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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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유엔군은 남한을 지켰다 그중 3천 명은 프랑스대대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노장인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일명 ‘랄프 몽클라르’가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이 대대를 지휘했다 대대는 전쟁 내내 싸웠으며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상을 받고 한국군과 미군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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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에 깊이 개입해 있었기 때문에
대대원들은 잊혀졌다 1953년 이후 대대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참전했다
그리고 1962년 11월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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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에 관한 영상이 극소수로 남아 있다 이 영상은 풀 씨와 게젤바쉬 씨가
프랑스 국방부 역사자료 부처에 기증한 뉴스 영화 발췌본과 아마추어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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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프랑스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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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군 정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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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군과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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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6,579 --> 00:00:49,883
얼마 전부터 동북아시아의 한국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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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준비 끝에 무기를 잘 갖추고
훈련을 받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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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요청으로 자유 국가의 부대들은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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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02,195 --> 00:01:08,201
이들은 험난한 지형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침략자를 몰아냈고 남한에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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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미국은 아시아 대륙의 운명에
무관심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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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군 정기 프로그램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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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프랑스대대와 보낸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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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정박지에 도착한 프랑스대대 파견대의
자원병들에게는 머나먼 여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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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미군 해병대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며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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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4,304 --> 00:01:50,276
일부에게는 낯선 땅이었지만
대대 고참병에게는 익숙한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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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투성이의 울퉁불퉁한 도로가
가평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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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대 병사들은 이러한 막사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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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프랑스대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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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일과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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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14,460 --> 00:03:20,133
의무실에서 군의관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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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라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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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는 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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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28,134 --> 00:04:32,705
미 제2보병사단의 포화가
프랑스대대의 작전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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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32,705 --> 00:04:38,678
그동안 헬기가 뿌린 연막 속에
기갑 부대들이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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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03,670 --> 00:05:11,010
이 도로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한국 전선에서
짧은 시찰을 위해 사용한 항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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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전투복을 입은 아이젠하워 장군이
클라크 장군과 함께 프랑스대대를 열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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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제르맹 앙 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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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대 자원병 및 본국으로 송환된 중상자는
한국, 미국, 프랑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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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47,246 --> 00:05:53,119
성의 광장에서
미국, 프랑스, 한국 깃발이 휘날리는 깃대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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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53,119 --> 00:05:56,622
부대들은 미군 파견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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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56,622 --> 00:06:00,360
리지웨이 장군, 주앙 원수, 드 슈비네 전쟁 시 정무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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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00,360 --> 00:06:03,863
프랑스에서의 한국 대표자가 차례대로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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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대의 첫 번째 사령관이었던
몽클라르 장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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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21,681 --> 00:06:26,185
미 정부의 이름으로 바르텔레미 사령관에게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명예기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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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26,185 --> 00:06:31,391
함께 겪었던 시련과 희생에 대한 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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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들 앞에는 몽클라르 장군과 18명의
프랑스대대 소속 장교, 부사관, 병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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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2명은 상이용사였고
1명은 로베르 구필 대위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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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 대위는 한국전쟁에서 명예로이 전사해
미국, 한국, 프랑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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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56,582 --> 00:06:59,986
이 훈장들 이외에도 프랑스대대 내에서
개인 자격으로 받은 수많은 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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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59,986 --> 00:07:04,457
프랑스대대가 작전 중에 받은 4개의 표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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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행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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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프랑스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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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뜰 - ‘5월의 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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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18,037 --> 00:07:21,974
명령에 따라 후퇴한 프랑스대대는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더 남쪽에 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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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21,974 --> 00:07:26,379
근처에 있던 아군 대대들과 한국군,
이후 다른 사단들의 지원을 다시 받은 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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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26,379 --> 00:07:30,082
전방의 적군 포화 세례로 인해 멈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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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30,082 --> 00:07:32,251
병사들이 진지에서 다시 내려왔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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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32,251 --> 00:07:35,455
며칠 뒤 군단 전체와 함께
성공적인 전진을 재개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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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35,455 --> 00:07:38,424
이후 이를 통해 38선을 넘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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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50,997 --> 00:08:57,904
단장의 능선 931고지와 이후 사태리,
851고지 근처에서의 항공 사격, 포병대 사격, 전차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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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13,105 --> 00:11:17,410
중공군 포로들에 대한 심문 중
이들이 비행기가 뿌린 삐라 형태의 통행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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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은 정치지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