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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 Nam Young Park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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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0:05,247 --> 00:00:07,761 제 이름은 박남 입니다 2 00:00:07,785 --> 00:00:11,867 한국 이름은 박남영이고요 3 00:00:12,000 --> 00:00:17,239 저는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실제 북한이요 4 00:00:17,263 --> 00:00:19,861 - 북한에서 태어나셨다고요? - 북한이요 5 00:00:19,885 --> 00:00:25,612 1931년 3월 15일에 태어났고요 6 00:00:26,300 --> 00:00:30,051 6살 때였던 것 같은데, 7 00:00:30,075 --> 00:00:42,564 아버지께서 둑에서 전라남도 그러니까 남서쪽 모서리에 있는 목포로 이사했죠 8 00:00:42,699 --> 00:00:47,067 저는 목포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공립 학교였죠 9 00:00:47,351 --> 00:00:53,236 그리고 1950년 4월 30일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10 00:00:53,327 --> 00:01:04,566 고려대에 합격하고 4월 31일에 고향을 떠났어요 11 00:01:05,133 --> 00:01:14,828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30일도 안돼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했죠 12 00:01:14,995 --> 00:01:20,017 그 전쟁으로 인해 저의 교육은 미뤄졌고 13 00:01:20,041 --> 00:01:28,633 북한에 점령된 상태로 3개월간 서울에 있어야 했어요 14 00:01:29,020 --> 00:01:51,452 고향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지 않았던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저는 일명 호국단의 단장이었죠 15 00:01:51,743 --> 00:02:00,116 영어로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요 학생호위대라고 할까요 16 00:02:00,140 --> 00:02:08,583 그래서 저는 목포에서 적극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에 맞서 싸웠죠 17 00:02:08,607 --> 00:02:12,795 그래서 고향에 가는 것이 두려웠어요 18 00:02:12,819 --> 00:02:16,157 그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무슨 일을 해야 했었나요? 19 00:02:17,771 --> 00:02:22,312 사실 전쟁 발발 전, 20 00:02:22,810 --> 00:02:34,102 1950년 전기에는 남한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매우 심했어요 21 00:02:34,282 --> 00:02:45,300 특히 일명 여순10.19사건, 제주4.3사건이 발생한 후에 더 그랬어요 22 00:02:45,324 --> 00:02:51,166 다시 말해 제 고향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이 정말 너무 심했죠 23 00:02:51,190 --> 00:03:01,827 특히 대한민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이 목포였고 저희 집과 가까웠어요 24 00:03:01,851 --> 00:03:10,111 그가 속했던 단체가 경찰서 중 한 곳을 공격해 불을 질렀던 것을 아직도 기억해요 25 00:03:10,135 --> 00:03:25,199 공산주의 운동에 맞서 싸울 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26 00:03:25,223 --> 00:03:34,836 사실 저는 공산당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정말 무서웠어요 27 00:03:36,259 --> 00:03:50,605 하지만 어쨌든 3개월 막판에 50명의 북한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고 28 00:03:50,629 --> 00:03:58,580 서울에서 약 27일 간 포로 생활을 했죠 29 00:03:58,604 --> 00:04:01,709 - 어디에서 포로로 잡히신 건가요? 서울에서요? - 서울에서요 30 00:04:01,733 --> 00:04:10,586 방어 감옥이라고 하는 데에서, 그들이 국방보안대라고 불렀던 것 같네요 31 00:04:10,706 --> 00:04:12,774 어떻게 포로로 잡히셨나요? 32 00:04:13,823 --> 00:04:24,486 분명히, 매일 밤 그들은 젊은 남자나 반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수색하고 있었어요 33 00:04:24,600 --> 00:04:33,728 확실히 이웃 중 한 사람이 보거나 알아챈 거죠 전 친척 집에서 살고 있었죠 34 00:04:34,188 --> 00:04:37,891 그래서 그들이 고발했던 것 같아요 35 00:04:37,998 --> 00:04:42,103 그렇게 어느날 밤에 새벽 2시 쯤 36 00:04:42,574 --> 00:04:46,040 트럭 두 대가 와서 집을 포위했죠 37 00:04:46,229 --> 00:04:48,743 전 천장에 숨어 있었어요 38 00:04:49,004 --> 00:04:58,090 매일 밤마다 어두워지면 전 천장에 숨어있거나 낮에는 지하에 숨어있었죠, 왜냐하면 날씨가 너무 더웠거든요 39 00:04:59,154 --> 00:05:09,297 공산당들이 저를 찾기 시작해서 긴 총검으로 찔러댈 때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40 00:05:09,321 --> 00:05:24,430 그 때 어머니께서 소리를 지르셨고 북한 경비들은 윗층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41 00:05:24,454 --> 00:05:27,849 그리곤 총으로 쏠 거라고 당장 내려오라고 했어요 42 00:05:28,823 --> 00:05:40,581 그렇게 저는 항복했고 보안대에서의 감옥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43 00:05:40,605 --> 00:05:51,005 - 그럼 27일간 포로로 계신 건가요? - 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한 일주일 전까지요 44 00:05:51,029 --> 00:05:56,146 감옥에 계실 때 얘기 좀 더 해주실 수 있을 까요? 포로로 계실 때 생활은 어떠셨나요? 45 00:05:56,170 --> 00:06:01,549 고등학교에 때 단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46 00:06:01,573 --> 00:06:13,361 그러니까 호국단, 그들은 이렇게도 불렀죠 한용이라고 한국 학생 단체죠 47 00:06:13,385 --> 00:06:21,796 거기의 단장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학생에 맞서는 학생 단체 중 가장 세력이 강했죠 48 00:06:21,836 --> 00:06:28,176 그래서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공산주의 학생들을 많이 잡았었어요 49 00:06:29,714 --> 00:06:32,797 그러니 제가 목표 중 하나였죠 50 00:06:32,821 --> 00:06:40,521 재밌는 건 공산당이 서울을 점령한 후 3일 째, 51 00:06:40,668 --> 00:06:49,097 고려대학교 공산주의 학생이 저희 삼촌 댁에 찾아와 저를 찾았지만 52 00:06:49,121 --> 00:07:00,275 이미 삼촌께 누구든 절 찾으러 오면 무조건 고향으로 갔다고 말하라고 언질을 해 놓았었죠 53 00:07:00,547 --> 00:07:06,952 그래서 고향에 닿기 전에 제가 만약 호남지역으로 갔다면 전 분명 잡혔을 거에요 54 00:07:06,976 --> 00:07:13,285 이것이 전쟁 중 겪었던 일 중 첫 도입부에 해당하죠 55 00:07:13,309 --> 00:07:18,059 포로 생활 중 겪었던 일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당시 어떤 처우를 받으셨나요? 56 00:07:19,263 --> 00:07:24,933 이건 별개로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57 00:07:25,054 --> 00:07:29,389 항상 교회에서 얘기하며 떠올릴 때마다 힘든 부분이죠 58 00:07:30,007 --> 00:07:35,063 하루에 식사는 한 끼였고 밥은 아니었죠, 그게 다에요 59 00:07:36,258 --> 00:07:41,581 저는 육군 제1훈련소로 갔어요 60 00:07:41,754 --> 00:07:52,565 훈련 기간 동안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 중 한 명이 저를 찾아와 61 00:07:53,378 --> 00:07:56,698 영어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물었죠 62 00:07:56,722 --> 00:08:04,472 제가 대학생이라고 말하니, 제가 영어를 할 수 있었기에 제25사단에서 뽑혔고 미 제5공군에서도 선발됐죠 63 00:08:05,719 --> 00:08:12,600 그리고 그는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이 여기 제주도에 있다고 설명했죠 64 00:08:12,624 --> 00:08:30,149 그리고 통역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 당시 본부에는 통역 부대도 있었어요 65 00:08:30,669 --> 00:08:34,796 그래서 훈련 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66 00:08:36,749 --> 00:08:44,461 저를 전방에 보내는 대신 통역 부대로 보낼 거라고 했어요 67 00:08:44,827 --> 00:08:53,124 그렇게 바로 저는 통역병으로서 주요 자리 중 하나로 배치됐죠 68 00:08:53,148 --> 00:08:56,624 전방에 가지 않게 되어 조금이나 안심이 됐었나요? 69 00:08:57,150 --> 00:09:01,838 5일도 안되어 학우들 모두 전방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70 00:09:01,862 --> 00:09:10,271 그러니 일등병으로서 통역병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었죠 71 00:09:10,761 --> 00:09:17,843 당시 정말 유명한 장군들이 많이 왔다 갔어요 72 00:09:17,867 --> 00:09:23,211 벤 프리츠, 리즈웨이, 백선엽 장군이 있었죠 73 00:09:23,235 --> 00:09:27,865 그리고 훈련소, 훈련 부대에서 통역을 하고 있었죠 74 00:09:27,889 --> 00:09:35,797 박 장군과 백선엽 장군이 저의 통역을 듣고는 75 00:09:36,609 --> 00:09:42,970 통역 장교 부대에 왜 지원하지 않았냐고 물었죠 76 00:09:43,056 --> 00:09:51,912 그래서 몰랐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랬냐며 실력이 있으니 통역 장교가 될 거라고 했었죠 77 00:09:52,259 --> 00:09:58,740 그 때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에서 저를 추천하여 대구로 가게 됐어요 78 00:09:59,099 --> 00:10:11,199 당시 부관 학교가 있었는데, 장교들을 위한 1개월 훈련 코스가 있는 통역 학교였죠 79 00:10:11,716 --> 00:10:16,971 졸지에 일등병에서 중위가 된 겁니다 80 00:10:19,141 --> 00:10:25,279 - 고속 승진인 거네요 - 일등병에서 중위로 고속 승진한 거죠 81 00:10:26,564 --> 00:10:35,490 물론 저의 자원 입대 기록에는 복무 기간이 3개월이나 1개월로 되어있죠 82 00:10:35,689 --> 00:10:39,993 한국병으로서, 자원 입대한 한 남자의 인생은... 83 00:10:42,548 --> 00:10:46,290 음식은 너무 형편 없었죠 84 00:10:46,782 --> 00:10:52,498 밥 양도 그렇고 국은 그냥 상상 밖이었죠 85 00:10:54,078 --> 00:11:08,956 하지만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 장교들이 순찰을 돌 때에 우린 밥을 한가득 퍼 담을 수 있었고 콩나물 국을 먹을 수 있었죠 86 00:11:09,677 --> 00:11:14,562 여전히 그 당시 기억이 맴도네요 87 00:11:14,586 --> 00:11:20,601 어떻게 한국 정부가 자신의 병사들을 그런 식으로 대우할 수 있는지, 88 00:11:20,625 --> 00:11:26,674 정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정량과 같은 것 말이죠 89 00:11:28,458 --> 00:11:39,020 이제 흥미로운 건 제가 일등병 통역병으로, 영어 통역병으로 일할 당시 유명한 미국 장군들을 많이 만났었죠 90 00:11:39,342 --> 00:11:53,868 그들은 인상 깊었는지 중위 계급의 한영 통역 장교들이 정말 많은데, 저는 일등병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91 00:11:55,264 --> 00:11:58,806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는데, 92 00:11:58,830 --> 00:12:04,724 백선엽 장군이 저를 막 발견한 듯 제게 말했죠 93 00:12:04,748 --> 00:12:08,654 일등병으로 있으면 안되니 중위로 진급시켜주겠다고 말이죠 94 00:12:08,678 --> 00:12:17,283 당시 장군 말 한 마디면 하루 아침에 일등병에서 중위가 되는 거죠 95 00:12:17,307 --> 00:12:20,595 봉급 차이가 어떻게 됐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96 00:12:20,619 --> 00:12:28,829 처음 미군에 지원하기로 결심한 때부터 일등병에서 중위로 진급하게 될 때까지 봉급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97 00:12:28,853 --> 00:12:30,304 봉급액이요? 98 00:12:30,328 --> 00:12:36,162 물론 미군 부대에서 일할 때, 당시 얼마였는지는 모르겠는데 99 00:12:36,667 --> 00:12:38,846 많이 받았어요 100 00:12:39,119 --> 00:12:44,085 밤에 친구들과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았어요 101 00:12:44,109 --> 00:12:53,960 물론 일하는 동안 부대 잠자리나 식사도 괜찮았고 24시간 내내 커피도 마실 수 있었죠 102 00:12:54,599 --> 00:12:56,374 카투사였나요? 103 00:12:56,430 --> 00:12:58,551 아니요, 비전투병이었죠 104 00:12:58,575 --> 00:13:04,572 한국 육군에 입대했을 때는 1달러였나 모르겠어요 105 00:13:05,318 --> 00:13:08,576 1달러도 안됐어요 치약을 살 수가 없었거든요 106 00:13:08,906 --> 00:13:15,783 그래서 당시 지원해서 입대했던 친구들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되면 돈이 있었어요 107 00:13:16,733 --> 00:13:21,155 부모님이 훈련소에 면회를 오셨고 돈을 받았죠 108 00:13:21,633 --> 00:13:30,898 그리고 장교가 됐을 때, 장교 숙소가 주어졌죠 109 00:13:31,276 --> 00:13:37,964 음식도 제가 먹던 거에 비하면 완전히 달랐어요 110 00:13:37,988 --> 00:13:43,786 장교 식사는 한 1000배는 달랐어요 111 00:13:43,810 --> 00:13:46,421 국에 고기가 있었죠 112 00:13:46,566 --> 00:13:53,349 물론 장교 식당에는 김치도 있고 두어가지 반찬도 있었어요 113 00:13:53,833 --> 00:13:57,725 그리고 봉급은 월 20달러 정도였어요 114 00:13:59,069 --> 00:14:01,429 군복은 깨끗했죠 115 00:14:01,453 --> 00:14:08,803 매일 밤 자유롭게 나갔다가 돌아올 수 있었죠 116 00:14:08,828 --> 00:14:15,546 - 그럼 괜찮은 승진이었네요 - 일종의 천국과 지옥이었죠 117 00:14:15,570 --> 00:14:19,118 - 제주도에 있었나요? - 네, 제주도에 있다가 논산으로 갔어요 118 00:14:19,142 --> 00:14:21,591 - 논산이요? - 논산 외곽에 있었죠 119 00:14:21,615 --> 00:14:23,641 - 당시... - 언제였나요? 120 00:14:23,665 --> 00:14:26,983 - 제주도에는 언제 가셨죠? - 1951년에 갔어요 121 00:14:27,007 --> 00:14:28,951 - 1951년이요? - 네 122 00:14:29,953 --> 00:14:33,060 제주도에서 주로 무슨 임무를 맡으셨나요? 123 00:14:33,254 --> 00:14:34,562 훈련소요 124 00:14:34,586 --> 00:14:40,501 - 다른 한국 병사들을 훈련시킨 건가요? - 아니요, 훈련을 받으러 간거죠 125 00:14:40,856 --> 00:14:44,605 - 기초 훈련, 보병 훈련이요 - 아, 네 126 00:14:44,695 --> 00:14:52,246 그 때 그들이 절 알았지만 1개월 또는 3개월의 훈련을 받아야 했죠 127 00:14:52,270 --> 00:14:59,520 그리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육군이 된 겁니다 128 00:15:00,144 --> 00:15:03,491 그리고 저는 또 다른 통역병으로 배정됐죠 129 00:15:04,500 --> 00:15:10,231 그 후 장교가 되면서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죠 130 00:15:10,255 --> 00:15:11,738 정말 행복했어요 131 00:15:12,451 --> 00:15:15,636 통역관으로서, 주로 무슨 임무를 맡으셨나요? 132 00:15:15,660 --> 00:15:18,396 실제로 누구를 보필하셨나요? 133 00:15:18,420 --> 00:15:24,678 - 주요 임무가 뭐였죠? - 한국 육군에서 처음에는 134 00:15:25,358 --> 00:15:32,001 500명의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이 있었어요 135 00:15:32,025 --> 00:15:40,428 KMAG라고 불렀죠. 한국 군사, 그러니까 모든 미군 고문단들은 모든 한국 부대에 소속됐었죠 136 00:15:40,452 --> 00:15:53,222 그들이 맡은 임무는 한 가지, 보급 그리고 병사들이 지정된 양의 음식을 제공 받는지 확인하는 등의 일이었죠 137 00:15:54,837 --> 00:16:08,344 통역병들, 장교들, 전방에 있는 사람들로 편성되어, 제가 특히 유엔군에 있을 당시 폭탄이 떨어졌을 때 대포 등을 쏘았어요 138 00:16:09,063 --> 00:16:17,364 진군했을 때, 진군, 퇴군 중에요 모든 통역관들이 행동을 개시합니다 139 00:16:17,389 --> 00:16:20,034 일을 잘했었죠 140 00:16:20,567 --> 00:16:33,080 그런데 저는 운이 좋게도 논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로 다시 배치되었어요 141 00:16:35,609 --> 00:16:55,749 당시 육군에서 통역관, 군의관 그리고 뭐라고 불렀더라, 법을 다루는… 법무관인가요? 142 00:16:56,262 --> 00:16:58,206 - 판사요? - 판사요 143 00:16:58,230 --> 00:17:00,441 엘리트 그룹이었죠 144 00:17:00,629 --> 00:17:04,979 그들은 모두 선발됐어요 대학생이거나 대학 교육을 받았죠 145 00:17:05,003 --> 00:17:11,734 그래서 특히 통역관들은 엘리트 그룹 중 하나로 여겨졌죠 146 00:17:12,914 --> 00:17:26,167 영어 통역관들은 부대장에서 대장으로, 대장을 위한, 전속부관이 되죠 147 00:17:26,191 --> 00:17:28,351 통역관들이 많았나요? 148 00:17:28,375 --> 00:17:32,139 네, 논산에 18명 정도 있었어요 149 00:17:32,163 --> 00:17:37,503 통역관 부대가 있었죠 150 00:17:37,703 --> 00:17:48,188 그래서 매일 군사 고문과 함께 나가서 훈련 세션을 확인하고 통역하죠 151 00:17:48,605 --> 00:17:53,427 미 장군들이 꽤 많았는데 프랑스인도 있었죠 152 00:17:53,451 --> 00:18:03,175 프랑스어를 하는 외국 장군들이 훈련 센터를 관찰하러 오면 제가 통역을 했죠 153 00:18:03,199 --> 00:18:11,612 당시 벤 프리츠 등 유명한 장군들은 다 만났었죠 154 00:18:12,996 --> 00:18:21,589 그 때 전 대장쪽 소속이었어요 155 00:18:22,035 --> 00:18:31,036 불어로 부관이라고 했죠 그렇게 저는 대장의 부관이 됐어요 156 00:18:31,060 --> 00:18:45,012 그렇게 육군에서의 제 생활은 대장과 연결되면서 나쁘지 않았어요, 준비를 하고 비서일 등을 했죠 157 00:18:45,230 --> 00:18:56,590 그리고 당시 1953년에서 1954년까지 통역관들 중 다수가 미국으로 해외로 갔고 158 00:18:57,244 --> 00:19:00,894 저도 갔었죠 159 00:19:02,321 --> 00:19:11,739 저는 미국 학교에 지원했고 1956년 데이비슨 대학에 들어갔어요 160 00:19:13,324 --> 00:19:22,583 저는 특별히 국방 장관 특명으로 전역하고 유학을 갔었죠 161 00:19:22,608 --> 00:19:28,389 그렇게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교육을 받았고 역사를 전공했어요 162 00:19:28,867 --> 00:19:36,629 역사 전공으로 휴스턴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죠 163 00:19:36,913 --> 00:19:43,504 근데 휴스턴은 1960년 당시, 신흥 도시였죠 164 00:19:43,528 --> 00:19:46,834 저는 지질학으로 바꾸고 165 00:19:48,285 --> 00:19:55,671 이후 화석, 대부분 실제로 석회질의 초미화석 전문 미고생물학자가 되었죠 166 00:19:55,695 --> 00:20:06,260 석회질 초미화석 전문이었죠 167 00:20:06,400 --> 00:20:09,979 그러니까 저는 당시 정말 운이 좋았어요 168 00:20:10,003 --> 00:20:13,300 1960년에 전자 현미경이 도입됐어요 169 00:20:13,487 --> 00:20:20,274 초미화석 연구의 새로운 분야는 기름을 찾는 거였죠 170 00:20:20,869 --> 00:20:22,726 제가 첫 주자였고요 171 00:20:22,755 --> 00:20:30,992 걸프 오일에서 저를 고용했고 저는 컬럼비아 대학, 마이애미 대학에 교육을 받으러 갔었죠 172 00:20:32,294 --> 00:20:39,660 미국에는, 당시 전문 교수가 세 명밖에 없었죠 173 00:20:39,684 --> 00:20:41,929 정유회사는 돈이 많지 않았어요 174 00:20:42,243 --> 00:20:50,571 그래서 걸프 회사는 저를 개인적인 교육을 받도록 보냈어요 1 대 1 로 교수님들에게서 교육을 받은 거죠 175 00:20:50,944 --> 00:20:54,174 기름을 찾는 방법인 거죠 176 00:20:54,198 --> 00:20:57,144 당시 다른 주제들로 정말 유명했어요 177 00:20:57,168 --> 00:21:04,547 저는 초미화석에 호기심이 있어서 전공으로 하게 됐죠 178 00:21:04,571 --> 00:21:11,307 한참 뒤에 남미 지질학자로 남부 교육에 배정됐었죠 179 00:21:11,331 --> 00:21:16,764 그렇게 걸프 연구 센터에서 31년간 일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죠 180 00:21:16,968 --> 00:21:22,610 그리고 여기 휴스턴에 정착했고요 181 00:21:22,634 --> 00:21:31,197 당시 불어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1960년에 휴스턴으로 온 건 제가 처음이었죠 182 00:21:31,403 --> 00:21:35,436 - 아내 분은 한국에서 만나셨나요? - 아니요. 이것도 재밌는 게 183 00:21:35,460 --> 00:21:40,921 4학년 때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소개팅을 했어요 184 00:21:40,945 --> 00:21:44,158 한 3년간 한국인은 만난 적이 없었죠 185 00:21:44,182 --> 00:21:50,531 당시 남부에서 한국 여성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죠 186 00:21:54,056 --> 00:22:00,454 데이비슨 전문대의 남학생 사교클럽에서 윈터 댄스 파티를 열었고 187 00:22:01,133 --> 00:22:06,612 한국 소녀를 알게되어 소개팅을 했어요 188 00:22:08,646 --> 00:22:13,487 마침내 2년 뒤 우린 결혼해서 휴스턴에 정착했어요 189 00:22:13,815 --> 00:22:19,560 그리고 한국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한 걸 알았죠 190 00:22:19,700 --> 00:22:27,768 그렇게 5명 정도 한국인들이 모여 재미교포 재단을 만들었고 그렇게 시작했죠 191 00:22:28,025 --> 00:22:34,174 - 선생님이 그걸 시작하셨다고요? - 네, 1961년 초였어요 192 00:22:34,509 --> 00:22:38,745 고작 8, 9명이 다였죠 193 00:22:40,059 --> 00:22:49,767 게다가 한국군 14 가정이 여기에 정착했었죠 194 00:22:49,791 --> 00:22:58,331 사실 그들 모두 하나가 되어 한국 재단 결성을 돕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썼죠 195 00:22:58,355 --> 00:23:14,248 그들은 외로웠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오는 사람마다 한국인 단체를 결성하자고 요구하고 권장했었죠 196 00:23:14,272 --> 00:23:16,188 그렇게 다같이 모이게 됐어요 197 00:23:16,293 --> 00:23:22,489 시청자들께 남북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의 차이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198 00:23:24,923 --> 00:23:26,198 어떻게 다른가요? 199 00:23:26,222 --> 00:23:32,666 많은 여성들이 뉴스, 신문 그리고 요즘엔 이메일을 보고 확인하죠 200 00:23:32,690 --> 00:23:38,105 남한에서 북한 사람들의 이메일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 00:23:38,129 --> 00:23:42,242 전 매일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알고 있었죠 202 00:23:42,745 --> 00:23:49,750 정말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203 00:23:50,270 --> 00:23:59,092 휴스턴에 있는 많은 교회에서 선교사들과 음식을 보내죠, 지금은 중단 상태고요 204 00:24:00,045 --> 00:24:07,968 누가 방문했고 누가 북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관찰했는지 우린 알고 있어요 205 00:24:09,299 --> 00:24:16,944 그리고 남한을 보면 경제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죠 206 00:24:17,165 --> 00:24:21,448 한국에 갈 때마다 보통 1년에 한 번은 가는데, 207 00:24:22,602 --> 00:24:25,821 남한 사람들은 정말 옷을 잘 입죠 208 00:24:26,001 --> 00:24:40,367 미국보다 나은 것 같아요. 옷을 잘 입고 매일 밤 술집이나, 노래방에 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인생을 즐기죠 209 00:24:41,430 --> 00:24:48,275 어떻게 사람들이 6·25전쟁과 공산당의 침략을 잊을 수 있겠어요? 210 00:24:48,389 --> 00:24:54,581 그들은 그냥 친공산주의자가 되고 있어요 이해할 수가 없었죠 211 00:24:54,605 --> 00:25:01,088 오늘날 청년들은 제가 보기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212 00:25:01,467 --> 00:25:03,589 휴스턴도 마찬가지죠 213 00:25:03,887 --> 00:25:15,068 6·25전쟁을 겪었던 노인들은 공산주의 운동과 친공산주의 단체에 정말 적대적이죠 214 00:25:16,001 --> 00:25:18,229 매년 한 번씩 한국에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215 00:25:18,253 --> 00:25:23,942 선생님이 직접 보신 것들과 어떻게 오늘날처럼 그렇게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216 00:25:29,058 --> 00:25:32,986 제가 갔을 때는, 10년 전이었는데요 217 00:25:33,314 --> 00:25:41,962 건물의 외관이 그냥 건물, 거리, 그리고 경관이 218 00:25:42,978 --> 00:25:51,128 그리고 모든 병원 등이 그저 현대적이고 멋졌어요 219 00:25:53,041 --> 00:25:58,557 이것이야 말로 한국 정부의 발전이라 할 수 있겠죠 220 00:25:58,581 --> 00:26:12,076 당시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한국인들은 최상급 대학들과 전문대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죠 221 00:26:12,276 --> 00:26:19,802 한 번도 남한이 그렇게 풍요로워지고 팽창하고 성장해서 상위권으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나요? 222 00:26:19,826 --> 00:26:28,842 천천히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어요 223 00:26:29,813 --> 00:26:34,153 물론 한국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죠 224 00:26:34,685 --> 00:26:43,523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유신 정권 초반에 저는 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어요 225 00:26:44,580 --> 00:26:47,661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대단한 업적을 남겼죠 226 00:26:47,961 --> 00:26:57,104 1971년 미국에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에게 가서 한국으로 오라고 했고 227 00:26:57,335 --> 00:27:03,610 우리가 하는 일을 알고 있던 유일한 대통령이었죠 228 00:27:04,874 --> 00:27:12,085 한국을 위해 일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 벌고 있는 돈만큼 지불하겠다고 했어요 229 00:27:13,018 --> 00:27:16,356 박 전 대통령은 한국인 과학자들을 초대했어요 230 00:27:16,380 --> 00:27:21,037 1971년 처음으로 50명의 한국인 과학자들을 초대했었죠 231 00:27:21,061 --> 00:27:25,932 저도 그 중 한 명으로 한국에 갔었고요 좋은 대접을 받았죠 232 00:27:26,676 --> 00:27:39,212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고국으로 돌아와 배운 것을 보여주고 한국을 위해 일해달라고 애원했죠 233 00:27:39,236 --> 00:27:48,368 그래서 한국에 KIST, 한국 과학기술 연구소가 생겼고 모든 게 바뀌었죠 234 00:27:50,588 --> 00:27:59,365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경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죠 235 00:28:00,078 --> 00:28:06,806 1960년대, 70년대 평균 임금은 90달러 정도였어요 236 00:28:07,053 --> 00:28:15,315 이제는, 어제 타임지에서 읽었는데 소득 수준이 거의 미국과 비슷하더군요 237 00:28:16,853 --> 00:28:20,921 정말 놀랍죠 그렇게 작은 나라인데도 말이죠 238 00:28:21,186 --> 00:28:28,228 6·25전쟁 당시 희생과 기여에 대해 젊은 세대가 이해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239 00:28:28,252 --> 00:28:30,564 물론이죠 240 00:28:32,651 --> 00:28:38,949 현재 한국 청년들이 교육은 잘 받고 있지만 그들이 배우고 싶어한다 해도 241 00:28:38,973 --> 00:28:50,984 1950년 6·25전쟁 당시에 우리가 겪었던 것에 대해 그렇게 깊이 관심을 갖진 않는 것 같아요 242 00:28:51,645 --> 00:29:05,432 그러니까 청년들 중에는 공산당의 침략으로 우리 세대가 겪었던 일에 대해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243 00:29:05,789 --> 00:29:09,936 수많은 피난민들과 파괴, 굶주림 244 00:29:13,667 --> 00:29:20,747 아직도 공산주의 점령 하에 있던 1950년을 생각하면, 하루에 한 끼만 먹고 245 00:29:20,771 --> 00:29:26,640 유엔군이 인천에서 돌아왔을 때 그 불쌍한 사람들은 246 00:29:27,360 --> 00:29:31,424 그저 음식을 구걸하고 있었죠 247 00:29:33,259 --> 00:29:37,470 요즘 청년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잘 입고 있죠 248 00:29:37,495 --> 00:29:41,401 너무 잘 입고 있죠 249 00:29:43,120 --> 00:29:50,944 모든 중심지 거리에 보면 좋은 음식에, 서구화된 것들로 250 00:29:51,207 --> 00:29:54,137 헤어스타일까지 믿을 수가 없죠 251 00:29:54,161 --> 00:29:57,851 하지만 옷 입는 방식은 남녀가 달라요 252 00:29:58,298 --> 00:30:03,890 전 기뻐요. 한국의 생활 수준이 그 정도라니 기쁘죠 253 00:30:06,383 --> 00:30:17,671 젊은 세대가 우리가 겪은 일을 돌아보게 된다면 아마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254 00:30:21,412 --> 00:30:24,290 우린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뤄지겠지만 255 00:30:25,779 --> 00:30:29,582 죽기 전에 보고 싶어요 전 84살이에요 256 00:30:31,295 --> 00:30:33,553 때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257 00:30:36,183 --> 00:30:41,471 안타깝게도 우리의 복잡한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258 00:30:42,478 --> 00:30:46,589 우린 혼란과 불확실한 시대를 남겨놓고 가게 될 것 같아요 259 00:30:46,613 --> 00:30:58,226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온전히 믿고 있습니다 260 00:30:59,125 --> 00:31:00,260 감사합니다

구술자정보

목록
구술자 / 생년월일
Nam Young Park / 19310315
국가 / 소속 및 직위
미국 / 육군 통역병
주요활동
주요 군 지휘관 통역 등

구술정보

면담자 소속 및 직위
구술장소
구술요약
박남영은 한국 전쟁 당시 육군 내 한국 통역병이었습니다. 처음에 반 공산주의 학생 대표로 적에게 포로로 잡혔었습니다. 결국 미 육군 통역병이 되었고 덕분에 미국에서 유학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매년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한국 전쟁의 유업을 비춰볼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박남영의 인생은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