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유엔참전용사 디지털 아카이브

국경을 넘은 인간관계

유엔군과 하우스보이

6·25 전쟁 당시 '하우스보이' 또는 '버스보이'라고 불리던 어린 아이들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유엔군 부대와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대개 전쟁 고아들이거나 피난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전쟁의 비극적 상황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유엔군 부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대에서 일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월급 형태의 용돈(보통 $10~15/월)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우스보이 숏츠영상

하우스보이의 역할

막사 청소 및 심부름
하우스보이들은 주로 미군 막사를 청소하고, 군화를 닦거나, 빨래를 돕는 등 부대 내에서 다양한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식사 준비 및 서빙
일부는 '버스보이'(식당 보조원)라는 이름처럼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서빙하는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통역 및 안내
영어를 습득한 하우스보이들은 유엔군과 한국인 사이의 통역 역할을 하거나, 지역을 안내하는 등 중요한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군인들의 심리안정
어린 하우스보이들은 전쟁의 고통 속에 있는 유엔군에게 꼬마친구가 되어주며, 심리적인 안정을 제공하였습니다.

<참고자료>
한국문화원연합회, 『영어 배우려 하우스보이(https://ncms.nculture.org/korean-war/story/9569)』,
미주중앙일보, 『유엔군’하우스 보이’서 장교로(https://www.koreadaily.com/article/1040825)』, 2010.06.03.
문화일보, 『<현안 인터뷰>6·25전쟁 때 유엔군 하우스 보이 인연… 美 유학시절 州 웅변대회 1등(https://www.munhwa.com/article/11203699)』, 2020.09.16.
한국일보, 『하우스보이­유엔군/39년만의 재회(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306270091940385)』, 1993.06.27.
코리아타임즈 , 『Children during the Korean War (https://www.koreatimes.co.kr/opinion/20220505/children-during-the-korean-war)』, 2022.5.5.

또 쓸게요, 에디도 저한테 써주세요. 특별한 친구 스코시가.
사에드워드 잔코브스키, 미국
유일하게 가깝게 지낸 사람이 있다면 심부름 소년일 거예요
허버트 슈라이너,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