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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Richard Allen Franklin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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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0:05,133 --> 00:00:10,098 리차드 앨런 프랭클린 입니다 1929년 7월 30일에 태어났습니다 2 00:00:11,434 --> 00:00:15,739 태어나신 곳은 어디신가요? 가족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3 00:00:15,763 --> 00:00:18,273 그럼요,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4 00:00:18,433 --> 00:00:24,112 어머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는 어릴 때 여기로 이주해 오셨죠 5 00:00:24,356 --> 00:00:28,850 그래서 저는 1929년부터 쭉 로스앤젤레스에 살았죠 6 00:00:29,397 --> 00:00:33,822 저의 조상은 러시아인입니다 7 00:00:38,366 --> 00:00:41,997 저는 여기에서 자랐어요 저는 약사고 8 00:00:42,118 --> 00:00:48,069 아버지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약을 다루는 약사셨죠 9 00:00:48,093 --> 00:00:53,542 그러시군요, 저희가 이 곳 로스앤젤레스에 온 건 내용을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함이거든요 10 00:00:54,057 --> 00:00:58,860 그래서 선생님의 배경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군 배경이죠 11 00:00:58,885 --> 00:01:04,920 군 지원하기 전까지의 교육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12 00:01:05,382 --> 00:01:12,761 저는 남부 캘리포니아 약학대학교에 다녔습니다 13 00:01:13,400 --> 00:01:16,588 1950년에 졸업을 했고 14 00:01:16,903 --> 00:01:22,203 1950년 7월에 자격 시험에 합격했죠 15 00:01:22,791 --> 00:01:26,908 6·25전쟁은 1950년 6월에 발발했어요 16 00:01:27,125 --> 00:01:32,614 1950년 12월에 군에 징집됐죠 17 00:01:34,467 --> 00:01:38,773 어떤 기초 훈련을 받으셨나요? 기초 훈련을 받은 장소는 어디였나요? 18 00:01:38,797 --> 00:01:50,428 다른 사람들처럼 캘리포니아 주의 포트 오드로 6주간 훈련을 받으러 갔습니다 19 00:01:50,453 --> 00:01:51,588 보병 기초 훈련이었죠 20 00:01:51,612 --> 00:02:00,920 그리고 저는 약사였기 때문에 의료 기초 훈련을 받도록 저를 브룩 군 병원으로 보냈죠 21 00:02:01,473 --> 00:02:06,947 거기 있는 동안 기지 주변에서 유행하던 홍역에 걸렸어요 22 00:02:06,971 --> 00:02:14,945 의료 격리 병동으로 가서 떠도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23 00:02:14,969 --> 00:02:20,829 이 범주 내 한 곳에만 있어도 즉시 장교가 될 수 있는 거죠 24 00:02:20,853 --> 00:02:26,232 맞든 틀리든, 약사로서 결심을 했죠 25 00:02:26,257 --> 00:02:29,567 굳이 이등병이 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소위가 될 건데요 26 00:02:29,591 --> 00:02:33,041 물론 그건 제 고난의 시작이었죠 27 00:02:34,538 --> 00:02:43,382 그럼 어느 군대 소속이셨나요? 무슨 부대였나요? 28 00:02:43,406 --> 00:02:47,922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처음부터요? 29 00:02:47,946 --> 00:02:51,253 네, 6·25전쟁 때부터요 30 00:02:51,277 --> 00:03:00,016 배치됐는데, 그러니까 소위가 됐을 때 제1 보병사단에 배치됐어요 31 00:03:00,040 --> 00:03:02,543 독일로 가기로 예정된 사단이었지만 32 00:03:03,321 --> 00:03:15,450 1951년 12월 어쨌든 1950년 맥아더 장군이 중국 경계로 가겠다고 결정했어요 33 00:03:15,474 --> 00:03:20,889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라 전쟁이 더 심화가 된거죠 34 00:03:20,913 --> 00:03:30,506 그래서 저희 부대는 대체 부대였고 2월 말 결국 한국에 가게 되어 35 00:03:30,765 --> 00:03:34,035 1952년 3월 초까지 있었죠 36 00:03:34,059 --> 00:03:43,322 제3 대대 의무중대에 배치되었고 제25사단, 제35연대였습니다 37 00:03:43,346 --> 00:03:53,414 당시 한국의 분지 지역으로 이동했고 한 겨울이었어요 38 00:03:54,258 --> 00:03:58,060 - 네, 2월이라고 하셨죠? - 정말 추웠어요 39 00:03:58,522 --> 00:04:05,095 - 분지였다고 하신 거죠? - 1952년 3월 1일이었어요 40 00:04:05,887 --> 00:04:18,131 그리고 당시 제3 대대 제 35연대는 경계에 있었죠 저는 대대의 외과의 조수였어요 41 00:04:18,334 --> 00:04:21,316 응급 처치 기지가 거기 있었거든요 42 00:04:23,542 --> 00:04:35,830 아직 활동 중이었지만 전쟁은 1952년 3월 어떻게든 교착기에 접어들었고 43 00:04:35,854 --> 00:04:39,968 그들은 항상 정찰을 다니며 산 위로 올라갔죠 44 00:04:40,130 --> 00:04:50,189 사실 제가 그 곳에 간 첫 날 밤에 보스턴 출신의 조 코너스라는 정말 괜찮은 의사가 있었죠 45 00:04:50,214 --> 00:04:57,852 그가 제 의사였고 전 의무중대의 대표, 즉 CEO 같은 거였죠 46 00:04:57,876 --> 00:05:00,288 뭐 편한 대로 생각하면 돼요 47 00:05:00,535 --> 00:05:06,958 제가 조 선생에게 어디에서 자야 하는지 물었더니 자기 좋은 곳을 알려줄 거라고 했죠 48 00:05:06,982 --> 00:05:10,331 저는 두 기름통들 사이에 있는 들것 위에서 잤습니다 49 00:05:10,355 --> 00:05:12,634 거기가 좋은 장소였던 거죠 50 00:05:12,658 --> 00:05:19,923 자러 가서 한밤 중에 일어났는데 네 다섯 명쯤 되는 병사들이 응급처치 기지 가운데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51 00:05:19,947 --> 00:05:24,212 그것이 6·25전쟁과의 첫 만남이었죠 52 00:05:24,923 --> 00:05:28,817 한국으로 가시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53 00:05:29,088 --> 00:05:30,537 아니요 54 00:05:30,561 --> 00:05:34,680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한국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죠 55 00:05:34,967 --> 00:05:39,752 기본적으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56 00:05:39,776 --> 00:05:46,801 남북으로 나뉘었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관련해서는 몰랐어요 57 00:05:47,249 --> 00:05:54,008 한국에 계실 때 6·25전쟁 그러니까 한국 병사들과도 접촉을 하셨나요? 58 00:05:54,032 --> 00:06:00,020 처음 거기에 갔을 때 우리 우측에 한국군 사단이 있었지만 그다지 교류는 없었어요 59 00:06:00,086 --> 00:06:07,222 좌측엔 튀르키예 연대가 있었죠 60 00:06:07,990 --> 00:06:15,663 당시엔 한국군들보다는 튀르키예 연대가 더 안심이 됐죠 61 00:06:15,687 --> 00:06:19,334 튀르키예 연대는 장기간 복무한 병사들이고, 62 00:06:19,358 --> 00:06:25,807 한국군은 유감스럽게도 이번 전쟁 일로 인해 갓 들어온 신병들이었으니까요 63 00:06:26,982 --> 00:06:33,642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한국과 첫 대면한 일에 대해 방금 말씀은 하셨는데… 64 00:06:33,666 --> 00:06:39,587 첫 대면이 그리고 좋진 않았죠 영하 10도에 제 주변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65 00:06:39,760 --> 00:06:46,528 저는 고작 22살 21살 정도된 젊은 청년이었고요 66 00:06:46,553 --> 00:06:54,400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으로 이 상황에서 그저 살아남길 바라고 있었죠 67 00:06:54,720 --> 00:06:57,071 다행히도 살아남았고요 68 00:06:57,161 --> 00:07:08,102 그런데 우리 의무중대와 연결된 민간인 한국인들이 있었어요 69 00:07:08,127 --> 00:07:10,249 그들은 이상한 일 등을 했죠 70 00:07:10,831 --> 00:07:16,774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사실 그들 중 한 명이 부상을 당해 우리가 처치를 해줬어요 71 00:07:18,729 --> 00:07:21,930 그럼 언제 한국을 떠나셨나요? 얼마나 계셨던 거죠? 72 00:07:21,954 --> 00:07:25,300 1953년 3월 중순이요 73 00:07:25,865 --> 00:07:29,504 겨울을 두 번 지냈고 여름을 한 번 지냈네요 74 00:07:31,106 --> 00:07:33,638 그럼 기억을 더듬어서, 75 00:07:33,663 --> 00:07:44,147 당시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이나 가장 위험했던 순간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76 00:07:44,171 --> 00:07:47,722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꽤 위험한 상황이었죠 77 00:07:47,746 --> 00:07:51,182 우리 대대에는 사망자가 정말 많았어요 78 00:07:51,652 --> 00:08:01,760 물론 헬리콥터로 부상자들을 MASH 병원으로 후송해갔죠, 육군이동병원이죠 79 00:08:01,784 --> 00:08:10,663 헬리콥터가 당도할 때마다 중국군과 북한군으로부터 포격을 당했어요 80 00:08:10,687 --> 00:08:13,281 당연히 항상 위험했죠 81 00:08:13,390 --> 00:08:21,421 다행인건 제가 거기에 있는 동안 전사한 위생병이 한 명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82 00:08:22,808 --> 00:08:28,029 그 친구는 운이 없었던 거죠 그래도 단 한 명이었어요 83 00:08:28,053 --> 00:08:32,756 그는 산 정상에 있는 응급 처치 기지에 있었어요 84 00:08:34,078 --> 00:08:43,878 1952년 6, 7, 그리고 8월에 저는 단장의 능선에 있었죠 85 00:08:44,605 --> 00:08:48,403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86 00:08:48,963 --> 00:08:55,890 전방은 산 정상에 있었고 반대편 산에는 중국군이 있었죠 87 00:08:56,099 --> 00:09:01,763 중대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그러니까 대대로 돌아가려면 이런 계곡을 건너가야 했는데 88 00:09:01,787 --> 00:09:07,492 중국군이 항상 박격포를 발사하고 포격전이 일어나는 곳이었어요 89 00:09:07,516 --> 00:09:10,359 거기엔 아군 탱크 몇 대가 있었죠 90 00:09:10,383 --> 00:09:13,841 거기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요 91 00:09:14,915 --> 00:09:19,182 - 부상을 당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 아니요, 없어요 92 00:09:20,682 --> 00:09:24,545 단장의 능선과 분지에 대해 말씀하신 거죠? 93 00:09:24,569 --> 00:09:32,593 우리는 예비군에 갔었죠, 그리고 콜비 도우섬이나 콜비 섬에 있었죠 94 00:09:32,617 --> 00:09:38,933 전쟁 기지의 포로들을 데리고 있는 곳이었어요 거기에 있는 동안 우리 연대는 포로들을 지키고 있었죠 95 00:09:39,305 --> 00:09:43,538 그룹의 일부 즉, 포로 중 몇을요 96 00:09:43,946 --> 00:09:47,341 거기에서 한 두 달 반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97 00:09:47,365 --> 00:09:53,198 그리고 경계 쪽으로 다시 왔죠 정확히 어디였는지 잘 모르겠네요 98 00:09:53,418 --> 00:10:00,988 다시 겨울이 돌아왔었죠, 그리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예비군에 갔었습니다 99 00:10:04,616 --> 00:10:11,960 거기 계신 동안 항상 정신없이 바쁘셨나요? 아니면? 100 00:10:11,984 --> 00:10:20,894 아니요, 처음 7개월 이후 저는 더 이상 처치 기지에 있지 않았어요 101 00:10:20,918 --> 00:10:26,614 의무중대 본부에서 박격포수 보급 장교로 있었죠 102 00:10:26,744 --> 00:10:31,986 그 때 유일하게 전방에 있었어요, 산 위로 올라가야 했고 만약을 대비해 취사장을 점검해야 했죠 103 00:10:32,010 --> 00:10:34,560 그런 일을 해야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104 00:10:34,584 --> 00:10:41,462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전방에 있는 취사장을 점검한다는 건 말이 안됐죠 105 00:10:41,486 --> 00:10:47,502 이 친구들은 그들이 먹을 것이 있다는 데 기뻐했죠 위생 상태에 대해서는 신경쓰질 않았다니까요 106 00:10:47,526 --> 00:10:50,605 하지만 어쨌든 거기에 있던 건 그 때 뿐이었죠 107 00:10:50,629 --> 00:10:56,744 그리고 실종된 트럭들이 있어서 찾으러 나가야 했습니다 108 00:10:57,677 --> 00:11:03,084 이따금씩 저는 취사반장에게 도넛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어요, 그건 참 좋았죠 109 00:11:04,097 --> 00:11:13,161 차를 타고 지나가며 한국의 시골을 볼 수 있었어요, 그냥 참 아름답더군요 110 00:11:13,185 --> 00:11:20,742 네,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 지역을 한 번 돌아볼 여유가 있으셨나요? 관광하듯이요 111 00:11:20,766 --> 00:11:28,039 제 기본 임무의 일환으로 시골을 몇 번 둘러보았어요 112 00:11:28,064 --> 00:11:34,689 도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농작물을 파는 사람들을 봤어요 113 00:11:34,714 --> 00:11:41,756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산, 그러니까 제가 부산에 잠깐 있었는데요 114 00:11:41,780 --> 00:11:47,028 우리가 복무했던 섬에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갔었죠 115 00:11:47,052 --> 00:11:54,185 물론 정신 없이 바쁜 곳이었죠 당시나 지금이나 항구가 가득 찼어요 116 00:11:54,215 --> 00:11:59,607 물론 서울은 잔해밖에 없었죠 서울이라는 도시가 없었죠 117 00:11:59,631 --> 00:12:05,224 국가보훈부의 재방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왔을 때 정말 멋진 현대 도시가 되었더군요 118 00:12:05,249 --> 00:12:09,879 네, 5년 전 방문 차 다시 오셨다고 하셨으니 119 00:12:10,065 --> 00:12:12,635 몇 가지만 잠깐 더 여쭤볼게요 120 00:12:12,659 --> 00:12:18,360 당시 시민들도 만나셨다고 했는데, 한국 민간인이었나요? 121 00:12:18,384 --> 00:12:31,032 네, 잠깐요, 당시 우리 응급 처치 기지나 의무중대 본부 주변에서 일하는 어린 소년들을 알고 있었는데 122 00:12:31,099 --> 00:12:33,174 그 아이들은 이상한 일을 하고 있었어요 123 00:12:35,326 --> 00:12:44,644 당시 가깝게 지내던 다른 군인이나 전우 중에 기억나시는 분 계신가요? 124 00:12:44,668 --> 00:12:50,155 물론 존 코너스 선생이 기억나죠 정말이지 정말 훌륭한 분이었어요 125 00:12:50,179 --> 00:12:53,781 젊고 일도 효율적으로 참 잘했죠 126 00:12:53,805 --> 00:12:59,417 처치 기지에 있던 상사도 기억이 나네요 127 00:12:59,442 --> 00:13:06,440 제가 복귀했을 때 잠깐 봤던 빌리 드레이크도 기억이 나요, 그는 브룩 군 병원에 있었죠 128 00:13:06,464 --> 00:13:09,345 거기는 제가 복무 마지막 3개월을 보낸 곳이죠 129 00:13:09,665 --> 00:13:18,019 그리고 저는 그를 잠깐 노스 캐롤라이나로 배치했죠 그리고 4년 전 그를 만나 잠깐 얘기했었네요 130 00:13:18,833 --> 00:13:22,156 그 후에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어요 131 00:13:22,832 --> 00:13:25,893 그런데 정말 두 명밖에 없었네요 132 00:13:25,917 --> 00:13:28,396 그러니까 알고 지낸 사람들이요 133 00:13:28,821 --> 00:13:30,971 그 외엔 없었네요 그저 주어진 일만 했던 거죠 134 00:13:30,995 --> 00:13:33,543 같이 복무한 사람들이야 당연히 알고 있고요 135 00:13:33,591 --> 00:13:40,269 구급차 중위도 있었어요 다 뭐 이런 사람들이었죠 136 00:13:40,293 --> 00:13:47,982 꽤 있었는데 처치 기지에만 한 30명의 병사들이 있었던 것 같네요 137 00:13:48,606 --> 00:13:57,391 지프 운전병들과 들것병들, 처치 기지 사람들, 위생병들이 있었죠 138 00:13:58,168 --> 00:14:01,063 말씀하신 것 중에 앞서 책 한 권을 보여주셨잖아요 139 00:14:01,087 --> 00:14:07,068 분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선생님이 주둔하고 계셨던 곳에 관한 내용이요 140 00:14:07,092 --> 00:14:13,640 지금까지 선생님이 알고 계신 것 중에 책에서 다루지 않은 것이 있었나요? 141 00:14:13,664 --> 00:14:16,844 꼭 그렇진 않아요 아닌 것 같아요 142 00:14:16,868 --> 00:14:20,781 물론 몇 가지 있긴 한데요 당시엔 심각했죠 143 00:14:21,497 --> 00:14:37,395 하지만 단장의 능선 지역에 있을 때 그들은 이런 산들이 있는 협곡 입구에서 기관총을 가지고 있었죠 144 00:14:38,096 --> 00:14:44,839 어느 날 밤 기관총이 발사됐고 대대장이 말했죠 145 00:14:45,001 --> 00:14:51,375 무전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본인이 내려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146 00:14:51,399 --> 00:14:57,752 그리고 취사병, 위생병까지 모두 무장을 하라고 했죠 147 00:14:58,015 --> 00:15:03,491 그래서 우리 모두 열을 맞추고 있었고 아니길 바랐지만 방아쇠를 당겨 아군들을 죽였죠 148 00:15:03,515 --> 00:15:07,995 이 소총들로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도 몰랐죠 149 00:15:08,432 --> 00:15:14,475 그리고 대대장이 와서 쏘지 말라며 주력이 오고 있다고 말했어요 150 00:15:14,500 --> 00:15:20,176 그는 총에 맞아 맞아 죽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다행히 거기에 아무도 없었던 거죠 151 00:15:20,556 --> 00:15:24,178 하지만 탱크에서 온 부상병들이 있었어요 152 00:15:24,258 --> 00:15:28,816 기관총은 탱크에서 비롯한 거였지만 실제로 부상병들이 있었죠 153 00:15:28,986 --> 00:15:36,657 당시 그 지역에 관해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이 정도인 것 같네요 154 00:15:37,620 --> 00:15:44,577 한 번은 물건들이 없어지는 바람에 PX에서 재고를 가져와야 했어요 155 00:15:44,601 --> 00:15:48,835 누군가 PX 물건을 훔쳐간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을 했죠 156 00:15:49,169 --> 00:15:55,576 하루는 트럭이 없어져서 그 트럭을 찾을 수 있을 지 확인하러 가야했죠 157 00:15:55,826 --> 00:16:03,584 한 번은 사고가 있었어요 전 그 사고 보고서를 검토했죠 158 00:16:04,131 --> 00:16:09,285 기본적으로 제가 하는 일이 그거였어요 159 00:16:09,309 --> 00:16:11,422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160 00:16:12,206 --> 00:16:16,196 한국에 돌아가셨을 때 어떠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161 00:16:16,220 --> 00:16:19,300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그리고 거기에 계실 때 어떠셨나요? 무슨 일을 하셨죠? 162 00:16:19,324 --> 00:16:28,843 결국 6·25전쟁 참전 용사 재단에 가입하기로 결정했죠, 재단 잡지가 있더군요 163 00:16:28,867 --> 00:16:37,681 기사 내용 중 하나가 국가보훈부의 한국 재방한 프로그램에 아직 자리가 있다는 거였어요 164 00:16:39,824 --> 00:16:44,770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죠 그래서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165 00:16:44,916 --> 00:16:56,871 1975년부터 한국 정부가 100명의 참전 용사들과 가족이 있다면 1명에서 2명 정도 대동해서 데려가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군요 166 00:16:57,519 --> 00:17:02,159 정말이지 놀라웠어요 167 00:17:02,232 --> 00:17:09,438 항공료, 호텔, 음식, 관광 비용을 전액 지불해 준다고 했거든요 168 00:17:09,589 --> 00:17:17,311 우리 중 몇 명은 받은 선물이 너무 많아서 그걸 가져오려고 추가로 짐 가방을 사야 했다고 하더군요 169 00:17:17,335 --> 00:17:18,626 놀랐죠 170 00:17:18,650 --> 00:17:23,619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죠, 한국 사람들이요 171 00:17:23,643 --> 00:17:28,602 저는 부통령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어요 172 00:17:28,626 --> 00:17:30,667 그리고 훈장을 받았죠 173 00:17:32,720 --> 00:17:41,151 제가 참전 용사 주간에 GH 컨퍼런스에 있었다는 걸 얘기했나 모르겠네요 174 00:17:41,175 --> 00:17:46,687 참전 용사의 날에 오바마 대통령이 GH 컨퍼런스에 있었고 175 00:17:46,711 --> 00:17:53,645 미대통령이 거기 참석했던 병사들과 참전 용사들을 위해 참전 용사의 날에 연설을 했죠 176 00:17:53,669 --> 00:18:01,602 그리고 사실 우리 그룹이 영예 훈장을 받았는데 정말 특별한 거였죠 177 00:18:02,165 --> 00:18:05,677 - 받으신 분이 누구였나요? - 어딘가에 그 이름이 있을텐데 178 00:18:05,702 --> 00:18:11,245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통령이 직접 와서 그에게 말했었죠 179 00:18:12,946 --> 00:18:19,486 그럼 1953년으로 다시 돌아가서, 돌아오셨을 때 180 00:18:19,510 --> 00:18:22,705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어떠셨나요? 181 00:18:22,729 --> 00:18:30,397 최고였죠, 문제는 마지막 3개월이었어요 저는 샌 안토니오로 다시 배정이 됐고 182 00:18:30,750 --> 00:18:35,636 당시 거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시가 아니었거든요 183 00:18:35,660 --> 00:18:45,446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병사들이 돌아올 때와는 달랐어요 184 00:18:45,470 --> 00:18:51,418 돌아온 병사들에 대해 그만큼 신경쓰는 사람들이 없었죠 185 00:18:51,442 --> 00:18:56,440 집으로 돌아와 하던 일로 복귀했고 그게 다였어요 186 00:18:57,026 --> 00:19:03,058 참전했던 병사들의 가족들만이 진심으로 신경을 많이 썼죠 187 00:19:03,083 --> 00:19:06,433 신경을 쓴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우린 알 수가 없었죠 188 00:19:06,834 --> 00:19:09,169 그게 참 서글펐어요 189 00:19:10,020 --> 00:19:14,975 집으로 돌아오시고 나서 한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190 00:19:15,889 --> 00:19:18,612 이따금씩요, 사실 그랬죠 191 00:19:18,636 --> 00:19:26,045 물론 사진도 꽤 많고요, 가끔씩 그 사진들을 꺼내 볼 때마다 생각했죠 192 00:19:26,069 --> 00:19:35,082 물론 남한이 훌륭한 국가로 거듭난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193 00:19:35,106 --> 00:19:41,268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없었다면 그들은 북한과 같이 공산주의 체제 하에 있었겠죠 194 00:19:41,292 --> 00:19:44,872 오늘날의 그런 국가가 될 수 없었을 거에요 195 00:19:45,458 --> 00:19:52,112 그래서 남한 국민들이 그걸 알고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것일 수도 있죠 196 00:19:52,136 --> 00:19:55,082 정말 멋진 일이에요 197 00:19:55,106 --> 00:20:07,907 사실 제가 알기로 미국이 참전하여 구해준 나라들 중 이런 식으로 감사 표시를 하는 국가는 남한이 유일해요 198 00:20:07,932 --> 00:20:09,997 정말 훌륭하죠 199 00:20:11,140 --> 00:20:17,278 6·25전쟁이 선생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200 00:20:17,302 --> 00:20:21,909 글쎄요, 21살 청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경험이었어요 201 00:20:22,090 --> 00:20:27,815 그 자체가 그랬죠, 그리고 집에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 기뻤고요 202 00:20:28,890 --> 00:20:32,825 집으로 돌아오신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약사로 일했다고 하셨죠? 203 00:20:32,849 --> 00:20:38,358 그 때 제 약국이 있었고 사실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영하고 있던 약국이 많았어요 204 00:20:38,734 --> 00:20:40,129 대단하시네요 205 00:20:40,400 --> 00:20:50,537 젊은 세대가 계속해서 6·25전쟁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더 전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206 00:20:51,117 --> 00:20:53,107 관련 책이 정말 많아요 207 00:20:53,131 --> 00:21:00,733 6·25전쟁 참전 용사 재단 사이트에 가보면 다양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죠 208 00:21:01,224 --> 00:21:06,966 물론 워싱턴 D,C,에는 6·25전쟁 현충원도 있고요 209 00:21:06,990 --> 00:21:11,725 가본 적은 없지만, 정말 멋진 곳이라는 건 알아요 210 00:21:11,749 --> 00:21:17,297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많아요 211 00:21:17,321 --> 00:21:25,044 미국 역사 중 상당히 극적인 순간이었죠 212 00:21:25,068 --> 00:21:31,145 젊은 친구들 모두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해요 213 00:21:31,169 --> 00:21:36,416 냉전 등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니까요 214 00:21:37,147 --> 00:21:41,021 할 얘긴 이제 다 한 것 같네요 215 00:21:41,272 --> 00:21:45,312 -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천만에요

구술자정보

목록
구술자 / 생년월일
Richard Allen Franklin / 19290730
국가 / 소속 및 직위
미국 / 육군 한국 외과 전문의
주요활동
펀치볼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 부상자 치료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구술장소
구술요약
리차드 앨런 프랭클린은 1929년 7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우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약사로 졸업한 뒤 1950년 12월 미 육군으로 징집됐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포트 오드에서 기초 및 보병 훈련을 받은 뒤 군의관이 되기 위해 브룩 육군 병원으로 갔습니다. 1952년 2월 소위로서 한국으로 파병되어 제25사단 제35연대 의무 중대 제3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외과 전문의로 복무했고 이후 펀치볼 지역과 단장의 능선에서 취사실 검역관으로 복무했습니다. 1953년 3월 미국으로 돌아왔고 군 복무에서 전역했습니다. 약사로서 성공하여 로스앤젤레스에 다수의 약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KWVA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