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가 기억하는 625전쟁속 한국인들

유엔군은 한국 민간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거나 접근을 통제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현장의 혼란·후퇴 상황에서 난민 대열 속 적의 위장 침투 가능성과 부대 규율·치안 유지 필요성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이 고아를 돕는 등 민간인과 교류를 진행한 사례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 육군 8201부대(UNCACK, 정전이후 KCAC) 임무에는, '행복산 고아원을 포함한 여러 사회복지시설 지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엔군은 사회복지시설에 의료시설을 공급하고, 100여명의 민간인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등 전장 후방의 안정성과 민심 유지에 힘썼습니다.
전쟁의 폭력성에 맞서 인도주의적 가치를 실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운 것입니다.

<참고자료>
Birchard Lee (Bert) Kortegaard, 『THE KOREAN WAR – THE OUTBREAK(27 June-15 September 1950)』,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 The United States, the United Nations, and the Second Occupation of Korea, 1950-1951』,
미 육군 특수작전 역사 사무소, 『CIVIL AFFAIRS HISTORY(Same Organization, Four Different Names - U.S. Army Civil Affairs in Korea 1950-1953)』,
강성현, 한겨레21, 『사진 속 역사, 역사 속 사진 1250호 - 반공자유주의 가족의 탄생』, 미 공군 국립 박물관, 『Operation Kiddy Car』

조지 드레이크 인터뷰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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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렌드 인터뷰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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