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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Alfredo Forero Parra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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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0:06,347 --> 00:00:10,298 저는 알프레도 플로레로 파라 (Alfredo Florero Parra) 대령이며 2 00:00:10,322 --> 00:00:12,159 지금은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3 00:00:13,139 --> 00:00:22,948 저는 1930년 2월 3일 보야카주의 모니카라(Moniquir?)에서 태어났습니다 4 00:00:22,948 --> 00:00:30,145 저의 부모님 성함은 알리리오 프롤레로와 피델리아 파라이며 두 분 모두 돌아가셨어요 5 00:00:31,160 --> 00:00:39,963 전 13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6 00:00:39,963 --> 00:00:44,039 큰형은 산타 마르타의 주교셨어요 7 00:00:45,362 --> 00:00:55,019 로살리아 레예스와 결혼했고 전문직으로 일하는 4명의 자녀와 8명의 손자가 있습니다 8 00:00:57,816 --> 00:01:05,187 대령님, 6·25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어떤 교육을 받으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9 00:01:06,937 --> 00:01:12,895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라미레스 사관학교를 졸업했어요 10 00:01:12,895 --> 00:01:22,242 정확히 고등학교 6학년, 4월 9일에 콜롬비아에서 선발되었습니다 11 00:01:22,242 --> 00:01:33,956 이후 1951년 1월 호세 마리아 코르도바 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2 00:01:33,956 --> 00:01:44,864 1952년 4월 4일 소위로 사관학교를 졸업했고 그곳에서 보병학교로 옮겨갔습니다 13 00:01:44,864 --> 00:01:54,326 당시 그곳에서는 한국으로 파병되는 장병과 보충병을 육성하는 훈련소를 운영 중이었습니다 14 00:01:54,327 --> 00:02:01,385 그곳에서 6·25전쟁 파병에 지원했습니다 15 00:02:03,740 --> 00:02:11,428 전쟁에 참전하기 전 언제, 어디에서 어떤 군사훈련을 받았는지 얘기해 주세요 16 00:02:12,374 --> 00:02:19,174 음, 먼저 훈련소가 있던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17 00:02:19,174 --> 00:02:27,945 1년의 복무 기간을 마친 파병 군인들을 대체할 교체 병력들을 훈련시키는 곳이었죠 18 00:02:29,920 --> 00:02:42,525 이후 한국에 도착해서도 전투에 투입되기 전 처음 얼마간 현지 적응훈련을 받았습니다 19 00:02:44,305 --> 00:02:47,397 어떤 부대에 소속되어 계셨나요? 20 00:02:50,319 --> 00:02:54,171 한국에서 저는 콜롬비아 대대 소속이었어요 21 00:02:55,031 --> 00:03:05,025 소위였고, B 중대 제2소총 소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2 00:03:05,025 --> 00:03:11,438 지금은 작고하신 이르네르 페레아 사라스티 대위 휘하에 있었습니다 23 00:03:11,438 --> 00:03:18,139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로는 불모고지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6·25전쟁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24 00:03:18,139 --> 00:03:29,320 수년 전 세상을 떠난 페드로 카이세도 야쿠 중위가 있습니다 25 00:03:29,321 --> 00:03:40,480 또한 클레베스 롬바르데 중위, 구스타보 로드리게스 중위 루이스 알레한드로 베르날 바케로 중위가 있습니다 26 00:03:40,481 --> 00:03:49,605 특히 마지막으로 언급한 루이스 알레한드로 베르날 바케로 중위는 아직도 불모고지전투에서 실종된 군인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27 00:03:49,605 --> 00:03:55,699 전장에 있던 한 포대에 묻혔는데 지금까지도 그의 유해를 찾지 못했어요 28 00:03:57,185 --> 00:04:04,245 대령님, 한국에는 얼마나 계셨고 언제, 어디로 도착하셨나요? 29 00:04:05,752 --> 00:04:17,350 우리는 12월 하순 정도에 한국을 가기 위해 카르타헤나에서 수송선을 탔습니다 30 00:04:17,350 --> 00:04:33,332 이후 수송선 제너럴 저지호로 한국까지 갔고 장비를 싣기 위해 잠시 일본 도쿄에 정박했습니다 31 00:04:33,332 --> 00:04:43,646 결국 36일 동안의 항해 끝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32 00:04:46,767 --> 00:04:55,859 황해를 지나 인천에 상륙해 하선한 후 기차로 서울까지 이동했죠 33 00:04:55,860 --> 00:05:00,441 서울에 도착하니 그곳에 우리를 군영까지 수송할 트럭이 대기하고 있더군요 34 00:05:00,441 --> 00:05:07,533 한국 도착일은 1953년 1월 20일입니다 35 00:05:08,348 --> 00:05:10,606 한국에는 얼마 동안 계셨나요? 36 00:05:10,606 --> 00:05:14,712 한국에 1년 반 동안 있었습니다 37 00:05:14,712 --> 00:05:25,341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0일 아니 27일까지 7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38 00:05:25,341 --> 00:05:35,299 그 이후에도 1954년 하반기까지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39 00:05:35,300 --> 00:05:44,469 콜롬비아에서 계속해서 파병되던 병력의 교관으로 한국에 남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죠 40 00:05:44,469 --> 00:05:56,267 이렇게 보충병력의 교체 투입을 담당했고 1954년 7월 콜롬비아로 귀국했습니다 41 00:05:57,118 --> 00:06:01,807 대령님, 6·25전쟁 당시의 경험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42 00:06:01,831 --> 00:06:06,234 참전하기 전 6·25전쟁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43 00:06:07,921 --> 00:06:11,249 사실 아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44 00:06:11,250 --> 00:06:16,676 한국이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조차 몰랐으니까요 45 00:06:16,677 --> 00:06:28,282 가족들도 몰랐고, 이곳 주민들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랐습니다 46 00:06:28,282 --> 00:06:38,307 6·25전쟁 관련 뉴스나 기사들이 나오면서 점차 알게 되었죠 47 00:06:38,307 --> 00:06:47,465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 파병되었던 부대가 6·25전쟁에서 돌아오게 되면서 알게 되었어요 48 00:06:47,466 --> 00:06:58,670 초기에 파병되었다가 7월 그러니까 1951년에 귀국한 군인들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49 00:06:58,671 --> 00:07:07,254 1951년 말에는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이미 돌아온 상태였기 때문에 더 잘 알게 되었죠 50 00:07:09,673 --> 00:07:14,795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떠셨나요? 51 00:07:16,670 --> 00:07:23,897 글쎄요, 사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거의, 아니 전혀 알지 못했어요 52 00:07:23,897 --> 00:07:28,816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조차 몰랐죠 53 00:07:28,816 --> 00:07:37,792 산발적으로 뉴스들이 나오긴 했지만 텔레비전도 없어 라디오로만 뉴스를 접하던 시기였어요 54 00:07:37,792 --> 00:07:48,271 그 당시 저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55 00:07:50,459 --> 00:07:56,598 한국에 도착하셨을 때, 한국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56 00:07:57,995 --> 00:08:02,011 음, 그야말로… 57 00:08:04,063 --> 00:08:05,391 참혹했어요 58 00:08:06,672 --> 00:08:19,700 인천에 상륙하자마자 서울로 이동했는데, 전쟁으로 인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59 00:08:19,701 --> 00:08:27,085 도시, 건물, 다리, 도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죠 60 00:08:28,311 --> 00:08:31,426 무엇보다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61 00:08:31,426 --> 00:08:42,589 여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전부 거리나 들판으로 나와 빵 조각을 구걸하고 있었으니까요 62 00:08:42,590 --> 00:08:51,213 그 사람들의 고통은 특히 눈을 보면 알 수 있었어요 63 00:08:51,214 --> 00:08:54,332 아이들의 시선에 나타나 있었죠 64 00:08:57,548 --> 00:09:05,120 한국에서 복무하시는 동안 어디에 배치되셨나요? 65 00:09:06,034 --> 00:09:13,126 음, 한국의 여러 지역으로 배치되었습니다 66 00:09:14,320 --> 00:09:24,903 배치되었던 전선으로는 가령 포천, 철원, 불모고지 등이 있었습니다 67 00:09:25,962 --> 00:09:37,932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전선에서 떨어져 있는 사단이나 연대의 후방 예비구역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68 00:09:37,932 --> 00:09:44,324 막동이 그런 후방이었죠 69 00:09:46,246 --> 00:09:54,757 그 외에도 전투를 하기 위해 배치된 곳들이 꽤 많았었는데 다른 지역들은 기억나지 않네요 70 00:09:56,605 --> 00:10:04,062 전쟁 중에 음식, 잠자리, 의복 등 생활 여건은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71 00:10:04,062 --> 00:10:06,027 또한 휴식시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72 00:10:07,129 --> 00:10:12,214 여건이 매우 훌륭했어요 73 00:10:13,183 --> 00:10:29,057 콜롬비아 대대가 속해 있던 미 육군 대대가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들을 원활히 공급했기 때문이죠 74 00:10:29,721 --> 00:10:42,363 병기, 군복, 식량, 물자 수송, 위생서비스 통신서비스 등 모든 것을 보급했어요 75 00:10:42,370 --> 00:10:51,687 미군에게는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76 00:10:52,237 --> 00:11:03,382 이처럼 훌륭한 여건은 군인들의 사기를 높여 전투 작전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77 00:11:03,382 --> 00:11:10,370 전장에서도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처음 보는 시설이었습니다 78 00:11:10,370 --> 00:11:16,288 전선 후방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온수 샤워실이 설치되어 있었거든요 79 00:11:16,288 --> 00:11:22,210 상황에 따라 언제든 이용 가능했어요 80 00:11:23,184 --> 00:11:30,796 막사에 설치된 샤워실에서 온수 샤워를 했습니다, 새 군복도 받았어요 81 00:11:30,796 --> 00:11:38,987 이렇게 보급된 새 군복을 입고 사기충천한 상태로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82 00:11:41,278 --> 00:11:47,119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들과 서신 교환을 하셨나요? 우편물 배송은 얼마나 걸렸나요? 83 00:11:48,095 --> 00:11:56,940 우편물은 신속하게 배송되었어요 도쿄에 우편 업무를 담당하는 연락사무소가 있었거든요 84 00:11:56,941 --> 00:12:08,049 그래서 콜롬비아에서 오는 편지, 그러니까 모든 우편물을 빨리 받아볼 수 있었고, 사진 인화를 맡길 수도 있었습니다 85 00:12:08,049 --> 00:12:13,773 하와이로 보내면 하와이에서 재빨리 컬러 사진으로 인화해 보내주었죠 86 00:12:15,046 --> 00:12:25,618 저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친구들은 콜롬비아 소식이 담긴 잡지를 보내주곤 했어요 87 00:12:25,618 --> 00:12:35,973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는요… 당시 저는 미혼이었는데 부모님께는 직접 편지를 보내지 못했어요 88 00:12:35,973 --> 00:12:42,990 왜냐하면, 제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살아 계셨지만,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89 00:12:42,991 --> 00:12:49,842 게다가 어머니 모르게 6·25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어요 90 00:12:49,842 --> 00:12:59,619 보고타에 있는 처형에게 어머니께 쓴 편지를 보내곤 했어요 91 00:12:59,619 --> 00:13:07,231 그러면 처형이 바란키야에서 온 편지인 것처럼 봉투를 바꿔 어머니께 보내곤 했습니다 92 00:13:07,231 --> 00:13:12,076 어머니는 제가 바란키야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계셨거든요 93 00:13:15,951 --> 00:13:18,811 - 대령님, 지금까지 보관하고 계신 편지가 있을까요? - 네? 94 00:13:18,921 --> 00:13:21,156 지금까지 보관하고 계신 편지가 있으신가요? 95 00:13:21,801 --> 00:13:27,301 아니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96 00:13:28,672 --> 00:13:35,271 대령님이나 동료 군인들과 다른 외국군 및 한국군의 관계는 어땠나요? 97 00:13:35,966 --> 00:13:45,267 대대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관계는 거의 없었어요 98 00:13:46,431 --> 00:13:56,190 각 대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고 작전 수행에 필요한 경우에만 통역병이 동원되었습니다 99 00:13:56,190 --> 00:14:02,547 외국 군대와 가장 접촉이 많았던 사람은 대대장과 그의 참모진이었죠 100 00:14:02,548 --> 00:14:15,682 제 경우 미국 장교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전 기간 중 2주 정도 탱크 교육을 받으러 갔었기 때문입니다 101 00:14:15,682 --> 00:14:22,723 그곳에서 미국 장교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02 00:14:23,507 --> 00:14:29,436 대령님, 6·25전쟁에 참전했던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03 00:14:30,448 --> 00:14:33,594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어요 104 00:14:34,446 --> 00:14:47,482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불모고지를 방어하기 위해 그 진지를 지키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군요 105 00:14:48,769 --> 00:15:01,882 정말 힘겨운 시기였는데, 당시 우리는 B중대에 속해 있었고 저는 그 중대의 제2소총소대 소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106 00:15:01,882 --> 00:15:11,419 당시 우리 군은 미군 제1보병대대에 속한 부대와 교대해 이 진지에 배치됐습니다 107 00:15:12,856 --> 00:15:16,959 1953년 3월 12일에 이 고지로 이동했고 108 00:15:16,959 --> 00:15:23,417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공격이 이루어지기까지 11일 동안 전투를 치렀어요 109 00:15:23,444 --> 00:15:34,371 하루도 빠짐없이 적군의 중포(155mm 이상의 포) 및 박격포 부대로부터 지속적인 포격을 받았고 110 00:15:34,372 --> 00:15:39,079 이러한 파상공격은 날로 거세지고 있었어요 111 00:15:39,079 --> 00:15:53,241 그러던 3월 22일 밤, 그러니까 1953년 3월 22일에 대대의 S3명령이 떨어졌습니다 112 00:15:53,241 --> 00:16:05,702 다음 날인 23일 각종 구경의 포탄 1,972개가 불모고지를 집중 포격하며 적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113 00:16:06,632 --> 00:16:14,143 또 다른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불모고지전투에서 있었습니다 114 00:16:15,128 --> 00:16:27,988 당시 저는 제 소대의 제2분대장이었던 곤살레스 바렐라 병장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115 00:16:27,988 --> 00:16:34,962 그때도 무전으로 기관총 사격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116 00:16:34,962 --> 00:16:42,739 바렐라 병장은 그 와중에도 아군에게 달려드는 중국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사격을 멈추지 않았죠 117 00:16:42,740 --> 00:16:55,662 그때 바렐라 병장이 있는 포안(砲眼)의 한구석으로 바주카포 어쩌면 57mm나 75mm 무반동총 포탄이 날아들었습니다 118 00:16:55,662 --> 00:17:05,239 그 포탄으로 인해 기관총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포탄 파편에 바렐라 병장의 목이 날아갔습니다 119 00:17:05,239 --> 00:17:11,611 잔혹하게도 파편에 맞은 머리가 등 뒤로 떨어졌는데요 120 00:17:11,611 --> 00:17:17,933 목덜미 살가죽이 머리에 붙어 있는 바람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더군요 121 00:17:17,933 --> 00:17:22,169 정말이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122 00:17:24,140 --> 00:17:34,575 그 불모고지전투에서 저도 적군의 포격으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123 00:17:34,575 --> 00:17:41,531 소대원들의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머물던 포대 위로 박격포와 다른 화포의 포탄들이 여러 개 떨어져 124 00:17:41,532 --> 00:17:45,992 제가 파묻히는 일이 발생했죠 125 00:17:46,889 --> 00:17:56,339 포대가 완전히 파괴되고 화염에 휩싸였고, 밖에 있던 아군이 잔해를 치워 그 안에 있는 우리를 끌어내야 했어요 126 00:17:56,339 --> 00:18:03,895 그 안에서 질식사하거나 그다음 날아올 포탄에 맞아 죽지 나지 않도록 그전에 우리를 꺼내야 했죠 127 00:18:03,895 --> 00:18:12,491 무너진 포대 안에서 아군 한 명이 전사했고 부상자도 한 명 발생했는데 128 00:18:12,491 --> 00:18:20,493 그분은 중국군의 공격이 있던 날 밤에 우리와 동행했던 대대 군종사제였습니다 129 00:18:22,260 --> 00:18:32,460 또 다른 힘든 순간은 제가 소속된 중대의 얘기인데요 130 00:18:32,460 --> 00:18:36,192 호송 임무를 맡았을 때였어요 131 00:18:38,028 --> 00:18:51,824 차단 진지, 그러니까 후방 진지에 있던 B중대를 예비 야영지로 호송하던 중에 발생했습니다 132 00:18:51,824 --> 00:19:01,259 당시 제 소대를 수송하던 트럭이 비탈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요 133 00:19:01,259 --> 00:19:19,764 그 트럭을 운전하던 까무잡잡한 미군 운전병은 트럭을 그냥 운에 맡기고 이내 차문을 열고 트럭에서 뛰어내렸습니다 134 00:19:19,764 --> 00:19:30,095 하지만 다행히도 트럭은 미군이 페인트칠을 해 표시석으로 사용했던 바위와 충돌했어요 135 00:19:30,095 --> 00:19:39,621 뒤로 밀려나 도로를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뒤집히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트럭이 멈춰 섰죠 136 00:19:40,382 --> 00:19:47,355 당시 그 사고에서 즉사한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는데 137 00:19:47,355 --> 00:19:52,054 우연찮게도 뛰어내렸던 그 운전병이 차체 한쪽 구석에 몸이 끼는 바람에 사망했어요 138 00:19:52,055 --> 00:19:54,759 그 사고로 부상자 11명과 사망자 1명이 발생했습니다 139 00:19:56,828 --> 00:20:04,998 이 사망한 군인은 소총의 총신이 목을 통과해 한쪽 눈으로 삐져나왔어요 140 00:20:06,123 --> 00:20:11,403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힘든 순간들입니다 141 00:20:12,416 --> 00:20:18,544 참전 기간 동안 평온함과 행복을 느꼈던 만족스러운 순간도 기억하시나요? 142 00:20:19,787 --> 00:20:28,908 힘든 순간이 있었던 것만큼 행복하고 보람 있는 순간도 있었어요 143 00:20:28,908 --> 00:20:37,636 예비 연대나 사단으로 배치받을 때가 그랬죠 144 00:20:37,636 --> 00:20:44,176 왜냐고요? 그야 전선과 멀리 떨어진 후위로 더 후방지역으로 가게 되니까 그렇죠 145 00:20:44,176 --> 00:20:49,392 실제로 우리는 후방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146 00:20:49,392 --> 00:20:56,983 또한 일본에서 휴식을 취하는 계획도 짜여 있었어요 147 00:20:56,983 --> 00:21:06,799 최전선에서 3개월을 보낸 후에는 교대로 5일간 도쿄로 휴가를 보내 주었습니다 148 00:21:06,799 --> 00:21:20,239 그곳에 가면 한국에서 겪었던 지옥 같은 전쟁을 완전히 잊고 문명과 도시를 즐기곤 했습니다 149 00:21:21,113 --> 00:21:25,805 매우 보람 있는 일이었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죠 150 00:21:26,886 --> 00:21:30,349 그렇게 회복과 휴식의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151 00:21:32,804 --> 00:21:41,860 대령님, 구체적으로 대령님께서 참여한 가장 위험했던 전투인 불모고지전투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세요 152 00:21:45,423 --> 00:21:53,505 제가 참여했던 가장 위험했던 전투는 불모고지전투였습니다 153 00:21:55,094 --> 00:22:05,021 불모고지전투는 콜롬비아 대대가 한국에 주둔해 있던 기간에 벌어졌습니다 154 00:22:05,021 --> 00:22:11,104 콜롬비아군이 참여했던 여러 작전 중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데요 155 00:22:11,104 --> 00:22:17,162 연합군이 가장 치열하고 끔찍했던 혈전으로 기록한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156 00:22:20,160 --> 00:22:31,476 불모고지전투 외에도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로 기록한 나머지 5대 전투가 있습니다 157 00:22:33,326 --> 00:22:41,625 벙커힐전투, 티본고지전투 김화 400고지전투, 신내리전투 등입니다 158 00:22:41,625 --> 00:22:51,842 불모고지전투에서 콜롬비아군 95명이 전사했고 28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159 00:22:51,842 --> 00:23:03,908 이후 전쟁 막바지와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죠 160 00:23:06,356 --> 00:23:12,617 당시 적군 최고사령부를 도청한 결과가 있는데요 161 00:23:13,423 --> 00:23:25,296 이 불모고지전투에서 중국군 500여 명이 전사했고 2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162 00:23:27,154 --> 00:23:31,080 - 전투 중 부상을 입으셨나요? - 네 163 00:23:31,081 --> 00:23:34,820 부상을 당했는데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습니다 164 00:23:35,570 --> 00:23:39,171 콜롬비아 대대의 마지막 부상자가 바로 저였으니까요 165 00:23:42,388 --> 00:23:47,855 정전협정 체결 전날이었어요 166 00:23:47,855 --> 00:23:54,641 그러니까 1953년 7월 26일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167 00:23:54,642 --> 00:24:02,042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전우인 구스타보 로드리게스 몬로이 소위와 함께 정찰을 나갔죠 168 00:24:03,300 --> 00:24:09,914 지프차 2대를 이용해 미군 부대가 배치되었던 전선으로 향했어요 169 00:24:10,898 --> 00:24:27,124 향후 우리 부대가 미군 부대를 대신해 교대 투입될 진지가 있는 곳으로 차량 정찰을 나간 것이죠 170 00:24:27,125 --> 00:24:38,302 그때 적진에서 기습적으로 포탄이 발사되었고 그로 인해 지프차에 타고 있던 미군 2명이 사망했어요 171 00:24:38,858 --> 00:24:46,120 지프차에는 운전병과 다른 군인이 타고 있었는데 포탄이 폭발하면서 그 여파로 차량이 날아갔고 172 00:24:46,120 --> 00:24:53,352 그때 날아온 파편이 3kg이나 되는 방탄조끼를 뚫고 제 몸에도 박혔어요 173 00:24:53,352 --> 00:24:57,311 다행히 저는 심각한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174 00:24:57,312 --> 00:25:03,131 척추에서 몇 밀리미터 되지 않는 곳에 파편이 박혔다고 했으니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죠 175 00:25:04,287 --> 00:25:11,201 미군의 전방 응급치료소에서 파편을 제거해 줬습니다 176 00:25:11,595 --> 00:25:17,775 대령님, 6·25전쟁은 귀국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77 00:25:21,037 --> 00:25:23,089 콜롬비아로 귀국한 후 말이지요? 178 00:25:24,511 --> 00:25:29,754 한국에서 콜롬비아로 귀국했을 때였어요 179 00:25:32,018 --> 00:25:41,832 무사히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큰 감동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180 00:25:45,795 --> 00:25:53,325 또한 세계 최고의 군대들과 함께 국제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뿌듯했고요 181 00:25:54,239 --> 00:25:59,216 국가에 봉사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죠 182 00:26:00,839 --> 00:26:04,422 저에게는 실제 전쟁... 183 00:26:06,786 --> 00:26:26,317 그것도 세계 최고의 군대들과 함께 하는 정규전에 참여한 것이 가장 큰 자부심이자 최고의 영광이었어요 184 00:26:26,317 --> 00:26:42,092 하지만 항상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고 그걸 치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185 00:26:45,266 --> 00:26:48,832 정신적 후유증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세요 186 00:26:50,059 --> 00:26:57,641 음, 정신적 후유증 그러니까 전쟁 후유증이 있어요 187 00:26:58,700 --> 00:27:06,497 불모고지전투와 같이 매우 위험하고 처참한 전투를 겪은 참전용사들에게 나타나죠 188 00:27:07,142 --> 00:27:16,709 저도 오랫동안 후유증을 겼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를 치료할 심리치료를 찾지 못했어요 189 00:27:16,710 --> 00:27:24,612 사실 치료는 고사하고 오히려 제가 전쟁에 대한 지식을 갖춘 참전용사라는 이유로 재배치되었죠 190 00:27:24,612 --> 00:27:36,513 그 당시 저는 전복 세력이나 반란군 일당과 전투를 하게끔 콜롬비아 전역으로 배치되었습니다 191 00:27:39,186 --> 00:27:51,028 군 동료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6·25전쟁에 대한 경험을 얘기할 기회가 있었나요? 192 00:27:52,179 --> 00:27:56,296 아니요, 6·25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193 00:27:56,296 --> 00:28:00,536 아니, 아예 없었죠 194 00:28:00,536 --> 00:28:05,812 제가 배치되었던 부대에서 간혹 콜롬비아 대대에 대해 얘기하긴 했었죠 195 00:28:05,813 --> 00:28:11,081 나중에 퇴역한 후에는 그럴 기회가 간혹 있었던 것 같아요 196 00:28:12,906 --> 00:28:20,557 사관학교와 군사학교에서 6·25전쟁에 관한 강연을 한 적은 있습니다 197 00:28:20,558 --> 00:28:31,535 전쟁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다른 장교들과 함께 초청받기도 했었고요 198 00:28:33,441 --> 00:28:38,493 그때 이후로 한국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나요? 199 00:28:38,493 --> 00:28:44,170 네, 한국 재향군인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200 00:28:44,299 --> 00:28:50,023 당시 한국 방문단이 구성되어 제 아내와 함께 방문했었죠 201 00:28:50,023 --> 00:28:58,253 장군 2명, 대령 1명, 해군 소위 1명과 육군 소위 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202 00:28:58,284 --> 00:29:00,703 우리는 19…. 203 00:29:01,477 --> 00:29:08,405 아니 2003년 7월 22일 한국에 갔었습니다 204 00:29:08,406 --> 00:29:23,515 방문 목적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전협정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05 00:29:25,593 --> 00:29:30,027 그 일자를 기념해 방문한 것이었죠 206 00:29:31,223 --> 00:29:41,172 전쟁 후 한국이 이룩한 급속한 발전과 경제적, 민주적 성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207 00:29:41,172 --> 00:29:43,460 잘 알고 있습니다 208 00:29:44,609 --> 00:29:51,840 그것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잖아요 209 00:29:51,840 --> 00:29:55,581 한강은 서울을 가로지르는 강 이름이죠 210 00:29:56,659 --> 00:30:12,775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6년 동안 박정희 장군이 한국 대통령이었잖아요 211 00:30:12,775 --> 00:30:19,279 현직 한국 대통령의 부친이죠 212 00:30:19,279 --> 00:30:25,964 박정희 대통령은 눈부신 경제 발전과 진전을 이룩한 분이죠 213 00:30:25,964 --> 00:30:35,583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힘을 얻는 것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산주의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214 00:30:35,598 --> 00:30:45,040 워싱턴과 손을 잡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의 문호를 개방하셨어요 215 00:30:46,141 --> 00:30:54,530 이처럼 성공적인 발전 덕분에 현재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216 00:30:54,530 --> 00:31:01,217 또한 세계 5대 산업대국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217 00:31:02,511 --> 00:31:14,030 세계은행과 유엔은 이미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선언했습니다 218 00:31:16,319 --> 00:31:20,831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1년이 지났습니다 219 00:31:20,831 --> 00:31:32,023 이 상황을 타개하고 남한과 북한이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220 00:31:33,284 --> 00:31:46,884 네, 제 생각에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221 00:31:49,176 --> 00:32:01,981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222 00:32:01,982 --> 00:32:09,761 이러한 방식으로… 음… 분명 이러한 방법으로 위대한 통일국가를 세울 수 있을 거예요 223 00:32:09,761 --> 00:32:14,727 사실 지금은 엄청난 불균형 경제적 불균형이 존재하니까요 224 00:32:17,586 --> 00:32:22,483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남긴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25 00:32:25,432 --> 00:32:34,116 사실 모든 전쟁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죠 226 00:32:35,019 --> 00:32:43,853 많은 물질적, 도덕적 후유증을 남깁니다 227 00:32:44,719 --> 00:32:59,032 우리 참전용사들은 전쟁에서 얻은 지식을 이곳 군사교육기관에서 실행에 옮겼습니다 228 00:33:00,126 --> 00:33:06,349 그 당시로서는 가장 현대적인 전쟁기술을 익혔죠 229 00:33:06,349 --> 00:33:11,502 6·25전쟁에는 헬리콥터가 등장했으니까요 230 00:33:11,502 --> 00:33:17,812 그곳에서 부상자를 수송하는 데 사용되었죠 231 00:33:17,812 --> 00:33:25,240 6·25전쟁에는 제트기도 등장했습니다 232 00:33:25,240 --> 00:33:35,841 러시아의 미그기, MIG-15기와 미국의 세이버 F-16기가 그 예죠 233 00:33:38,318 --> 00:33:39,748 네, 정말 그랬어요 234 00:33:40,249 --> 00:33:45,488 남북한 통일에 동의하시나요? 235 00:33:45,488 --> 00:33:48,111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36 00:33:49,111 --> 00:33:55,678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된다면 위대한 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7 00:33:55,679 --> 00:34:08,604 특히 무엇보다 전쟁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수천의 이산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238 00:34:09,934 --> 00:34:15,712 6·25전쟁과 관련해 후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239 00:34:16,837 --> 00:34:27,690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전쟁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후대에게 경고하고 싶어요 240 00:34:27,690 --> 00:34:39,045 도덕적 후유증, 경제적, 물질적 후유증 등 수많은 후유증을 남깁니다 241 00:34:40,217 --> 00:34:43,970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242 00:34:43,970 --> 00:34:51,353 그러려면, 모든 전쟁이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243 00:34:51,354 --> 00:34:58,020 가족, 정부, 국가 등 항상 내부에서 시작되죠 244 00:34:59,106 --> 00:35:10,666 이러한 결과에 도달하지 않도록 하려면, 또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정신적 무장 해제가 필요합니다 245 00:35:11,481 --> 00:35:27,275 또한 미래 세대는 당연히 우리 군의 역사도 알 필요가 있어요 246 00:35:28,724 --> 00:35:38,594 콜롬비아는 유엔의 부름에 응해 실제 국제 전쟁에 참가했어요 247 00:35:39,710 --> 00:35:48,206 이런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콜롬비아는 유엔 회원국이니까요 248 00:35:48,207 --> 00:36:02,971 북한의 침공으로 점령당한 형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것이죠 249 00:36:02,972 --> 00:36:11,147 이를 위해 콜롬비아는 보병대대와 해군 부대를 파병했습니다 250 00:36:13,006 --> 00:36:21,637 콜롬비아군의 참전은 한국에서 조국의 위상을 크게 높였습니다 251 00:36:22,319 --> 00:36:36,051 콜롬비아군은 다른 외국군들에게 용기, 용맹, 극기를 입증해 보였습니다 252 00:36:37,983 --> 00:36:43,503 대령님, 이 인터뷰에 추가하고 싶은 메시지나 의견이 있으신가요? 253 00:36:44,925 --> 00:36:57,671 네, 이 자리를 빌려 콜롬비아 대대 사령부가 불모고지전투에 참여한 용사들에게 바친 헌사를 읽고 싶습니다 254 00:36:58,988 --> 00:37:03,118 헌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255 00:37:03,118 --> 00:37:06,786 “콜롬비아 대대의 전사들이여 256 00:37:06,786 --> 00:37:15,097 며칠 전 모든 콜롬비아인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 우리의 청년들이 257 00:37:15,097 --> 00:37:26,902 포근한 고국 땅을 떠나 멀리 떨어진 이역만리 고지에서 전투를 벌이다 쓰러졌습니다 258 00:37:27,723 --> 00:37:36,625 역사에 이보다 숭고하고 위대한 영웅적 행동이 기록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59 00:37:36,625 --> 00:37:44,655 이들은 그저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만이 아닐 것입니다 260 00:37:44,655 --> 00:37:54,512 또한, 조국의 순교자도 불멸의 이름을 올린 자도 아닐 것입니다 261 00:37:55,104 --> 00:38:05,239 콜롬비아와 전 세계는 이들이 단순한 영웅이나 숭고한 순교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262 00:38:05,239 --> 00:38:13,696 군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미덕의 신성한 상징이며 263 00:38:14,665 --> 00:38:24,955 조국애로 심장이 고동치는 모든 이를 격려하는 경이로운 모범으로 남을 것입니다 264 00:38:24,955 --> 00:38:36,633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던 이들의 순수한 음성은 끝내 눈을 감았고 265 00:38:36,633 --> 00:38:47,355 생명을 빼앗아 영원불멸하게 만든 산탄과 화염 속에서 잦아들었습니다 266 00:38:49,090 --> 00:39:03,887 시(詩)가 이들의 이름을, 전우들과 함께 적군의 총공세에 맞선 이들의 전투를 노래할 것입니다 267 00:39:03,887 --> 00:39:14,607 최전선에서 보여준 켄타우로스의 용기와 기량을 찬미할 것입니다 268 00:39:15,451 --> 00:39:24,452 언제나 이들의 편이었던 승리와 함께 사랑을 노래할 것입니다 269 00:39:28,680 --> 00:39:38,399 독립전쟁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대대손손 이들의 무훈을 기릴 것입니다 270 00:39:39,114 --> 00:39:48,769 무기를 쥘 자격이 있는 콜롬비아인이 있는 한 쩌렁쩌렁한 자유의 찬가가 사그라들지 않는 한 271 00:39:48,769 --> 00:39:53,991 피와 화염으로 얻은 자유 272 00:39:53,991 --> 00:40:03,704 아직도 영광의 향기와 뒤섞인 화약 내음이 가시지 않은 조국 찬가의 아름다운 구절들을 탄생시킨 그 자유가 지속되는 한 273 00:40:03,705 --> 00:40:11,165 우리는 매일 이들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74 00:40:12,373 --> 00:40:27,030 불모고지에서 쓰러져간 콜롬비아의 청년들, 맹세를 지키고자 한국에서 쓰러져간 이들에게 끝없는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275 00:40:27,030 --> 00:40:37,835 인생의 희로애락, 녹녹지 않은 현실과 청운의 꿈을 뒤로한 채 276 00:40:37,835 --> 00:40:45,613 피를 쏟아붓고 온 삶을 바쳐 그 무엇보다 조국을 사랑한 콜롬비아 군인의 영혼이 277 00:40:45,614 --> 00:40:58,150 그 얼마나 위대한지 전 세계에 보여준 우리 청년들의 주검이 고지에 남았습니다 278 00:40:59,384 --> 00:41:10,891 오늘 우리는 불모고지의 순교자들에게 눈물을 바쳐 경의를 표합니다 279 00:41:11,583 --> 00:41:23,398 미지로부터 아메리카 해방자의 고귀한 그림자가 여전히 아야쿠초의 사격 소리와 공명하는 안데스산맥 위로 떠오르며 280 00:41:23,398 --> 00:41:25,693 전 세계에 당당히 외칩니다 281 00:41:25,693 --> 00:41:39,375 “너희는 5개의 공화국을 해방시킨 승리의 전사들이며 전 시대 모든 국가의 영광인 아메리카의 아들들이다 282 00:41:39,375 --> 00:41:50,519 너희를 통해 ‘노래하며 싸우고 웃으며 죽음을 맞으라’ 가르친 자유로운 가톨릭 세계에 인사를 전한다.” 283 00:41:50,519 --> 00:41:55,564 불모고지의 영웅들이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284 00:41:55,564 --> 00:42:06,791 그날 밤 그 강하고 늠름한 손에 공화국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선 생존자들에게도 285 00:42:06,791 --> 00:42:12,498 대대본부와 부대 전체가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286 00:42:12,499 --> 00:42:22,763 전장에서 쓰러진 전우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자 여러분에게도 영광이 함께 합니다 287 00:42:22,763 --> 00:42:34,101 여러분은 지평선에 시선을 응시한 채 광대한 하늘에서 저 멀리 펄럭이는 금색, 청색, 적색의 깃발 288 00:42:34,102 --> 00:42:39,061 우리 모두의 희망을 간직한 여명을 볼 수 있는 조국 땅의 289 00:42:39,062 --> 00:42:51,882 이 신성한 상징과 함께 할 영웅들을 위해 간직해 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습니다 290 00:42:52,567 --> 00:43:00,964 불모고지의 전사들이여, 조국은 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여러분을 영웅으로 받듭니다 291 00:43:00,964 --> 00:43:12,013 여러분의 투혼은 우리가 쫓아야 할 유일한 길이며 강철 같이 굳은 여러분의 금빛 헌신은 역사에 새겨져 길이 남을 것입니다.” 292 00:43:14,051 --> 00:43:15,949 여기까지입니다 293 00:43:15,949 --> 00:43:26,382 이 헌사 또는 추모사는 당시 한국에 파병된 콜롬비아 대대의 참모가 쓴 글입니다 294 00:43:26,383 --> 00:43:34,107 에드문도 루비아노 그룻 소령이 쓴 글로 이후 이 분은 공화국 장군이 되셨고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295 00:43:39,104 --> 00:43:49,535 이 글은 1953년 4월 28일 막동에서 콜롬비아군에게 바치는 글입니다 296 00:43:50,395 --> 00:44:06,952 특히 지옥과도 같은 불모고지에서 장렬하게 목숨을 바친 콜롬비아 전사들을 위한 행사에서 낭독한 헌사입니다

구술자정보

목록
구술자 / 생년월일
Alfredo Forero Parra / 19300203
국가 / 소속 및 직위
콜롬비아 / 콜롬비아 대대 소속 소위
주요활동
불모고지 전투 등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구술장소
구술요약
알프레도 포레로 파라는 콜롬비아 육군 소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불모 고지(Old Baldy) 전투를 비롯한 여러 작전에 참여했고,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한국에 머물며 콜롬비아군 교관을 했다. 본 인터뷰는 한국전쟁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 한국전쟁 참전 후 겪은 전쟁 후유증, 후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을 다룬다. 특히 불모고지전투에서 전사한 콜롬비아군을 추모하고자 1953년 한국 막동에서 한 콜롬비아 참모가 쓴 헌사를 직접 낭독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