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하우스보이' 또는 '버스보이'라고 불리던 어린 아이들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유엔군 부대와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대개 전쟁 고아들이거나 피난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전쟁의 비극적 상황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유엔군 부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대에서 일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월급 형태의 용돈(보통 $10~15/월)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고자료>
한국문화원연합회, 『영어 배우려 하우스보이(https://ncms.nculture.org/korean-war/story/9569)』,
미주중앙일보, 『유엔군’하우스 보이’서 장교로(https://www.koreadaily.com/article/1040825)』, 2010.06.03.
문화일보, 『<현안 인터뷰>6·25전쟁 때 유엔군 하우스 보이 인연… 美 유학시절 州 웅변대회 1등(https://www.munhwa.com/article/11203699)』, 2020.09.16.
한국일보, 『하우스보이유엔군/39년만의 재회(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306270091940385)』, 1993.06.27.
코리아타임즈 , 『Children during the Korean War (https://www.koreatimes.co.kr/opinion/20220505/children-during-the-korean-war)』, 20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