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참전한 유엔 회원국들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저마다 처한 안보상황을 고려해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5개국도 유엔헌장에 명시된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다”는 대의를 따라 참전을 결정했습니다.

스웨덴
스웨덴은 중립국이었으나 1개 야전병원단의 파견의사를 밝혔습니다.
1950년 8월 28일 스톡홀름을 출발한 야전병원단은 1950년 9월부터 1957년 4월 철수할 때까지 6년 6개월 동안 의료지원을 하였으며
6·25전쟁에 파견된 의료지원부대 중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많은 중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덴마크
덴마크는 유엔 회원국 중에서 제일 먼저 지원의사를 밝혔습니다.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호는 1951년 1월 23일 함머리치(Kai Hammerich) 준장의
지휘 하에 덴마크를 떠나 전장에서 많은 환자들을 진료했습니다.
이 병원선은 8개월마다 덴마크로 귀국해 재정비한 후 재차 파견되었습니다.
노르웨이노르웨이 정부는 해상운송지원을 제의했으며, 이어 적십자를 통해 지원금과 의류 등을 보내왔습니다. 노르웨이 적십자가 편성한 이동 외과병원은 1951년 5월 31일 자국을 출발해 대한민국에 도착한 후 동두천에서 미 제1군단을 직접 지원해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며,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을 위한 외래환자 진료소도 설치·운영했습니다.
이탈리아6·25전쟁 발발 당시 이탈리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설국이었으나 유엔 회원국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적십자연맹의 요청에 따라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탈리아 제68적십자병원은 1950년 10월 16일 자국을 떠나 1개월 만에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이탈리아는 6·25전쟁에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마지막 국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참전국 중 유일한 유엔 비회원국이란 기록을 세웠습니다.
독일유엔 비회원국이었던 독일(당시 서독)도 의료지원 활동을 하였습니다. 서독 정부는 미국과 유엔에 1953년 4월 야전병원 파견을 제의한 뒤,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부산에 적십자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습니다. 5년간 서독 적십자 병원은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를 포함 약 30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인도인도는 유엔의 민간인 구호결의에 찬성해 의료지원부대 파견을 결정했습니다. 란가라지 중령이 지휘한 제60야전병원은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상륙해 영국 제27여단을 지원했습니다. 인도 야전병원은 수준 높은 수준높은 의술을 발휘하였습니다.
미 육군이동외과병원(MASH)은 미국 육군이 고안한 야전병원 의무부대 편제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6∙25전쟁에서 최초로 본격적으로 운용되었습니다. 미 육군이동외과병원(MASH)은 미군을 비롯한 프랑스군, 영국군, 캐나다군 등의 유엔군과 한국군, 민간인, 포로 등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들의 의료기술은 수혈, 흉부외과, 마취기술, 예방의학, 환자 후송체계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