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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에서의 프랑스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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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0:00,000 --> 00:00:15,181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유엔군은 남한을 지켰다 그중 3천 명은 프랑스대대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노장인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일명 ‘랄프 몽클라르’가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이 대대를 지휘했다 대대는 전쟁 내내 싸웠으며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상을 받고 한국군과 미군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2 00:00:15,181 --> 00:00:24,691 당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에 깊이 개입해 있었기 때문에 대대원들은 잊혀졌다 1953년 이후 대대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참전했다 그리고 1962년 11월 해산했다 3 00:00:24,691 --> 00:00:34,868 대대에 관한 영상이 극소수로 남아 있다 이 영상은 풀 씨와 게젤바쉬 씨가 프랑스 국방부 역사자료 부처에 기증한 뉴스 영화 발췌본과 아마추어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4 00:00:34,868 --> 00:00:38,071 한국에서의 프랑스대대 5 00:00:38,071 --> 00:00:41,808 극동군 정기 프로그램 6 00:00:41,841 --> 00:00:46,579 극동군과 미군 7 00:00:46,579 --> 00:00:49,883 얼마 전부터 동북아시아의 한국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8 00:00:49,883 --> 00:00:57,824 치밀한 준비 끝에 무기를 잘 갖추고 훈련을 받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었다 9 00:00:57,824 --> 00:01:02,195 유엔의 요청으로 자유 국가의 부대들은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 개입했다 10 00:01:02,195 --> 00:01:08,201 이들은 험난한 지형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침략자를 몰아냈고 남한에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11 00:01:08,201 --> 00:01:15,775 이를 계기로 미국은 아시아 대륙의 운명에 무관심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2 00:01:21,281 --> 00:01:24,684 극동군 정기 프로그램 318 13 00:01:24,684 --> 00:01:27,520 한국에서 프랑스대대와 보낸 며칠 14 00:01:29,956 --> 00:01:35,995 부산 정박지에 도착한 프랑스대대 파견대의 자원병들에게는 머나먼 여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15 00:01:41,234 --> 00:01:44,304 이들은 미군 해병대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며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16 00:01:44,304 --> 00:01:50,276 일부에게는 낯선 땅이었지만 대대 고참병에게는 익숙한 땅이었다 17 00:01:55,648 --> 00:02:03,223 진흙투성이의 울퉁불퉁한 도로가 가평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18 00:02:30,884 --> 00:02:36,789 프랑스대대 병사들은 이러한 막사에서 지냈다 19 00:02:41,594 --> 00:02:44,430 유엔 프랑스대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20 00:02:45,098 --> 00:02:48,835 병사들이 일과를 보내고 있다 21 00:03:14,460 --> 00:03:20,133 의무실에서 군의관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치료했다 22 00:03:35,315 --> 00:03:47,894 몽클라르 장군 23 00:04:09,282 --> 00:04:12,785 대대는 진을 쳤다 24 00:04:28,134 --> 00:04:32,705 미 제2보병사단의 포화가 프랑스대대의 작전을 지원했다 25 00:04:32,705 --> 00:04:38,678 그동안 헬기가 뿌린 연막 속에 기갑 부대들이 전진했다 26 00:05:03,670 --> 00:05:11,010 이 도로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한국 전선에서 짧은 시찰을 위해 사용한 항공로이다 27 00:05:16,115 --> 00:05:24,190 동계 전투복을 입은 아이젠하워 장군이 클라크 장군과 함께 프랑스대대를 열병하고 있다 28 00:05:38,971 --> 00:05:40,606 생 제르맹 앙 레에서 29 00:05:40,606 --> 00:05:47,246 프랑스대대 자원병 및 본국으로 송환된 중상자는 한국, 미국, 프랑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30 00:05:47,246 --> 00:05:53,119 성의 광장에서 미국, 프랑스, 한국 깃발이 휘날리는 깃대들 아래 31 00:05:53,119 --> 00:05:56,622 부대들은 미군 파견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32 00:05:56,622 --> 00:06:00,360 리지웨이 장군, 주앙 원수, 드 슈비네 전쟁 시 정무 차관, 33 00:06:00,360 --> 00:06:03,863 프랑스에서의 한국 대표자가 차례대로 도착했다 34 00:06:18,644 --> 00:06:21,681 프랑스대대의 첫 번째 사령관이었던 몽클라르 장군이 35 00:06:21,681 --> 00:06:26,185 미 정부의 이름으로 바르텔레미 사령관에게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명예기를 전달했다 36 00:06:26,185 --> 00:06:31,391 함께 겪었던 시련과 희생에 대한 증표였다 37 00:06:40,867 --> 00:06:46,572 부대들 앞에는 몽클라르 장군과 18명의 프랑스대대 소속 장교, 부사관, 병사가 있었다 38 00:06:46,572 --> 00:06:50,576 그중 2명은 상이용사였고 1명은 로베르 구필 대위의 아버지였다 39 00:06:50,576 --> 00:06:56,582 구필 대위는 한국전쟁에서 명예로이 전사해 미국, 한국, 프랑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40 00:06:56,582 --> 00:06:59,986 이 훈장들 이외에도 프랑스대대 내에서 개인 자격으로 받은 수많은 상과 41 00:06:59,986 --> 00:07:04,457 프랑스대대가 작전 중에 받은 4개의 표창이 있다 42 00:07:04,457 --> 00:07:07,627 행사는 행진으로 끝났다 43 00:07:11,164 --> 00:07:14,500 한국에서의 프랑스대대 44 00:07:14,500 --> 00:07:18,037 부채뜰 - ‘5월의 살육’ 45 00:07:18,037 --> 00:07:21,974 명령에 따라 후퇴한 프랑스대대는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더 남쪽에 진을 쳤다 46 00:07:21,974 --> 00:07:26,379 근처에 있던 아군 대대들과 한국군, 이후 다른 사단들의 지원을 다시 받은 대대는 47 00:07:26,379 --> 00:07:30,082 전방의 적군 포화 세례로 인해 멈추게 되었다 48 00:07:30,082 --> 00:07:32,251 병사들이 진지에서 다시 내려왔던 것은 49 00:07:32,251 --> 00:07:35,455 며칠 뒤 군단 전체와 함께 성공적인 전진을 재개하기 위함이었다 50 00:07:35,455 --> 00:07:38,424 이후 이를 통해 38선을 넘어갈 수 있었다 51 00:08:50,997 --> 00:08:57,904 단장의 능선 931고지와 이후 사태리, 851고지 근처에서의 항공 사격, 포병대 사격, 전차 사격 52 00:11:13,105 --> 00:11:17,410 중공군 포로들에 대한 심문 중 이들이 비행기가 뿌린 삐라 형태의 통행증을 보여준다 53 00:11:17,410 --> 00:11:20,346 한 명은 정치지도원이다

자료정보

목록
원명칭
Bataillon français dans la guerre de Corée
한국명칭
한국 전쟁에서의 프랑스대대
출처
유엔 프랑스 한국전쟁 참전협회 소장 자료
요약
풀 씨와 게젤바쉬 씨(Messieurs Poulle et Ghezelbash)가 프랑스 국방 역사부에 기증한 뉴스 영화의 발췌본과 아마추어 영상으로 이루어진 영상이다. 프랑스 대대에 대한 짧은 소개와 더불어 전쟁 당시 한국의 도로와 막사, 병사들의 일과, 의무실, 아이젠하워의 한국 전선 시찰을 보여준다. 이후 프랑스대대의 열병식과 귀환 후의 훈장 수여식, 바르텔레미 사령관에게 명예기를 전달하는 몽클라르 장군 등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