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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Eduardo Arguello Montenegro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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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0:05,100 --> 00:00:11,700 제 이름은 에두아르도 아르구엘로 몬테네그로 (Eduardo Arguello Montenegro)이고 육군 소령입니다 2 00:00:12,967 --> 00:00:23,533 이제 곧 87살이 되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3 00:00:24,767 --> 00:00:32,967 1927년 11월 25일에 쿤디나마르카의 테나라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4 00:00:33,967 --> 00:00:39,567 지금은 그때만큼 아름답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5 00:00:39,567 --> 00:00:44,267 또한 위대한 독립영웅 2명과도 많은 관련이 있는 역사 깊은 곳입니다 6 00:00:44,267 --> 00:00:48,700 바로 시몬 볼리바르 장군과 프란치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 장군입니다 7 00:00:49,267 --> 00:00:54,433 제 부모님 성함은 엘리세오 아르구엘로와 엔리케타 몬테네그로입니다 8 00:00:55,167 --> 00:01:02,733 우리는 8남매인데 4명은 세상을 떠났고, 4명이 남아있습니다 9 00:01:03,300 --> 00:01:09,267 그중에서 저는 제 아내인 루시아와 7남매의 자녀를 두고 있어요 10 00:01:09,267 --> 00:01:13,333 아들 세명에 딸 네 명이에요 11 00:01:13,700 --> 00:01:21,267 또 우리 부부는 손주 9명과 증손녀 2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랍니다 12 00:01:21,800 --> 00:01:23,633 감사합니다 13 00:01:24,500 --> 00:01:28,333 학창 시절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14 00:01:29,533 --> 00:01:35,400 학력을 말씀드리면 전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어요 15 00:01:35,667 --> 00:01:41,500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 입대를 했거든요 16 00:01:41,500 --> 00:01:45,100 저는 육군사관학교에서부터 군 경력을 쌓았어요 17 00:01:45,633 --> 00:01:53,667 고등학교 졸업 후에 사관학교에 들어가 소위가 되었어요 18 00:01:53,692 --> 00:01:55,958 그 계급과 경력을 통해 19 00:01:59,567 --> 00:02:06,533 후에 콜롬비아 군부대의 일원으로 한국에 가게 되었지요 20 00:02:06,933 --> 00:02:11,467 감사합니다, 군 경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21 00:02:12,767 --> 00:02:14,900 군 경력이요 22 00:02:15,100 --> 00:02:18,200 이전 경력은 별다른 건 없었고 23 00:02:18,200 --> 00:02:25,167 전 1946년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경력을 쌓기 시작했어요 24 00:02:25,600 --> 00:02:34,667 고등학교 후반기, 그러니까 4, 5, 6학년을 마치고 1년 동안은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힘들었어요 25 00:02:35,933 --> 00:02:50,000 1949년 12월에 소위로 임관하고 일 년 뒤에 같은 계급으로 부대를 콜롬비아군 부대로 옮겼어요 26 00:02:50,000 --> 00:02:55,833 그리고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한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27 00:02:56,133 --> 00:03:01,333 6·25전쟁 참전은 자발적으로 하신 건가요 아니면 차출되신 건가요? 28 00:03:01,333 --> 00:03:08,733 당연히 자원해서 간 것이죠, 전적으로 자원이었어요 29 00:03:08,733 --> 00:03:12,700 보고타 부대원들은 모두 자원한 사람들이었어요 30 00:03:12,700 --> 00:03:22,700 이곳 보고타에는 6·25전쟁 파견 대대가 주둔해 있었고 그 부대의 지휘관이 이후에 콜롬비아 대대의 지휘관이 되었지요 31 00:03:22,700 --> 00:03:33,200 하이메 폴라나 푸요 중령이 콜롬비아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어요 32 00:03:33,200 --> 00:03:44,633 모든 부대 군인은 그가 '나와 함께 한국에 갈 사람은 한 발짝 앞으로 나와라'라는 말을 듣고 모두 한 발짝 앞으로 나갔습니다 33 00:03:44,633 --> 00:03:47,267 9%가 그와 함께 갔어요 34 00:03:47,267 --> 00:03:54,167 두 달 정도 걸려 도착했는데, 우리는 보고타 부대가 아닌 콜롬비아를 대표해서 온 부대였습니다 35 00:03:54,167 --> 00:04:00,367 유엔과 콜롬비아의 이름으로 6·25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이지요 36 00:04:01,500 --> 00:04:04,567 사전에 받으셨던 훈련에 대해서도 좀 말씀해 주세요 37 00:04:04,567 --> 00:04:08,200 6·25전쟁에 파견되기 위해 콜롬비아 대대에서 받았던 훈련과정이요 38 00:04:08,200 --> 00:04:15,700 저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받은 훈련 외에도 대대에서 추가적인 훈련을 받았어요 39 00:04:15,700 --> 00:04:18,767 이미 결성되어 있던 콜롬비아 부대는 40 00:04:18,767 --> 00:04:27,633 미군 사절단이 이끄는 북부 주에서 훈련을 받을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어요 41 00:04:27,800 --> 00:04:38,067 두 달 이상 계속된 훈련은 굉장히 힘들었고 그 훈련 후에 대대는 한국으로 출발했습니다 42 00:04:38,067 --> 00:04:46,733 한국에서는 미군 훈련센터에서 비슷한 형태의 훈련을 계속 받았는데 43 00:04:46,733 --> 00:04:50,933 여기서 받았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44 00:04:50,933 --> 00:04:53,967 콜롬비아에서의 훈련보다 훨씬 힘들었고 45 00:04:53,967 --> 00:05:03,533 전쟁을 위한 훈련이라는 것은 굉장히 매우 힘들어야 한다고 미군 리지웨이 대장은 말했습니다 46 00:05:03,533 --> 00:05:15,200 또한 전장의 병사 스스로가 휴식을 원할 정도로 힘들고, 명확하며 실제 같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7 00:05:17,167 --> 00:05:20,767 감사합니다, 언제, 한국 어디로 도착하셨나요? 48 00:05:20,767 --> 00:05:24,000 그리고 콜롬비아군의 여정은 어땠나요? 49 00:05:24,000 --> 00:05:27,700 보고타에서 출발했고 큰 행사가 있었어요 50 00:05:27,700 --> 00:05:36,500 당시 라우레아노 고메즈 대통령이 특별한 행사를 열었던 볼리바르 광장에서 출발했고요 51 00:05:36,500 --> 00:05:42,067 대통령이 콜롬비아 국기를 전달하고 52 00:05:42,067 --> 00:05:51,533 긴 행렬이 볼리바르 광장 셉티마 길에서부터 당시 국방부가 있던 26길까지 이어졌어요 53 00:05:51,533 --> 00:06:01,800 정말이지 엄청난 수의 군중들이 우리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54 00:06:01,800 --> 00:06:05,867 다음 날, 사바나 역에서 이바게행 열차를 탔어요 55 00:06:05,867 --> 00:06:14,167 전부 기차를 타고 갔는데 역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여성들이 배웅을 해 줬어요 56 00:06:14,167 --> 00:06:25,500 박수를 치면서 배웅해 주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바게에서 다시 아르메니아로 여정이 계속되었어요 57 00:06:25,500 --> 00:06:37,700 중간에 버스로도 이동을 했었고 아르메니아에서 부에나벤투라까지는 다시 기차를 탔어요 58 00:06:38,200 --> 00:06:47,033 그리고 태평양 쪽 콜롬비아 항구에 도착한 다음 날 군 수송함이 출항했습니다 59 00:06:47,033 --> 00:07:01,767 그 배는 미국 해군의 배였는데 해상으로 한국에 도착하기까지는 대략 30일 이상 걸렸습니다 60 00:07:01,767 --> 00:07:13,167 그렇게 한국의 남쪽에 있는 부산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61 00:07:13,167 --> 00:07:23,833 가는 도중 하와이에 7 ~ 8시간 정도 머물렀고 최종적으로는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62 00:07:23,833 --> 00:07:26,767 대략 배로 30일 정도 걸렸어요 63 00:07:27,200 --> 00:07:36,667 부산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주최로 성대한 행사를 열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64 00:07:36,667 --> 00:07:47,933 음악대와 모든 정부 인사들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이 함께 맞아주어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65 00:07:48,233 --> 00:07:53,633 그렇게 우리는 한국 부산에 도착을 했는데 66 00:07:53,633 --> 00:07:59,900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1951년 4월 말경이었습니다 67 00:08:01,433 --> 00:08:05,033 언제까지 한국에 계셨나요? 언제 돌아오셨죠? 68 00:08:06,000 --> 00:08:14,900 저는 한 1년 정도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아마 52년 4월인가 5월 경일 겁니다 69 00:08:15,233 --> 00:08:23,333 같은 해로를 이용해서 부산에서 부에나벤투라까지요 70 00:08:23,600 --> 00:08:33,000 중간에 일본항의 사세보라는 곳에서 대략 7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71 00:08:33,533 --> 00:08:45,900 이후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이와 비슷하게 머물렀고요 72 00:08:46,267 --> 00:08:56,667 샌프란시스코에서 부에나벤투라까지 배를 타고 갔고 항구에서 많은 인파가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73 00:08:56,667 --> 00:09:02,733 부에나벤투라에서 카르타헤나까지는 파나마 운하를 거쳐 이동했고 74 00:09:02,733 --> 00:09:07,967 다시 카르타헤나에서 보고타까지 이동했어요 75 00:09:07,967 --> 00:09:14,533 콜롬비아 공군의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76 00:09:14,533 --> 00:09:21,033 도착한 후, 보고타에서 5일 정도 쉬고 사관학교로 돌아갔습니다 77 00:09:21,033 --> 00:09:30,767 그 후에 우리가 참여했던 6·25전쟁이 사실상 종결 되었지요 78 00:09:32,267 --> 00:09:37,267 한국에서 계셨던 장소들이 기억나십니까? 79 00:09:37,467 --> 00:09:45,700 사실 전쟁 중에 있었던 곳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란 다소 어렵습니다 80 00:09:46,033 --> 00:09:52,133 사실상 한국 전체가 전쟁의 격전지였습니다 81 00:09:52,133 --> 00:09:57,333 모든 땅과 바다가 그랬었지요 82 00:09:57,333 --> 00:10:09,133 휴전선 이남, 이북 할 것 없이 모든 곳이 격전지였고 남쪽 북쪽 할 것 없이 한국 모든 곳이 파괴되었습니다 83 00:10:09,133 --> 00:10:21,000 마을이 폭격으로 파괴되고, 다리가 무너졌으며 집도 전부 부서져 전부 잿더미가 되어 버린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84 00:10:21,000 --> 00:10:24,700 당연히 기근도 심했고요 전쟁이라는 것이 85 00:10:24,700 --> 00:10:31,533 우리가 지난달에 어디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요 86 00:10:31,533 --> 00:10:41,300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적군의 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87 00:10:41,300 --> 00:10:46,533 어느 날은 위로, 어느 날은 아래로 어제는 왼쪽으로, 오늘은 오른쪽으로 88 00:10:46,967 --> 00:10:50,433 우리는 끊임없이 승리를 위해 움직였습니다 89 00:10:51,133 --> 00:10:53,733 그렇게 우리는 한국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90 00:10:53,733 --> 00:10:58,000 한반도 전체가 콜롬비아의 가장 큰 주인 볼리바르주 만한 크기인데 91 00:10:58,000 --> 00:11:01,600 한국의 크기는 볼리바르주보다도 작았습니다 92 00:11:01,600 --> 00:11:12,400 따라서 다시 말하지만 한 주 전체가 아니, 그 반도 전체가 전쟁의 무대로 모두 파괴되었어요 93 00:11:12,400 --> 00:11:21,367 전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전쟁은 밤낮으로 이어져 제가 어디 있었는지 알기 힘들었어요 94 00:11:21,767 --> 00:11:25,633 6·25전쟁에 참가하기 전에 그 전쟁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95 00:11:26,967 --> 00:11:31,567 참전 전에는 6·25전쟁에 대해서 조금 아는 정도였어요 96 00:11:31,567 --> 00:11:39,800 왜냐하면 군사학교에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전쟁과 전투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니까요 97 00:11:39,800 --> 00:11:43,600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항시 전투에 대해 공부했고 98 00:11:47,267 --> 00:11:54,467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콜롬비아에서 알게 되었어요 99 00:11:54,467 --> 00:12:01,033 당시에는 TV가 없어서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100 00:12:01,267 --> 00:12:12,600 이에 대한 정부와 국가 차원의 대응은 국민들의 반응과는 매우 달라야 했어요 101 00:12:12,600 --> 00:12:22,633 뉴스와, 군 기관, 특히 군대에서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102 00:12:22,633 --> 00:12:27,000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랐습니다 그런 나라가 있나? 103 00:12:27,000 --> 00:12:32,233 한국에 대해 모르고, 어디 있는지 한국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104 00:12:32,233 --> 00:12:35,267 중요한 것은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105 00:12:35,267 --> 00:12:41,133 뉴스에서 들은 것은 지구 반대편 어딘 가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인데 106 00:12:41,133 --> 00:12:45,600 그건 그들의 일이었고 우리의 일이 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107 00:12:45,767 --> 00:12:48,000 하지만 몇 달 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08 00:12:48,633 --> 00:12:56,833 유엔이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기구인 만큼 평화의 기능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지요 109 00:12:56,833 --> 00:13:07,533 남한이 북한에 의해 공격당한 것을 보았고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110 00:13:08,033 --> 00:13:17,967 그래서 남한과 남한 사람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 모든 것이 붕괴되어 돌멩이 하나조차 성한 것이 없었습니다 111 00:13:17,967 --> 00:13:22,200 독재국가에 의해 그들의 도시와 마을, 다리, 도로 등 112 00:13:22,533 --> 00:13:31,467 모든 것들이 즉,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가 점령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113 00:13:32,033 --> 00:13:36,500 제2차 세계대전의 평화협정 결과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114 00:13:36,500 --> 00:13:40,567 그 협정이 불러온 큰 결과들 중 하나였지요 115 00:13:40,567 --> 00:13:45,567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맺은 평화협정이 야기한 것 말입니다 116 00:13:49,367 --> 00:14:02,833 상황이 심각해지자 콜롬비아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유엔의 요청에 응답하여 부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117 00:14:02,933 --> 00:14:04,533 콜롬비아 부대를요 118 00:14:04,533 --> 00:14:13,967 그래서 상황이 바뀌었고 우리 군과 관계가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119 00:14:13,967 --> 00:14:20,633 이후 콜롬비아가 콜롬비아 대대를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120 00:14:20,633 --> 00:14:26,167 또한 이 부대는 현재까지도 콜롬비아군 부대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121 00:14:26,167 --> 00:14:34,200 그 부대가 유엔 부대의 일부가 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122 00:14:34,200 --> 00:14:41,300 북한의 군대에 의해 한국의 자유와 주권은 완전히 파괴되었어요 123 00:14:41,300 --> 00:14:50,600 전에도 말했듯이 중국군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고 이는 남한 국민의 자유를 파괴했습니다 124 00:14:51,833 --> 00:14:57,433 6·25전쟁에 참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125 00:14:57,433 --> 00:15:00,600 처음 반응은 좋지 않았어요 126 00:15:01,267 --> 00:15:03,867 아버지께서 하신 말은, 비속어를 써서 죄송합니다만 127 00:15:03,867 --> 00:15:09,967 "이 망할 놈아, 그런 알지도 못하는 한국에 간다고? 언제, 도대체 왜 간다는 거냐?"라고 하셨어요 128 00:15:10,367 --> 00:15:18,567 저는 "아버지, 전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고타 부대 소속이니까요" 하고 대답했어요 129 00:15:18,867 --> 00:15:20,900 아버지는 "그래, 알고 있다 130 00:15:20,900 --> 00:15:25,733 국가에서 조직한 콜롬비아 대대의 지휘관과 같은 인물이 지휘하고 있는 그 부대지"라고 말씀하셨어요 131 00:15:26,133 --> 00:15:35,767 저는 "그는 지휘관으로서 우리에게 그와 함께 전쟁에 참가하고자 하는 자는 앞으로 나오라고 했고 132 00:15:35,767 --> 00:15:42,500 나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저도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요"라고 대답했고 133 00:15:43,200 --> 00:15:49,300 2달 후에 한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134 00:15:49,300 --> 00:15:53,867 콜롬비아 부대의 일원으로 한국의 평화를 위해 싸우러 간 것이었습니다 135 00:15:57,233 --> 00:16:07,033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부산항에 도착한 때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136 00:16:07,400 --> 00:16:12,433 처음에 제가 받았던 느낌은요 137 00:16:12,433 --> 00:16:21,467 우리가 도착했던 부산항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환영단이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138 00:16:22,733 --> 00:16:31,800 이승만 대통령의 주재로 정부 인사들과 엄청난 규모의 한국인들이 우리를 환대해 주었어요 139 00:16:31,800 --> 00:16:44,867 그들은 우리를 향해 애국가를 불렀고 우리를 정말이지 성대하게 환대해 주었고, 눈물도 흘렸어요 140 00:16:44,867 --> 00:16:55,367 거기서부터 두 시간 정도 버스와 트럭을 타고 부산 근처 유엔 훈련소까지 밖을 바라보며 이동했어요 141 00:16:55,933 --> 00:16:57,867 그 모습은 정말 슬픈 광경이었어요! 142 00:16:57,867 --> 00:17:05,800 배고픔에, 비참한 모습들! 폐허가 된 장소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어요 143 00:17:05,800 --> 00:17:13,000 도착했을 때는 많은 양의 음식들이 보였어요 144 00:17:13,300 --> 00:17:18,300 또한 한국인들을 위해 싸우러 온 우리에게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145 00:17:19,467 --> 00:17:23,033 그들의 자유는 북한에 의해 파괴되었고 146 00:17:23,033 --> 00:17:30,367 말했듯이 슬픔과, 눈물, 미망인, 배고픔 비참함이 온 천지에 가득했습니다 147 00:17:30,367 --> 00:17:35,567 완전히 잿더미, 전부 잿더미 상태였어요 148 00:17:37,467 --> 00:17:44,533 한국에 계셨을 때 콜롬비아 대대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149 00:17:44,533 --> 00:17:49,667 음식이나 잠자리, 의복과 날씨는 어떠셨는지요 150 00:17:50,333 --> 00:17:55,133 대략적으로 말씀드리자면요 151 00:17:55,133 --> 00:18:06,300 한국에서의 삶은 비통한 슬픔과 전쟁 외에도 많은 것들을 느꼈어요 152 00:18:08,967 --> 00:18:19,633 우리는 미군 부대의 원조와 지원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세계 1위의 강대국이었으니까요 153 00:18:20,067 --> 00:18:27,433 미군은 참전했던 22개국 모든 부대에게 지원을 했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154 00:18:27,433 --> 00:18:31,033 한국도 마찬가지였고요 155 00:18:31,033 --> 00:18:39,200 좋은 지원과 보급품들을 받았고 미국 군인들과 같이 좋은 환경에서 지냈기 때문에 156 00:18:39,200 --> 00:18:41,767 옷도 잘 입고, 먹는 것도 잘 먹었습니다 157 00:18:42,133 --> 00:18:46,100 잠도 잘 자고, 전반적으로 좋았어요 158 00:18:47,033 --> 00:18:56,100 의료 기술도 훌륭했고, 부대와 병원도 위생적이었어요 159 00:18:56,100 --> 00:19:00,700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윤리적인 환경이었어요 160 00:19:00,700 --> 00:19:05,933 먹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담배까지도 부족한 적이 없었어요 161 00:19:05,933 --> 00:19:07,200 그게 기억이 많이 나는데요 162 00:19:07,200 --> 00:19:11,733 "난 카멜을 피운다" 하면 카멜을 주고 "난 루키를 피운다" 하면 루키를 주고 163 00:19:11,733 --> 00:19:15,667 난 "체스터를 피운다" 하면 그것을 주었어요 164 00:19:15,667 --> 00:19:20,600 그 당시 있었던 카밀, 루키, 체스터는 유명한 메이커였어요 165 00:19:20,600 --> 00:19:23,500 다른 것도 있었네요 166 00:19:28,600 --> 00:19:33,767 콩을 먹고 싶다고 하면 콩을 주고 치킨을 원하면 치킨을 주었어요 167 00:19:33,767 --> 00:19:38,467 그게 바로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168 00:19:38,467 --> 00:19:45,533 22개 참전국가의 부대들에게 그 힘이 반영된 것이고요 169 00:19:45,533 --> 00:19:51,800 우리는 결국은 미군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170 00:19:51,800 --> 00:19:55,933 전쟁기간 내내 콜롬비아 대대는 미군 배속이었어요 171 00:19:55,933 --> 00:20:06,467 양쪽으로 나눠진 두 체제의 한 편에 속해서 싸웠는데 언제나 미국의 편에 서서 싸웠지요 172 00:20:08,500 --> 00:20:13,933 전쟁에 관해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셨나요? 173 00:20:13,933 --> 00:20:18,333 네, 전 편지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어요 174 00:20:20,467 --> 00:20:32,467 그래서 제 가족들에게도 많이 쓰고 제 애인인 루시아에게도 많이 썼죠 175 00:20:33,200 --> 00:20:38,267 편지엔 항상 답장이 왔어요 176 00:20:38,267 --> 00:20:46,200 모든 편지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답장의 아주 일부만 보관하고 있어요 177 00:20:46,200 --> 00:20:52,300 루시아도 편지를 일부 보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여자 형제 중 장녀인 에피헤니아도 간직하고 있고요 178 00:20:52,300 --> 00:20:56,133 주로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 제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을 당시 기억들을 썼어요 179 00:20:56,433 --> 00:21:03,833 그것들을 간직하다가, 누나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편지들을 아마 제 조카들에게 줬을 겁니다 180 00:21:04,167 --> 00:21:08,600 편지는 도착하는 데 30일 정도 걸렸어요 181 00:21:09,367 --> 00:21:17,533 30일 정도 걸렸기 때문에 답장을 받을 때까지도 30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182 00:21:17,533 --> 00:21:24,967 이런 것에 대해서도 미군들은 굉장히 정확했었고 또한 윤리적인 측면을 많이 강조했었어요 183 00:21:25,233 --> 00:21:32,300 어떤 상황에도 편지는 중단되지 않았어요 184 00:21:32,300 --> 00:21:44,533 심지어 쓸 줄 모르는 군인이 있다면 미군이 도와줬어요 185 00:21:45,067 --> 00:21:54,333 그곳으로 와서, 기지든, 벙커든 어떤 말을 쓰고 싶은지 말하라고 해서 그 미군이 써줬지요 186 00:21:55,300 --> 00:22:00,467 스페인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편지를 써주었어요 187 00:22:00,467 --> 00:22:03,300 그 병사가 표식을 남겨서 마치 그 사람이 쓴 것처럼 해 주었고 188 00:22:03,300 --> 00:22:08,633 특히 아들이 어머니께 쓰는 편지는 절대 끊기는 경우가 없었어요 189 00:22:09,833 --> 00:22:16,733 어떤 이야기를 쓰셨고, 가족들이 어떤 답장을 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190 00:22:17,767 --> 00:22:28,700 한국에서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에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 어려운 점 등을 담았었습니다 191 00:22:29,133 --> 00:22:32,600 콜롬비아에서 한국으로 보내온 편지에는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192 00:22:32,600 --> 00:22:36,100 콜롬비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 있었어요 193 00:22:36,100 --> 00:22:42,700 왜냐하면 당시에 콜롬비아도 내부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194 00:22:43,000 --> 00:22:47,833 그야말로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195 00:22:47,833 --> 00:22:53,700 즉, 형제들끼리,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간의 싸움이었습니다 196 00:22:54,500 --> 00:23:02,133 마을과 농장, 도시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197 00:23:02,133 --> 00:23:07,300 그래서 동족상잔의 엄청난 전쟁이었어요 198 00:23:07,300 --> 00:23:16,167 이 밖에도 편지에 가족들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쓰여 있었어요 199 00:23:17,500 --> 00:23:19,433 감사합니다 200 00:23:20,900 --> 00:23:29,767 선생님께서 계셨던 부대가 외국 부대나 한국 부대와 관계가 어땠는지 기억하시나요? 201 00:23:30,233 --> 00:23:35,233 외국 부대와 관계라 하면 거의 미국과의 관계였습니다 202 00:23:35,233 --> 00:23:42,567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미군 배속에서 그들의 일부로서 싸웠거든요 203 00:23:42,567 --> 00:23:53,733 콜롬비아군은 한국에 있을 때 항상 미군에 속해 있었고 그 부대가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4 00:23:53,733 --> 00:24:01,967 그래서 매일을 미군과 함께 지냈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약간의 영어도 배우게 되었어요 205 00:24:02,300 --> 00:24:15,567 왜냐하면 모든 음료와 음식이 미국 것이었고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부대들에 보급되는 것이 미국 것이었어요 206 00:24:15,567 --> 00:24:20,100 무기와 군수품, 장비 등 모든 것들이 그랬습니다 207 00:24:21,133 --> 00:24:28,900 미국이 6·25전쟁에서 싸우는 모든 부대들을 책임지고 있었고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8 00:24:31,067 --> 00:24:38,633 6·25전쟁 참전기간 동안 평화롭거나 보람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209 00:24:40,700 --> 00:24:45,467 그 이전의 일들도 포함해서 질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210 00:24:45,700 --> 00:24:53,300 제가 한국에서 처음 훈련을 받고 나서 바로 첫 출전식을 했을 때였습니다 211 00:24:53,300 --> 00:24:58,500 괜찮으시면 제가 나중에 더 언급을 할 텐데요 212 00:24:58,500 --> 00:25:05,233 거기에는 3명의 소위들이 출전했었어요 213 00:25:05,233 --> 00:25:15,333 우리는 서울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방문 때 그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14 00:25:15,333 --> 00:25:23,533 행사는 부서진 낡은 책상이 있는 완전히 폐허가 된 어떤 궁에서 진행되었어요 215 00:25:23,533 --> 00:25:31,133 그때 대통령과 그 수행단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는데 그것이 폴라니아 대령과 그 수행원들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16 00:25:31,133 --> 00:25:40,200 그들과 3명의 소위들이 출전식에 참가하였고 우리를 굉장히 잘 맞아주었습니다 217 00:25:40,533 --> 00:25:45,733 우리는 매우 영광이었고,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218 00:25:46,367 --> 00:25:50,500 아주 특별하게도 그때 저는 폴라니아 대령과 함께 있었습니다 219 00:25:50,500 --> 00:25:54,733 레마 중위가 다른 한 명이었고요 220 00:25:54,733 --> 00:25:57,400 궁 방문을 마치고 나가면서 상사가 그에게 말하길 221 00:25:57,933 --> 00:26:01,267 "대령님, 그들이 지프를 가져갔는데 어떻게 지프를 가져갈 수 있나요?" 222 00:26:01,267 --> 00:26:04,867 "내게 다른 것을 주었다" "어떤 것을요?" 223 00:26:04,867 --> 00:26:09,800 "차 문서를 보더니 그것을 가져가고 다른 것을 주었어" 224 00:26:09,800 --> 00:26:15,267 "어떤 것을 주었나요?" "더 이상은 모르겠다" 225 00:26:15,267 --> 00:26:23,233 하지만 폴라니아 대령은 말하길 "왜 지프를 가져갔을까? 상의도 없이 다른 걸 주고" 226 00:26:23,233 --> 00:26:25,700 그에 대한 대답이 잊을 수가 없어요 227 00:26:25,700 --> 00:26:34,833 "대령님, 그 지프는 수명을 다했어요 주행거리로 볼 때 하루면 끝이에요 228 00:26:34,833 --> 00:26:42,333 수명을 다하기까지 하루가 남았는데 대령님은 그러기까지 아직도 45년이 남았습니다" 229 00:26:45,700 --> 00:26:51,000 최전선에서의 경험을 조금 이야기해 주세요 230 00:26:52,033 --> 00:26:59,733 6·25전쟁 참전 중 가장 위험하고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231 00:27:01,267 --> 00:27:11,900 6·25전쟁 기간 동안은 매 순간 밤낮없이 동서남북 모든 곳이 전쟁터였어요 232 00:27:11,900 --> 00:27:16,800 이 엄청난 전쟁이 일어난 곳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233 00:27:16,800 --> 00:27:30,600 6·25전쟁은 북한과 남한 사이에 일어났고 콜롬비아 부대가 참여했던 가장 큰 작전은 바로 노매드작전이었습니다 234 00:27:32,167 --> 00:27:42,067 4월달에 이루어진, 정확하게는 4월 내내 진행되었던 춘계 공세라고도 불렀습니다 235 00:27:42,500 --> 00:27:49,500 우리는 굉장히 추운 겨울도 보냈어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끔찍한 날씨였습니다 236 00:27:49,833 --> 00:27:54,467 콜롬비아 전 대대가 참여했던 그 작전에는 모든 유엔 부대가 참여했고 237 00:27:54,467 --> 00:27:58,333 해상과 육지 모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38 00:27:58,333 --> 00:28:12,200 정말로 끔찍한 전쟁이었습니다 남북 할 것 없이 완전히 초토화되었습니다 239 00:28:12,200 --> 00:28:18,433 맥아더 장군은 남한의 적을 물리치고 휴전선 이북까지 진격하도록 240 00:28:18,433 --> 00:28:24,000 모든 부대에 명령했고 이를 이뤄냈습니다 241 00:28:24,000 --> 00:28:33,533 휴전선은 남북한 사이의 군사분계선으로 평화협정이 맺어진 뒤로 한국은 그것을 기준으로 분단되었습니다 242 00:28:33,533 --> 00:28:42,800 왜냐하면 평화협정 체결 당시 동맹국들이 그것을 원했고 그래서 양측 사이에 휴전선이 그어지게 된 것입니다 243 00:28:43,167 --> 00:28:49,600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될 만큼 엄청난 공격이 계속되었습니다 244 00:28:49,600 --> 00:28:59,000 우리 측에서도 이미 육군과 전투기 대포까지 동원되었고요, 정말 끔찍했습니다 245 00:29:00,533 --> 00:29:08,533 잠은 밤에 잠깐 몇 분씩 앉은 상태에서 다리 사이에 총을 놓고 잤었어요 246 00:29:08,533 --> 00:29:20,767 여기저기에서 적과 대치를 하다가 한두 시간 정도 소강상태로 있을 때 휴식을 취했던 겁니다 247 00:29:20,767 --> 00:29:27,467 한국군은 침투작전을 많이 펼쳤는데 특히 후방 공격을 위한 침투를 많이 했습니다 248 00:29:27,467 --> 00:29:35,100 작전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콜롬비아군도 그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249 00:29:37,100 --> 00:29:45,067 그것이 6·25전쟁 중 일어난 모든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인 노매드작전이었습니다 250 00:29:45,967 --> 00:29:51,933 평화협상 도중에는 완전히 방어태세의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251 00:29:51,933 --> 00:29:58,267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각자의 진영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252 00:29:58,267 --> 00:30:02,467 엄청난 규모의 공세 작전으로 북한군을 북쪽으로 퇴각하게 만들고 253 00:30:02,467 --> 00:30:05,700 모든 동맹군을 휴전선 이남으로 배치하였습니다 254 00:30:06,267 --> 00:30:13,033 따라서 완전히 방어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255 00:30:13,033 --> 00:30:26,033 이러한 상황이 1년 정도 지속되었고 53년 7월 정전협정이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256 00:30:26,467 --> 00:30:38,833 방어태세 상황에서도 모든 군이 육지와 바다에서 매일같이 전투작전을 벌였습니다 257 00:30:39,200 --> 00:30:50,600 그 전투에 우리는 거의 매주마다 전투에 참여했고 거기에는 필리핀인, 북한인, 미국인, 모두가 있었어요 258 00:30:50,600 --> 00:30:55,033 그 전투의 이유에 대해서는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259 00:30:55,033 --> 00:31:00,033 방어태세 상황에서는 작전이 밤낮으로 자주 이루어져야 하는데요 260 00:31:00,467 --> 00:31:15,200 따라서 그 추계 대공격작전은 제게 총검으로 무장한 적을 상대한 첫 번째 작전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261 00:31:16,100 --> 00:31:25,133 앙가리타 대위는 콜롬비아군 중 세 번째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어요 262 00:31:25,467 --> 00:31:29,200 저는 두 번째 부대 소속이었고요 263 00:31:29,200 --> 00:31:38,567 첫 번째 부대는 베스케스 대위가 지휘하고 있었는데 밤중에 20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었습니다 264 00:31:38,767 --> 00:31:49,267 앙가리타 대위가 말하기를 '나는 절대로 슬리핑백 즉 스페인어로는 침낭을 사용하라고 명령한 적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265 00:31:49,800 --> 00:31:54,467 침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퍼로 잠글 수가 있는 구조였어요 266 00:31:54,467 --> 00:31:59,200 정말 졸리고, 춥고, 피곤한 상태였지요 267 00:31:59,200 --> 00:32:08,667 하지만 앙가리타 대위 부대의 많은 군인들은 그 침낭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268 00:32:08,667 --> 00:32:15,967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퍼를 채운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269 00:32:15,967 --> 00:32:21,667 새벽 2~3시에 북한 정찰대가 들이닥쳤습니다 270 00:32:21,667 --> 00:32:28,667 처음 사망한 군인들은 앙가리타 대위 부대 소속의 10~12명이었습니다 271 00:32:28,667 --> 00:32:34,667 앙가리타 대위가 오른편 바스케스 대위가 왼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272 00:32:34,667 --> 00:32:41,700 그 상황이 벌어지면서 북한군이 왔다는 사실을 전 부대가 알게 되었고 273 00:32:41,700 --> 00:32:48,367 저는 제 오른편에서 공격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274 00:32:48,367 --> 00:32:53,633 바스케스 대위는 왼쪽에서 공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75 00:32:53,633 --> 00:32:58,300 앙가리타의 부대원들은 왜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276 00:32:59,100 --> 00:33:04,667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공격방법은 착검한 칼로 행해지는 공격인데요 277 00:33:04,667 --> 00:33:08,333 총처럼 쏘는 것이 아닙니다 278 00:33:08,333 --> 00:33:17,467 다행히도 동양인들에게는 이렇게 칼에 맞아 죽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79 00:33:17,467 --> 00:33:24,067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280 00:33:24,067 --> 00:33:30,367 그래서 그들은 착검한 칼에 겁을 먹었고 대치하기 전에 도망갔습니다 281 00:33:30,367 --> 00:33:37,633 그들 스스로도 그런 믿음 때문에 대검뿐만 아니라 식칼조차도 절대 소지하지 않았습니다 282 00:33:37,633 --> 00:33:48,167 하지만 소총에 대검을 달고 무장한 우리 부대를 보자 그들은 달아나며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283 00:33:48,167 --> 00:33:56,500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앙가리타 대위의 부대가 한 40명 정도 되었는데 이들의 반정도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284 00:33:56,500 --> 00:34:02,667 이들이 전멸되기 전에 말이에요 285 00:34:02,667 --> 00:34:06,367 그 상황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끔찍했어요 286 00:34:06,367 --> 00:34:15,100 그때가 바로 51년 4월달 추계 공격이 있었던 밤이었어요 287 00:34:16,600 --> 00:34:26,167 정말 위험했던 상황은 첫 번째 출전한 전투였어요 288 00:34:26,400 --> 00:34:32,533 그 전투는 콜롬비아군 전체가 전쟁에 투입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289 00:34:32,533 --> 00:34:39,200 전쟁의 규율에 따라서 새로 투입되는 부대는 모두 평가를 받습니다 290 00:34:39,200 --> 00:34:47,633 그 이유는 전쟁에 투입될 수 있을 만큼 이 부대가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만약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훈련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291 00:34:47,633 --> 00:34:52,667 싸울 줄 모르면 전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92 00:34:52,667 --> 00:35:03,167 그래서 전 세계 군대에게 있어 첫 전투에 출전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293 00:35:04,000 --> 00:35:08,133 일반적으로 이는 명령이 아닌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294 00:35:08,133 --> 00:35:09,867 어떻게 하냐고요? 295 00:35:10,233 --> 00:35:18,300 지휘관이 대위 한 명을 먼저 선택하는데 바로 발렌시아 장군이었어요 296 00:35:18,667 --> 00:35:22,100 최근에 돌아가신 분이에요 굉장히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297 00:35:22,100 --> 00:35:27,767 그러고 나서 3명의 소위를 임의로 선정했는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298 00:35:28,033 --> 00:35:35,200 레마 대위가 첫 번째, 그의 형제인 다른 대위가 두 번째 아르게요 대위가 세 번째 부대를 맡았습니다 299 00:35:35,900 --> 00:35:45,033 선정된 이들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첫 번째 출전 전투에서 행운이 찾아왔어요 300 00:35:45,033 --> 00:35:52,767 항상 각 국가별로 조국과 관련된 날짜를 전투 날짜로 정해주는데 301 00:35:52,767 --> 00:35:56,700 콜롬비아는 8월 7일로 정해졌지요 302 00:35:58,467 --> 00:36:04,633 8월 7일이 되어 새벽 3~4시에 적진으로 향했어요 303 00:36:04,633 --> 00:36:11,300 왜냐하면 이것은 적군들에 대항하는 실제 작전이었기 때문이었지요 304 00:36:11,567 --> 00:36:22,967 우리가 잘 싸우는지 확인하기 위한 공격이었고 아침 6시에 공격이 시작됐어요 305 00:36:22,967 --> 00:36:31,767 적군과 맞서게 된 3개 부대를 헬리콥터에서뿐만 아니라 고지에서도 지켜봤어요 306 00:36:31,767 --> 00:36:35,233 한국은 높은 산이 많은 국가이니까요 307 00:36:36,333 --> 00:36:47,933 리지웨이 장군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높은 곳에서 지켜보며 최종 점수를 매기고 있었지요 308 00:36:48,867 --> 00:36:54,367 그 전투는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계속되었는데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는 있었어요 309 00:36:54,367 --> 00:37:02,933 저는 다치지 않았지만 세라노 부대와 레마 부대에서는 2~3명 정도의 부상자가 발생했어요 310 00:37:04,200 --> 00:37:13,533 1시간 반 정도 지나서 상부에서 작전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311 00:37:14,100 --> 00:37:27,367 그리고 15일 후에 전쟁에 투입된다는 결과를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노매드작전입니다 312 00:37:27,367 --> 00:37:33,833 우리 부대를 전쟁에 투입한다는 결정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313 00:37:33,833 --> 00:37:41,400 이 3명의 소위가 이끄는 3개 부대 121명의 군인들의 전투능력이 증명된 셈이니까요 314 00:37:42,367 --> 00:37:49,300 세 번째로 꼽는 전투는 이전에 언급했던 1년 이상 지속되던 방어태세의 상황입니다 315 00:37:49,300 --> 00:37:55,767 그 상황은 주요 전투선이라 불리는 지점에서 벌어진 것인데요 316 00:37:55,767 --> 00:38:04,400 휴전선을 따라 바다까지 이어진 그 선에서는 매주, 15일마다 전투 작전을 벌였습니다 317 00:38:04,800 --> 00:38:12,600 그 작전은 소대 수준의 소규모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가끔은 대규모 전투 수준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318 00:38:12,733 --> 00:38:19,033 작전은 우선 적진의 거의 800m, 1km 전방까지 잠입합니다 319 00:38:19,033 --> 00:38:26,900 그래서 무기가 보강이 되어 있는지, 적군이 이동했는지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살폈습니다 320 00:38:27,500 --> 00:38:33,533 적군들도 그러한 작전을 펼쳤지만 그들은 주로 밤에 행동했어요 321 00:38:33,533 --> 00:38:39,500 동양인들은 야간에 움직이는 것에 두각을 나타냈어요 322 00:38:39,500 --> 00:38:45,467 반면에 우리는 주로 낮 시간에 싸우는 것에 더 강했습니다 밤에도 싸우긴 하지만 밤에는 주로 쉬어야 했지요 323 00:38:45,467 --> 00:38:52,967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절반의 인원은 쉬고 나머지 인원은 대기상태로 적을 경계했습니다 324 00:38:53,233 --> 00:39:02,767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적군이 퇴각했는지, 더 많이 왔는지 기관총이 더 있는지 등을 살폈습니다 325 00:39:02,767 --> 00:39:13,800 대포가 더 있는지, 탱크가 더 있는지 등 적들의 행동을 말이에요 326 00:39:13,800 --> 00:39:20,433 이 작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공격을 할 수 없어요 327 00:39:20,433 --> 00:39:25,900 마치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릴 때처럼 말입니다 328 00:39:25,900 --> 00:39:30,400 즉, 방어전술이 있는지 살피기 위함이고 329 00:39:30,400 --> 00:39:38,367 권투선수가 상대방에게 주먹을 날릴 때 전술이 필요한 것처럼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30 00:39:38,367 --> 00:39:44,700 그래서 밤낮으로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331 00:39:45,467 --> 00:39:52,067 참가했던 전투 중 가장 중요했던 전투는 어떤 것이었나요? 332 00:39:52,700 --> 00:40:05,967 제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명예롭다고 여겼던 작전은 바로 1952년 1월 2일에 실시한 작전이었어요 333 00:40:07,033 --> 00:40:16,700 그날 직전인 12월 31일에 사망한 군인과 토레스 중위의 시신을 수습해 오는 작전이었어요 334 00:40:16,700 --> 00:40:27,367 그들은 적군 부대에 맞서 싸우다가 사망했고 적진에 남겨져 있었어요 335 00:40:27,367 --> 00:40:34,467 지휘부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기에 사망한 군인들을 데려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습니다 336 00:40:35,267 --> 00:40:36,933 하지만 작전은 진행되었고 337 00:40:37,200 --> 00:40:42,967 제가 그 두 명의 콜롬비아 사망군인들을 구출하는 작전의 지휘관로 선발되었어요 338 00:40:44,200 --> 00:40:56,867 당시 발렌시아 토바로 대위, 후에 장군이 되고 최근에 돌아가신 그분께 조언을 구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339 00:40:57,067 --> 00:41:02,833 작전 전날, 1월 1일에 아주 높은 지대로 올라가 340 00:41:02,833 --> 00:41:11,667 그의 도움을 받아 새벽에 작전을 개시하는 것으로 계획을 준비했어요 341 00:41:11,900 --> 00:41:22,733 새벽 한 시 반에서 두 시경부터 다섯 시에서 다섯 시 반까지 완전히 하얗게 위장을 하고 있었어요 342 00:41:23,333 --> 00:41:34,333 하얀색으로 무장한 이유는 전쟁 지역에 약 80cm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343 00:41:34,333 --> 00:41:37,800 한국 전체가요, 겨울은 정말 굉장했어요 344 00:41:39,000 --> 00:41:46,200 우리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아닌 포복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345 00:41:46,200 --> 00:41:54,933 완벽하게 포복으로 이동해야 했고 이렇게 포복으로 이동하는 것은 군인의 삶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요 346 00:41:55,900 --> 00:41:58,967 또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어요 347 00:41:59,567 --> 00:42:03,400 오직 수신호만 사용했어요 348 00:42:03,400 --> 00:42:08,000 무전기로도 우리의 움직임을 들킬 수 있었기 때문에 무전기도 없이 이동했어요 349 00:42:08,000 --> 00:42:13,967 중국인들은 밤에 잘 싸웠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은 그렇지 않았어요 350 00:42:13,967 --> 00:42:21,567 그래서 그 시간에는 완전히 골아 떨어졌을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351 00:42:21,567 --> 00:42:34,667 그 가정으로 인해 하늘에 감사하게도 육성과 무전기 없이 수신호만으로 들키지 않고 쉽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352 00:42:34,667 --> 00:42:41,833 기어가는 동안 우리는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353 00:42:41,833 --> 00:42:50,267 두 적진 간 경계선의 약 800m 간격을 둔 지점에 우리는 도착했습니다 354 00:42:50,933 --> 00:42:54,800 우리는 지뢰탐지기를 가져갔었는데 355 00:42:54,800 --> 00:43:02,933 적군들을 그 경계선 사이에서 사살하기 위해서 설치했던 지뢰들 때문이었지요 356 00:43:02,933 --> 00:43:13,400 경계선 사이에 지뢰를 설치해 두어 적군이 그쪽에 오면 사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357 00:43:13,400 --> 00:43:17,367 그래서 우리는 지뢰탐지기를 가져갔고 358 00:43:17,767 --> 00:43:23,100 그 탐지기를 가지고 있던 군인 중 한 명이 두 명의 죽은 군인들을 발견했어요 359 00:43:23,100 --> 00:43:27,167 15 ~ 2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두 명이 있었고 360 00:43:27,167 --> 00:43:32,467 그 주변에 탐지기를 작동시킨 결과 그곳에 지뢰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361 00:43:32,467 --> 00:43:34,767 그때가 새벽 3시 반경이었습니다 362 00:43:34,767 --> 00:43:44,433 어깨에 그 건장한 두 명의 군인을 메고 포복으로 우리가 떠나왔던 같은 도랑을 통과했습니다 363 00:43:44,433 --> 00:43:53,867 대략 5시 반 정도 되는 시간에 아군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364 00:43:53,867 --> 00:44:00,400 총 한 발 쏘지 않고 우리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지요 365 00:44:01,067 --> 00:44:09,200 만약 총을 쐈다면 적군은 사격을 해 우리를 죽였을 겁니다 366 00:44:09,200 --> 00:44:16,467 그래서 우리는 도착할 때까지 죽은 듯 조용히 있었어요 367 00:44:17,700 --> 00:44:24,967 6·25전쟁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 있으신가요? 368 00:44:26,100 --> 00:44:38,700 콜롬비아와 유엔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가하게 되어 3가지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369 00:44:39,833 --> 00:44:50,733 우선, 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다는 사실로 유엔에서 수여하는 메달을 받았습니다 370 00:44:51,200 --> 00:45:00,833 한국 정부로부터는 동성훈장 콜롬비아 정부로부터도 동성훈장을 받았습니다 371 00:45:00,833 --> 00:45:08,967 모두 6·25전쟁 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받게 된 훈장들입니다 372 00:45:09,900 --> 00:45:16,200 부대 지휘관께서 저를 위해 신청한 한 개가 빠졌네요 373 00:45:16,200 --> 00:45:27,400 그것은 콜롬비아 2명의 군인을 구출한 작전을 수행한 것에 대한 일종의 포상으로 준비된 것이었는데요 374 00:45:27,700 --> 00:45:34,867 폴라니아 대령님께서 나를 위해 보야카 십자훈장을 신청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75 00:45:34,867 --> 00:45:39,367 그것은 전장에서의 내 성과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376 00:45:39,367 --> 00:45:46,500 하지만 그 신청은 콜롬비아에서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377 00:45:46,500 --> 00:45:56,567 어쨌든 콜롬비아군이 두 명의 군인을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한 저의 공로를 인정하여 보야카 십자훈장을 신청했습니다 378 00:45:56,567 --> 00:46:02,400 하지만 허가되지 않아 내게 수여되지는 않았습니다 379 00:46:02,400 --> 00:46:08,067 그것까지 합한다면 4개이겠지만 현재는 제가 말씀드린 3개가 전부입니다 380 00:46:08,833 --> 00:46:13,533 선생님은 참전하시고 급여를 받으셨나요? 381 00:46:13,900 --> 00:46:19,033 네, 6·25전쟁에 참전해도 콜롬비아에서 받던 같은 급여를 받았어요 382 00:46:19,033 --> 00:46:24,033 소위 계급에 해당하는 300페소를요 383 00:46:24,033 --> 00:46:30,933 우리는 6·25전쟁 기간 동안에는 급여를 미국 달러로 받았어요 384 00:46:32,433 --> 00:46:37,600 급여는 일반적으로 부대 혹은 부대 회계담당 쪽으로 예금이 되어 있었어요 385 00:46:37,600 --> 00:46:41,600 왜냐하면 돈을 쓸 곳이 없었거든요 386 00:46:41,600 --> 00:46:45,200 우리는 돈을 쓸 일이 없었어요 387 00:46:45,200 --> 00:46:52,167 담배, 맥주, 음식, 신문, 모든 것이 공짜였기 때문에 그랬지요 388 00:46:52,167 --> 00:46:59,433 참전군인이 유일하게 돈을 쓸 곳이 있긴 했네요 389 00:46:59,433 --> 00:47:05,733 우리를 5일 동안 도쿄에 보내줄 때였어요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하게 5일 동안요 390 00:47:05,733 --> 00:47:07,133 휴식과 회복이라는 의미의 391 00:47:07,133 --> 00:47:12,133 영어로 줄여서 알앤알 (R&R, Rest and Recreation) 이라고 부르는 휴가였지요 392 00:47:12,133 --> 00:47:19,300 따라서 우리는 도쿄로 5일간의 휴가를 갈 때 각자 쓸 돈을 가져가야 했어요 393 00:47:19,467 --> 00:47:27,067 이런 식으로 돈을 썼는데, 다 쓴 건 아니고 일부를 부대 회계부에 남겨 두었어요 394 00:47:27,067 --> 00:47:33,767 왜냐하면 콜롬비아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합의하여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395 00:47:33,767 --> 00:47:42,633 전쟁이 끝나고 귀국을 할 때, 미국산 최신형 자동차를 1대씩 구입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거든요 396 00:47:42,633 --> 00:47:47,167 포드, 쉐보레 등 좋은 브랜드였어요 397 00:47:47,167 --> 00:47:49,067 그리고 전 그것을 이뤘지요 398 00:47:49,067 --> 00:47:52,433 그래서 우리는 차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았어요 399 00:47:52,433 --> 00:47:59,300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을 쓸 곳도 없었고 또 콜롬비아에 새 차를 갖고 가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400 00:47:59,300 --> 00:48:07,733 그 생각을 매일 되새기면서 노력했고 결국 이를 성취하여 콜롬비아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401 00:48:07,733 --> 00:48:15,767 몇 달이 지나고 부에나벤투라 항구로 배편을 통해 구입한 차가 도착했어요 402 00:48:15,767 --> 00:48:21,500 그리하여 일주일 뒤에 모든 참전군인들은 보고타에서 차를 받았어요 403 00:48:21,500 --> 00:48:26,867 최신형 차를 받게 되었지요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여 보상을 받았고 목표를 이뤄냈지요 404 00:48:26,867 --> 00:48:33,867 전쟁이 끝난 뒤 목표했던 최신형 자동차를 가지게 되었단 것이죠 405 00:48:33,867 --> 00:48:35,300 어떤 차를 사셨어요? 406 00:48:35,300 --> 00:48:40,167 저는 흰색의 쿠페 2 도어 프리미엄 모델을 구입했어요 407 00:48:40,167 --> 00:48:41,933 그 차를 아주 좋아했어요 408 00:48:41,933 --> 00:48:49,700 루시아와 저는 그 차를 타고 보고타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애용했어요 409 00:48:49,700 --> 00:48:59,800 그녀도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는 못했고 몇 달 뒤 이사를 가야 했어요 410 00:48:59,800 --> 00:49:06,500 군 명령에 따라서 바랑퀴야(Barranquilla)의 아리뇨 부대로 배치되었고 411 00:49:06,500 --> 00:49:09,967 저를 데리러 온다고 했거든요 412 00:49:09,967 --> 00:49:14,167 그 차는 보고타에서 팔았고 그 돈을 가지고 바랑퀴야로 이동했습니다 413 00:49:14,167 --> 00:49:22,900 저는 제가 근무한 거의 87년 동안 제 돈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돈 관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요 414 00:49:24,833 --> 00:49:26,367 감사합니다 415 00:49:27,433 --> 00:49:36,300 선생님께서 6·25전쟁 동안의 복무를 마치고 콜롬비아로 귀국하실 때는 어땠나요? 416 00:49:36,300 --> 00:49:42,533 그곳에 남아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과 기대를 갖고 계셨나요? 417 00:49:43,567 --> 00:49:51,333 미국의 큰 원조가 있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418 00:49:51,333 --> 00:50:01,800 다리를 건설하고, 마을을 재건하고, 건물을 짓고 학교, 병원, 모든 것을 지었어요 419 00:50:01,800 --> 00:50:04,567 모든 것들은 미국의 원조 덕분이었지요 420 00:50:04,567 --> 00:50:12,333 그래서 제가 돌아올 때는 새롭게 변해가는 중이었어요 421 00:50:12,333 --> 00:50:24,467 집들이 다시 지어지고 부서졌던 담이 다시 쌓이고 새로운 담을 쌓고, 그렇게 점차 변해가고 있었어요 422 00:50:24,467 --> 00:50:30,333 한국은 건물과 다리, 고속도로를 짓기 위해서 미국의 원조를 받았지요 423 00:50:30,333 --> 00:50:33,467 바로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말이에요 424 00:50:33,467 --> 00:50:38,633 그렇게 60년의 기간을 거쳐 오늘날 세계에서 강대국 중 한 국가가 되었지요 425 00:50:38,633 --> 00:50:43,333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이 큰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26 00:50:44,933 --> 00:50:49,167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국에 가신 적이 있으신가요? 427 00:50:49,167 --> 00:50:57,400 네, 운 좋게도 저는 두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428 00:50:57,400 --> 00:51:02,633 첫 번째는, 제 아내인 루시아 없이 혼자 갔었는데요 해군 제독과 동행했습니다 429 00:51:02,633 --> 00:51:08,467 해군 제독도 6·25전쟁에 참전했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430 00:51:08,467 --> 00:51:14,767 란헬 제독과 같은 콜롬비아군 소속의 로페즈 하사도 있었습니다 431 00:51:14,767 --> 00:51:20,667 아마도 문 목사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분께 초청을 받았습니다 432 00:51:20,667 --> 00:51:31,267 종교계의 문 목사 초청으로 2000년도에 갔습니다 433 00:51:31,500 --> 00:51:37,633 그들의 초청을 받아 말씀드린 3명이 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434 00:51:37,633 --> 00:51:48,167 초대받은 곳은 6·25전쟁에 참전한 22개국에서 온 청년들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435 00:51:48,167 --> 00:51:54,100 약 5천 명의 학생과 젊은이들이 문 목사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436 00:51:54,100 --> 00:52:01,033 모든 비용, 비행기, 호텔, 음식, 선물 등 모든 비용은 문 목사가 부담했습니다 437 00:52:01,033 --> 00:52:05,167 비록 문 목사는, 2,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요 438 00:52:06,033 --> 00:52:14,600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439 00:52:14,600 --> 00:52:22,233 그는 5천 명의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투자했어요 440 00:52:22,233 --> 00:52:27,700 교실, 극장, 운동장 시설, 숙소, 병원 등을 준비했고 441 00:52:27,700 --> 00:52:34,567 그것은 단지 5일 동안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한 결과였어요 442 00:52:34,567 --> 00:52:37,767 이 모든 것들을 한국에 만들었고 443 00:52:37,767 --> 00:52:42,333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대학교가 만들어졌지요 444 00:52:42,333 --> 00:52:46,200 문 목사가 만든 시설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고 445 00:52:46,200 --> 00:52:52,167 그 시설은 전 세계 5천 명의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었습니다 446 00:52:52,333 --> 00:53:00,500 그것이 첫 번째 여행이었는데 굉장히 좋았고, 많은 환대를 받았습니다 447 00:53:00,500 --> 00:53:10,900 그리고 두 번째 여행에서는 제 아내인 루시아와 함께였고 또한 한 소령과 함께였는데요 448 00:53:11,800 --> 00:53:22,300 이름이 지금 기억 안 나는데 제가 한 100여 명 되는 참전군인들의 대표단을 이끌었습니다 449 00:53:22,300 --> 00:53:29,533 그때는 정부의 초청, 정확하게는 참전군인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의 초청이었는데 한국에는 참전군인을 담당하는 부처가 있더라고요 450 00:53:29,533 --> 00:53:33,600 모든 것은 한국 측에서 제공했고 451 00:53:33,600 --> 00:53:37,333 초청을 받은 우리를 매우 잘 맞이해 주고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452 00:53:37,333 --> 00:53:46,067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두 번째 여행도 매우 즐거웠습니다 453 00:53:46,067 --> 00:53:49,200 저는 내년에 세 번째 여행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454 00:53:49,200 --> 00:53:51,967 아마 그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55 00:53:55,133 --> 00:54:01,467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61년이 되었는데요 456 00:54:01,633 --> 00:54:08,300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정전 상황이 오랜 시간 유지되고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457 00:54:08,700 --> 00:54:16,400 이러한 상황을 바꾸고 남북 간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458 00:54:16,833 --> 00:54:21,733 제가 원하는 것은 전 세계의 협력이에요 459 00:54:22,300 --> 00:54:28,200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엔을 통해서 협력하는 것이에요 460 00:54:28,200 --> 00:54:32,400 왜냐하면 유엔이 세계를 대표하고 있으니까요 461 00:54:32,400 --> 00:54:35,167 우선 남과 북은 서로 형제이기 때문에 462 00:54:35,167 --> 00:54:41,700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두 형제 간의 적대감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63 00:54:42,100 --> 00:54:46,533 특히나

구술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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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 생년월일
Eduardo Arguello Montenegro / 19271125
국가 / 소속 및 직위
콜롬비아 / 육군사관학교 출신 소위
주요활동
노마드 작전, 김화 전투 등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구술장소
구술요약
에두아르도 아르구엘로 몬테네그로는 1927년 11월 25일 쿤디나마르카의 테나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4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이후 1949년 12월에 소위로 졸업, 1년 뒤 콜롬비아군에 입대했다. 이후 한국전쟁에 지원하여 1951년 4월 부산항에 도착하였고, 이후 유엔 연합국과 함께 여러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후 한국전쟁 참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2개의 동성훈장과 유엔군 메달을 받았다. 콜롬비아로 귀국한 이후, 초청 프로그램을 통해 두 차례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음을 구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