은 하루 보내세요
378
00:50:40,833 --> 00:50:52,933
잊혀진 전쟁에 대해 세상에 알리려는
여러분의 노고를 높이 삽니다
379
00:50:54,900 --> 00:51:02,367
왜 잊혀진 전쟁이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380
00:51:02,367 --> 00:51:15,633
여러분이 하는 이 인터뷰는 우리 콜롬비아인
특히 전쟁을 경험했던 참전용사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